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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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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의 나에게 남녀공학은 절실한 로망중에 하나였다. 로망은 로망일뿐 현실은 여중 3년, 여고 3년. 다시는 오지 않을 중,고등학교 6년의 시간을 여자들만 득실거리는 학교에 다녔었다. 여고에 대한 실체(?)를 뼛속 깊이 너무나 잘 알고 있어 반가운 마음에 덥썩 지른 책이었다. 사실 요즘 너무 묵직한 소설들만 읽었더니 가볍고 경쾌한 이야기가 보고 싶은 이유도 컸다.
채율은 외고 시험에 떨어진 후 선암여고에 입학하게 된다. 천재인 쌍둥이 오빠때문에 엄마의 관심을 받을 수 없는게 불만이다. 학교를 가기 위해 나섰던 어느 날, 팔뚝을 물고 달아난다는 소문만 무성한 변태 '무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학교에 존재하는줄도 몰랐던 탐정단 아이들이 들이닥치며 채율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무는 남자'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다.
변태 사건에서 학교 비리 수사까지 넓은 영역을 누비며 어설프지만 전문성까지 갖춘 여고생들의 유쾌한 탐정 미스터리 추리 소설.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어딘가에 있을법한 이야기들이라 마냥 가볍게 읽히진 않았다. 여고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는 안하고 무슨 베짱으로 탐정질이냐며 타박을 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하고 싶은걸 하고 있을 때가 가장 그들다운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무조건적인 하나의 목표때문에 묵살되어 버리는 그들의 꿈이기에 더 특별하고 더 소중하다.
이런 소설에서 캐릭터가 가진 힘은 굉장히 크다.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건 탐정단의 대장 미도. 괴짜인듯 하면서도 냉철한 분별력을 가진 여고생이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탐정단 고문인 채율은 탐정단 활동을 귀찮아 하면서도 고문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악역을 맡은 캐릭터의 표현도 참 섬세하다. 세상에 없을 법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선암여고 탐정들의 이야기니까 그런 인물이 하나쯤 존재해도 괜찮아 보였다.
여고에 다녔고, 추리 소설 좋아하는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가벼운 마음에 읽어보자 했던 마음이 컸다. 코지 미스터리의 편견을 깬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이런 소설을 만났으니 그에 대한 기대는 날로만 높아져 간다. 육아로 바쁜 작가님인건 알지만 후속편을 꼭 봤으면 좋겠다.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선암여고 탐정단의 다음 행보가 너무 궁금해져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