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채우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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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달리다>에서 마하 39의 속도로 사랑을 향해 씩씩하게 달리던 혜나가 <사랑이 채우다>로 돌아왔다. 세상의 잣대로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혜나의 사랑이었지만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기에 고민 없이 두 번째 이야기를 펼쳐 들었다. 호와 호를 갈랐던 작가의 두 작품 때문에 더 알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김학원이 교도소에 갔다. 교도소에서도 동생 혜나에 대한 팬질은 어김없이 열성적이고, 새아버지를 등에 업고 취직한 황해재단 이사 자리 덕분에 식구들은 혜나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욱연과의 사랑은 확신을 갖게 되었지만 그와의 관계는 쉽게 풀리질 않는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일에 미쳐있는 욱연에게 혜나는 일을 줄이지 않으면 헤어질 것이라고 꼬장 아닌 꼬장을 부리게 되고 욱연과의 관계는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혜나와 욱연의 사랑은 결코 평범한 사랑이 아니다. 서로에게 아내와 남편이 있었고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었으며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안온한 날들을 지냈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번개처럼 눈이 맞아버린 그들은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졌고 그만큼 죄책감도 커졌다. 이것이 <사랑이 달리다>에서의 이야기였다면 <사랑이 채우다>에서는 욱연과의 사랑을 더 견고하게 쌓아가는 과정이다. 물론 소설 속의 말을 빌려 누가 한 치라도 덜 열등한지 가릴 수 없는 이 우라질 나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교도소에 간 학원이 얘기가 별로 없어서 아쉬웠지만.

 

평범하지 않는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납득은 할 순 없어도 혜나라서, 혜나여서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당당하고 씩씩하게 사랑하는 혜나가 부러워지기도 한다. 잔잔한 바다가 태풍을 맞이해 거칠게 변하는 것처럼 사랑도, 삶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어떠한 시련에도 멈추지 말고 기나긴 달리기를 완주할 수 있길 바랄뿐이다.

 

심윤경. 나에게 조금 특별한 작가다. 작년에 <사랑이 달리다>로 처음 만났었다. 혜나의 사랑을 전부 이해할 수 없어서, 납득할 수 없어서 그저 그런 이야기 중에 하나로 흘렸었다. 그러다 얇은 책이라는 이유 하나로 선택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 그저 그런 소설로 생각한게 미안해질 정도로 작가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었다. 이제 세 작품을 읽었다. 또 다시 호와 호로 갈린다. 책장 속에 <이현의 연애>가 꽂혀있다. 갈피를 못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그걸 읽고 과연 붙잡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page. 37

그들은 이럴 수 있나 싶게 사랑했고 이래도 되나 싶도록 행복했다.

 

page. 153

삶에는 사랑한다사랑하지 않는다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어지는 그런 지점이 있었다. 그에게 그곳이 나무가 쓰러진 고속도로였다면, 나에게는 산꼭대기에 붉은빛이 번져가는 이 산성이었다. 그날 그가 전혜원에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인생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흘러갔을 것이다. 내가 오늘 성민에게 죽도록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인생은 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흘러갔을 것이다. 시간과 방향의 감각이 없어지는 그런 공간에서는, 인간이 무엇에 부딪쳐 어디로 가든 아무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고속도로를, 또 산성을 지나쳤다. 한번 지나치고 나면, 또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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