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보랏빛소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유럽 스릴러 중에서도 독일 스릴러가 유난히 강세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란 책이 히트치면서 독일 스릴러들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 책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이후 독일 스릴러에 대해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띈 책 하나. 강박증을 소재로 한 <타인은 지옥이다>. 소재가 강박증이니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도 궁금했고.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났는데 내 옆에서 자고 있던 남자친구 파트릭이 무참히 살해된 채 발견된다. 온 몸이 칼에 잔혹하게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그. 내 손엔 피가 묻은 칼이 쥐어져 있지만 간밤의 기억은 사라져 버렸다. 그를 죽인 기억은 없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임을 인정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내내 미미한 강박증에 시달려왔던 그녀는 의사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강박증.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처럼 사람을 죽이는 상상에 시달리는 무시무시한 살인 강박증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사소한(?) 강박증이 있다. 문서 작성할 때 똑같은 테두리선을 그려야 된다든지, 종이를 칼로 자를 때 꼭 일자가 되어야 하는 것 등 일상생활에서 가볍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래도 마리의 입장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내 기억이 없는데 아무리 증거가 확실해도 내가 죽였다고 확신하는 건 삶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것이니까.

 

그녀가 남자친구를 죽인 살인자가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들이 소설의 줄거리다. 물론 파트릭을 죽인 진짜 범인의 정체도 드러난다. 과연 범인은 그녀가 맞을까? 마지막 종착점까지 전개가 조금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강박증을 소재로 한건 신선하다. 살인 충동을 느끼는 작가는 무섭지만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어서 그랬는지 주인공 마리의 존재는 생동감이 철철 넘친다. 순식간에 살인자가 된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좋았다.

 

독일의 스릴러물들이 다 그런걸까. 단 몇 권의 책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강하게 밀어붙히는 힘은 없다. 여러 조각으로 흩어진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야기들도 그렇게 흘러간다. 원제는 모든 걸 감춰야 해라고 한다. 원제보다 국내에서 지은 제목이 더 강한 느낌이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제목의 <타인은 지옥이다>.

 

임팩트 있는 제목처럼 책도 기억에 팍팍 꽂혔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녹록치 않은 일임을 다시 깨달았다. 개인적인 편견이 많은 독일 스릴러를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차츰차츰 쌓아가다 한 방에 툭 터지는 이런 소설들이 마지막까지 책장을 놓을 수 없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쎄. 나처럼 꼭 버려야할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아니라면 재미를 느끼기엔 전혀 모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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