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김형숙 지음 / 뜨인돌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병원 중환자실의 풍경은 아마 비슷할거다. 의식 없는 환자들의 침대 곁에 늘어져있는 수많은 기계들과 분주하고 긴박하게 오고 가는 의사와 간호사들. 정해진 시간에만 면회할 수 있는 보호자들. 위급한 생명들을 하루하루 힘겹게 연명해주는 그 곳. 의학드라마나 방송을 통해 접해본 경험이 전부지만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병원 중환자실의 풍경은 그럴 것이다. 저자는 19년동안 중화자실 간호사로 일했었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마주하면서 잊을 수 없었던 기억에 대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한 신문의 기사에 혹해 읽게 되었지만 당연하게 여겼던 의료시스템에 대해 많은걸 느끼게 해줬다.

 

제목처럼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은 대부분 병원 안에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는 대부분이 중환자실에 있기 마련. 그런 환자들은 희미해진 의식으로 자신의 질병에 대해 뭐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보호자들이 환자 대신 앞으로의 연명치료를 결정하는게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픈 환자를 대신해 보호자들과 의료진들의 치료 여부에 대한 결정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을때의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질병에 대한 치료 여부의 결정권은 당연히 환자에게 있을텐데 애초에 환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결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환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우리가 알게 모르게 환자의 권리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많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웰다잉이라는 말이 있듯이 죽음의 질에 대해 저자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저자가 중환자실 간호사로 오랜 시간 일해왔지만 의료진의 입장이 아닌 아픈 사람과 보호자의 시선에서 바라봤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저 생명 연장만을 위한 치료인지 당사자의 편안한 죽음을 생각하는지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사전의료지시서'라는 제도가 있다. 질병이나 사고로 위급한 상황에 닥쳤을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미리 작성해놓는 것을 말한다. 환자의 권리를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아직 보편화되지 못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평소 나에게 죽음의 의미는 크게 와닿질 않는다.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얘기이니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경험이 없었다. 얼마전 유품정리인에 대한 책을 읽고는 내가 죽고 나서 남겨진 유품들의 행방에 대해 잠시 고민한게 전부였다. 만약이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그런 생각을 했을때만 해도 가볍게 지나쳤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쉽게 떠올리기엔 워낙 무겁다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그만뒀을텐데 이 책을 읽어 보니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는걸 깨달았다. 내 죽음과 마주하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중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불편했던 시간은 감수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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