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나서 남겨지는 여운이 너무 커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 있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 정리도 안되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한계가 느껴져 무슨 말을 해야할지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책. <컨설턴트>로 만났었던 임성순 작가의 책이라는 것보다 순전히 뒷표지에 있던 정유정 작가의 추천사 때문에 보게 된 책이었다. 추천사로만 선택한게 미안해질 정도로 대단한 여운을 남겨준 이상한 제목의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라는 이 책.

 

주인공 두 명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방식이다. 병원에서 자신의 실수로 한 생명을 잃어버린 후 죄책감에 사로 잡혀 모든걸 잊고자 아프리카의 제3세계로 의료봉사 활동을 떠난 의사 범준. 신에 대한 믿음보다 앞날에 대한 욕심과 위선으로 선교활동을 떠난 박신부.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활동했지만 15년 후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것도 폐쇄된 낡은 병원의 한 곳에서... 15년 사이 너무나 변해버린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실을 끊임없이 묻고 있는 이 책에 대한 정답을 찾기는 힘들다. 동전의 양면처럼 선과 악을 양쪽 어깨에 짊어진 채 중심 잡지 못하고 처절하게 흔들리는 인간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사건 앞에서 여태 믿어왔던 신념들이 한 순간 무너져내릴 때 밀려오는 절망감과 무기력함은 대단하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서로 다른 입장과 서로 다른 의지로 자신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지만 철저하게 유린당하기만 하고 그들이 맞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랜 시간 그들을 지탱하던 믿음의 추악한 얼굴이 드러나고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보여준 제3세계에서의 참혹한 내전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단히 거칠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문장은 아니었지만 무언의 힘으로 한 눈에 사로잡힌 채 끝까지 빨려 들어간다. 똑같은 작가가 쓴 글이 맞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작 <컨설턴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힘이 이 책에선 유감없이 발휘된다. 불법 장기 밀매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의사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신부의 처절한 고뇌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청난 힘에 사로 잡혀 한 눈 팔 새도 없이 읽어 내려간 책이어서 차기작도 무척 기대된다. 하지만 회사 삼부작 시리즈의 첫번째와 마지막을 만났으니 남은 두번째 시리즈 <문근영은 위험해>를 우선 만나봐야겠다.

 

p.307

"제가 신 때문에, 교리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합니까? 빌어먹을 신 타령을 하려고 당신에게 이러는 게 아닙니다. 당신 말대로 인간이란 고작 짐승의 위에 금박을 발라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얇은 금박이 우릴 인간으로 만든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그 금박이 바로 우리를 사람일 수 있게 하는 전부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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