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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추리 - 강철인간 나나세
시로다이라 쿄 지음, 박춘상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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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미스터리 수상작인데 귀신이 등장한다. 분명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맞는데 귀신이 등장한다는 소리에 호러물인가 했었다. 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읽고 싶어서 선택했던 책이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인 추리와 유령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졌다. 얼핏 내가 좋아하는 미드인 '수퍼내츄럴'이 생각나기도 했고...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큰 리본을 했으며, 큰 가슴과 철골을 흔들어대며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존재가 등장한다. 소문은 점점 커져 그 존재에게 ‘강철인간 나나세’라는 별명이 붙는다. 기이한 소문이 들려오는 한적한 도시에 요괴를 퇴치하기 위해 이와나가와 쿠로가 찾아온다. 둘만의 힘으론 부족해 쿠로와 인연이 있었던 교통과 여경 사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처음엔 이름도 없었던 요괴는 사람들의 망상과 소문들이 더해져 단단한 실체로 거듭난다.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가설을 세운다는 것 자체만으로 추리가 완성되어 가는데 그 과정이 실로 놀랍다. 눈앞에 보이는 진실이 진짜 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허구의 이야기를 믿게끔 만들어 거짓이 진실로 바뀐다. 궤변처럼 들리기도 하는 논리는 조금 어이없기도 한데 <허구추리>라서 그만의 매력으로 다가오는게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강한 캐릭터들이다. 요괴인 나나세의 존재도 쎄다고 생각했는데(우선 생김새부터 차원이 틀리다.) 주인공인 이와나가와 쿠로가 지니고 있는 어떤 특수한 능력으로 캐릭터들의 힘을 더했다. 만화적인 요소가 보이는 캐릭터들은 다소 과장되어 보여도 요괴가 등장한다는 특이한 소재에 딱 어울리는 주인공들이라서 좋았다.
캐릭터의 힘이나 요괴와 추리의 조합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점은 일러스트 목차였다. 색다르게 보이기도 했고 신경 쓴 티가 난다고 해야 할까. 정성스레 준비한 모습 같아서 살짝 감동. 내용이 조금 더 길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목차만으로도 작은 감동을 주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부담스러워 보이는 표지는 조금 불만. 절대 어디 내놓고 읽을 수가 없다. 민망해서...
논제를 거듭하는 후반부는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의외의 반전이기도 하지만 거듭되는 추리들로 늘어지는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최근 본격 미스터리와의 안좋은 기억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시작한 책이었다. 선입견을 갖고 시작한게 미안해질 정도로 의외의 재미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몰입감도 좋았는데 그게 전부 캐릭터의 힘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딱히 어떤 장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책처럼 보이지만 그만의 매력으로 무장했으니 색다른 추리의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