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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이레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열심히 한 일은 부라보콘을 먹으면서 오후 2 시   부터 하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는 것이었다. 그 해 나는 ‘주간야구’에서 부록으로 끼워준 기록지에다가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는 경기를 거의 대부분 기록으로 남겼다. 지금은 나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게 된 친구 하나를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그 친구는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와서는 전날 경기를 기록하지 못했다며 기록지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대신에 야구 카드를 몇 장 주겠노라고. 괜찮은 거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서로 친해졌다. 내 기억에 따르면 그 당시에 야구 카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초코파이를 박스째 구입하거나 부라보콘을 사는 수밖에 없었다. 박스에는 초코파이의 숫자만큼, 부라보콘에는 하나씩 야구 카드가 들어 있었  다. 카드에는 선수들의 방어율·최고 구속·탈삼진횟수 등이 적혀 있었다. 숫자와 기호가 적힌 기록지만으로 경기의 전 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야구팬에게 이 숫자들에는 한 인간의 모든 인생이 집약돼 있었다.

일본 소설가 오가와 요코의 작품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다루는 숫자 역시 이와 비슷하다. 이 소설은 1975년 교통사고를 당해 현재라고는 80분 분량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수학 박사와 그를 돌보는 파출부 모자가 숫자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80분이 넘어서면 그 전의 기억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수학박사에게 숫자는 영원히 기억을 담아두는 도구다. 예컨대 우리는 어떤 특정한 숫자에 반응한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라든가 생일이라든가. 박사는 파출부의 생일이 2월 20일이라는 얘기를 듣고 대학시절 자신이 학장에게 받은 시계의 뒷면에 적힌 284라는 숫자를 보여준다. 220과 284. 두 숫자는 우애수다. 서로 친구라는 얘기다. 평범한 숫자에다가 이런 기억을 심어놓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 기억은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영원히 남을 것이다. 80분만 기억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박사가 숫자에 집착하게 되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5761455는 1과 1억 사이에 존재하는 소수의 개수이며 6과 28과 496은 자신의 약수를 모두 더하면 그 자신의 숫자가 되는 완전수이며 714와 715는 서로 인접한 소수, 즉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베이브 루스와 그 기록을 깬 행크 에런에게서 이름을 따온 루스 아론 쌍이다. 이 숫자들은 오늘 당장 우리의 기억이 멈춘다고 해도 영원히 그 이야기들을 간직할 것이다.

그 지속되는 시간의 차이만 다를 뿐, 과거를 쉽게 망각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박사와 같은 처지다. 인생은 가혹하다. 아무리 맹세한다고 해도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청춘은 금방 지나간다.

오가와 요코는 수학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에게 숫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기 위해 야구를 끌어들였다. 수학박사와 파출부와 아들은 한신 타이거즈의 팬이다. 그들에게 숫자는 누군가의 등번호이거나 타율이거나 통산 홈런의 숫자다. 어쩌면 신이 220과 284를 영원히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만들어놓은 것처럼, 그들도 숫자들에 자신만의 기억을 심어놓는다. 이제 죽어서 영원히 기억 같은 것은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들에 남은 그들의 기억은 영원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파출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오랫동안 귓전을 울린다. “내가 서 있는 지면을 보다 깊은 세계가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나는 놀라고 감탄한다. 그 곳에 가려면 숫자의 사슬을 타고 내려가는 방법밖에 없다. 언어는 무의미하고, 끝내는 내가 깊이와 높이 어느 쪽을 지향하려 하는지 구별조차 불분명해진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사슬의 끝이 진실과 이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숫자에는 영원한 진실이 담겨 있다. 순간마다 변해가는 인간이 그 진실에 다가가는 방법은 상상뿐이다. 야구팬이 기록지의 숫자로 명경기의 모든 장면을 상상하듯이.

놀란 라이언의 통산 방어율로 그의 생애를 상상하듯이. 역시 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별을 상상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숫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퍽 따뜻한 소설이다. 김연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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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은 하도 많은 사랑으로 자색 물이 들었고

눈 먼 새들처럼 허둥지둥 전전했다.

내가 당신한테 진 빚은 아무도 모른다, 사랑이여.

 

내가 당신한테 입은 은혜는, 시간이 떠도는 번개를

지켜보는 황야의 우물과 같다.

