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유작부터 소개되었던 형사 율리아 뒤랑시리즈. 재미있다는 입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만나기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짙은 살인의 냄새가 제일 흥미를 끌었지만 무엇보다 스릴러와 어울리지 않는 예쁜 표지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 표지에 별 감흥이 없는 나인데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네.

 

율리아 뒤랑 형사에게 성경 구절을 인용한 살인 예고장이 배달된다. 열두 송이의 백합과 함께. 특별한 지위와 존경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시체와 사건 현장에서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고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정황증거조차 찾을 수 없는 이 사건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에 당일로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 가볍게 읽어보려고 챙겼던 책이었다. 즐기기엔 스릴러 소설만한 게 없으니까. 예쁜 표지가 제주도와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고민 없이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몇 장 읽다보니 즐겁게 떠난 여행에서 내내 무거운 마음이 될 것 같아 그대로 덮었지만. 집에 돌아와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제일 첫 느낌은 스릴러 소설이 이렇게 아플 수도 있구나하는 것이다. 너무 슬프고 아파서 작가가 작정하고 쓴 것 같기도 하다. 이보다 더한 비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주 비현실적인 이야기.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 이건 뭐 할 말이 없게 만든다.

 

죄질의 강도는 틀리지만 어찌 되었든 사람을 기만하고 피해를 주어 고통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에 죄에 대한 값은 꼭 치러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살인자는 손가락질을 받고 지탄받을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게 만든다. 비극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남은 그의 고통이 여실히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살인이 결코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마음이 스르륵 움직여 어느새 범인의 편에 서는 걸 느끼게 된다.

 

사람의 욕심엔 정말 끝이 없는 걸까. 끝을 모르는 탐욕으로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인간이 그렇게 아둔할까 싶기도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마지막까지 보는 듯해서 많이 불편하기도 했고.

 

독일 스릴러 소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다. 다른 책들까지 읽게 싫어지게 만드는, 나와 정말 맞지 않았던 소설들 때문에 생긴 불신이다. 그런 감정 때문에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스릴러 소설들에 지쳐있는 때에 기름 붓는 격이 될까봐. 걱정했던 게 기우였는지 생각보다 빠져들었고 묵직했던 것만큼 여운도 길었다. 시간대별로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것에 그치는 글은 조금 불만이지만 작가의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새로운 시리즈를 만나게 돼서 반갑다. 앞으로도 꾸준히 율리아 뒤랑 형사를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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