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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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주저없이 선택하게 만드는 작가 중에 하나인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과 <제노사이드>, 단 두 작품 읽어본게 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굳은 믿음이 생겼으니 신작에 대한 기대는 당연히 높았다. 작년 여름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던 <제노사이드>의 충격은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생각보다 얇은 두께에 조금 놀랐지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이라 의심할 이유는 없었다.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슈헤이는 아내 가나미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새로운 맨션으로 이사를 한다. 이후 슈헤이는 갑작스런 가나미의 임신 소식에 깜짝 놀라게 되고, 맨션을 구입하면서 받은 대출금 이자와 생활비를 댈 여력이 없자 중절 수술을 제안한다. 수술 받으러 간 병원에서 가나미의 발작에 의심을 품고 정신과 의사 이소가이에게 진료를 부탁하지만 이소가이는 괴로운 기억 때문에 쉽게 수락을 하지 못한다. 가나미의 치료를 돕기 시작하고 정신적인 장애로 수술을 거부하는줄만 알았던 이소가이는 그녀의 다른 인격에 놀라고 마는데...

 

'삼포세대'라고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 있다. 소설 속 슈헤이와 가나미는 요즘의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빡빡한 가계부 사정으로 소중한 생명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마는 두 사람. 낙태라는 큰 산을 넘기도 전에 아내에게 찾아온 비극 앞에 슈헤이는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는게 전부이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낯선 아내의 모습과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듯한 행동들은 슈헤이가 빙의를 의심하게 만든다. 아내에게 빙의된 존재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

 

미스터리보단 호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머리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능력이 다카노 가즈아키에게도 있는줄 몰랐다. 새로운 면모를 보는 것 같아서 신선했지만 전작의 기대에 부흥하기엔 한참 모자라 보였다. 태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제노사이드>라서 다카노 가즈아키에 대한 기대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젊은 세대들이 생명의 소중함도 잊은 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낙태에 대한 사회문제를 밀도있게 풀어낸건 좋았으나, 조금은 상투적인 포맷이라서 아쉬웠던 것 같다. 어쩌면 너무 흔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와 비슷한 포맷의 영화를 어디선가 본 기억도 난다. 

 

조금 실망은 했지만 그게 다카노 가즈아키라서 괜찮다. 많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차기작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금 기대를 할 수 있는건 전작들에서 보여준 힘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왠지 막 써도 재밌을 것 같은 작가라는 생각도 드니까. <제노사이드>를 기대하고 읽으면 분명 아쉬운 소설이다. 하지만 다카노 가즈아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닐까 생각한다. 발전 가능성이 무한한 작가라는건 틀림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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