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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담
누쿠이 도쿠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누쿠이 도쿠로가 쓴 책은 <미소 짓는 사람> 딱 한 권 읽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 제일 신간이라 기대없이, 편견없이 읽었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큰 감흥은 없었다. 대표적인 <통곡>이나 <우행록>을 읽었다면 더 즐거운 시간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누쿠이 도쿠로가 쓴 연애 소설이라는 말에 '혹' 했다. 많은 작품을 읽어본건 아니지만 사회파 미스터리를 어느 정도 탄탄하게 쓰는 작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쓰는 연애 소설은 어떨까하는 호기심이 동했다.
뛰어난 미모와 재능으로 한참 잘나가던 베스트셀러 작가 사쿠라 레이코가 갑작스럽게 절필을 선언한다. 이후 8년이 흐르고 사쿠라 레이코의 열혈팬이자 신입 편집자인 도시아키는 그녀에게 찾아사 다시 펜을 들 것을 권유한다. 그녀가 절필을 선언하게 된 이유를 도시아키에게 길고 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그녀 평생에 걸친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가 분명 남자인데 여자가 썼나 싶을 정도로 세밀한 감정 표현이 돋보인다. 한 인간이 점점 변모해가는 과정을 낱낱이 파헤치면서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남자 작가가 쓴 여자 주인공의 내면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세상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뻔뻔하고 오만한 남자 기노우치. 그런 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버린 그녀, 고토 가즈코. 후에 사쿠라 레이코로의 새 삶을 살게 되지만 언제나 마음 속엔 기노우치만 자리 잡고 있다.
평생 온 마음을 다해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닐텐데 고토는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한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그녀의 세상 모든 것이 되어버린 한 남자. 못난 그녀가 한없이 답답해지다가도 아주 열렬하게 사랑하는 그녀를 보면서 아 이런 사랑도 있구나 싶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걸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랑에 부러운 마음이 드는건 너무나 순수하고 한없이 깨끗해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그녀라서 가능한 사랑이니까. 지금 이 시대에선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랑이라 더 애틋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사회 부조리에 일침을 가하는 소설을 잘 쓰는 작가답게 이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도 인스턴트 식품처럼 느껴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따끔한 충고가 담긴 소설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사랑에 번호를 붙혀가며 셀 수 있는건 아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듯이 사랑도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거다. 그 수많은 사랑중에 이렇게 절절한 사랑도 있으니 그걸 알아달라는 마음이 담겨있는게 아닐까.
아프고 눈물나지 않아도 충분히 슬프고 아린 소설이다. 마음은 분명 그러지 않을텐데 너무 초연해 보이는 고토가 너무 슬프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온전한 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입맛이 쓰다. 미스터리 잘 쓰는 작가가 연애 소설을 이 정도 썼으면 훌륭하지 않은가. 비록 그녀의 사랑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편에 설 수 있는건 누구든 마음 속에 간직한 소중한 사람이 있기 때문일거다. 그게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잊을 수 없는 사람인건 분명한 사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