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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기다림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3
나딤 아슬람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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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아프가니스탄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자음의 차이일뿐 그 나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방송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는 나라임은 틀림 없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는 현실성 없는 뉴스들로 인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했던 마음이 컸었다.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낯설음도 크게 한 몫했지만 분쟁 지역의 이야기들은 다른 세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어느 마을 외곽에 위치한 호수 근처에 영국인인 의사 마커스에게 라리사라는 러시아 여인이 찾아 온다. 그 여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복무중 행방불명된 자신의 남동생 베네딕트를 찾으러 왔다. 손자와 함께 실종된 마커스의 딸 자민이 라리사의 행방불명된 남동생과 아는 사이였다는걸 알게 된다. 한편, 보석 거래상이자 전직 CIA요원이었던 데이비드는 자민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내전으로 자살 테러가 끊이질 않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곳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여성들이 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곳이라는 거다. 신성한 종교라는 이름 아래 가족들에 의해 명예살인이 자행되고 있고, 너무 심한 성별 차이로 짐승만도 못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나라. 책 속에서도 비참한 여성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아직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리지만 그 나라에선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마커스의 집으로 모인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신분, 종교, 인종 모든 것이 틀린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들을 내보이지만 어설픈 위로를 하려는 사람도 없다. 자신들의 상처에 대해 분노나 화를 내는 사람 또한 없지만 그 상처로 마냥 아파하고 있지만은 않다.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은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 종교나 국적, 모든 것을 떠나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들임은 분명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 따라 달라지는 입장들은 불가항력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초월해 덤덤하고 철저하게 자신의 시각으로만 써내려간 글에선 사실성이 짙게 묻어난다. 종교적 차원의 일들은 앞으로도 내 상식 안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내전으로 피폐해진 그들의 삶에는 조금이나마 동조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이해관계들을 떠나 전쟁이라 함은 참혹한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고 뜨거운게 솟아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