파블로 네루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 중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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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뉴욕 3부작>

나는 속으로 삶이란 이치가 닿지가 않는다고 우겼다. 사람은 살다가 죽게 마련이고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이치에 닿지가 않는다고. 나는 아메리카를 탐사한 최초의 프랑스 원정대 대원이었던 라 셰르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1562년 장 리보는 상대수의 부하들을 포트 로열에 남겨두었는데, 그들의 자휘를 맡은 알베르 피에라는 공포와 폭력을 통제 수단으로 삼은 미치광이였다. 그때의 일에 관해서 프랜시스 파크먼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는 자신의 미움을 산 고수(鼓手)를 자기 손으로 직접 목매달았을 뿐 아니라, 라 셰르라는 병사를 요새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무인도로 추방해 굶어 죽게 내버려두었다.〉 알베르는 결국 부하들의 반란으로 살해당했고 반쯤 죽어가던 라 셰르는 무인도에서 구출되었다. 혹자는 라 셰르가 이제 안전할 것이라고, 그토록 끔찍한 처벌을 견디고서 살아났으니 더 이상 참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삶에는 유리하게 접어줄 조건도 없고 불운에 제한을 둔다는 규칙도 없다. 순간순간마다 좀전과 마찬가지로 비열한 속임수에 당할 각오를 하고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나는 라 셰르를 단지 하나의 예로 들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그의 운명도 결코 이상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운명에 비해 순탄했던 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는 직선 행로를 따라간 셈인데, 그것만 하더라도 보기 드물고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삶은 대체로 이리저리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며 떠다밀고 부딪히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중도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옴짝달싹못하거나 이러저리 떠돌거나 다시 출발을 하면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원래 가려고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이르고 만다.

결국 요점은, 하나하나의 삶은 그 삶 자체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삶이란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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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 뉴욕 3부작, <잠겨 있는 방> 중에서

 

팬쇼가 결국 어떤 존재가 되었건, 내 느낌으로는 그 존재가 그때부터 비롯되었던 듯싶다. 그는 아주 일찍부터 자아를 형성했고, 우리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이미 명확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형체도 갖추지 못한 채 한순간 한순간 무턱대고 허둥대며 끊임없는 소란에 휩쓸렸던 반면, 팬쇼는 분명히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말을 그가 빨리 성장했다는 뜻이 아니라―그는 결코 자기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 적이 없었다―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우리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소동에 휘말려들지 않았다. 그의 꿈은 좀더 내면적이고 분명히 좀더 엄격한 다른 질서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처럼 삶을 구분짓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전혀 없었다.

자발적인 선행,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 결과에 대해서 보인 순종적이라고 할 만한 대응. 그의 행동이 아무리 주목할 만하다 할지라도 그는 언제나 그 일에 초연한 것처럼 보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그에게서 종종 겁을 먹고 물러선 것은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었다. 나는 팬쇼와 그토록 가까웠고, 그처럼 열렬히 그를 찬미했고, 또 그와 같아지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지만, 다음에는 느닷없이 그가 나랑 걸맞지 않으며, 자기 안에 갇혀 사는 그의 생활방식이 내가 살아야 할 방식과 절대로 맞아떨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들곤 했다.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바랐고, 욕구가 너무도 많았고, 순간순간에 너무 얽매여 있어서 그런 무관심의 경지에는 도저히 이를 수가 없었다. 내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잘하는 것, 이를테면 좋은 성적, 대표팀 마크가 붙은 운동복, 평가 기준이 무엇이든 그 한 주 동안 뭘 잘했다고 받는 상 같은 내 야망의 헛된 징표들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팬쇼는 자기만의 구석에 조용히 서서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그런 모든 일로부터 뚝 떨어져 있었다. 만일 그가 뭔가를 잘했다면 그것은 언제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가 한 일과는 아무 관련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우리가 열셋인가 열네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팬쇼는 일종의 내면적인 유배자가 되어 해야 할 일을 꼬박꼬박 해나가면서도 자기가 살아야 하는 삶을 경멸하고 주변 환경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말썽을 피운다거나 표면적으로 반항을 한 거은 아니었고 그저 뒤로 물러났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 언제나 이런 저런 일들의 한복판에 서서 그토록 많은 주목을 받은 뒤로, 그는 우리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에는 거의 사라진 사람처럼 스포트라이트를 피한 채 어떻게든 가장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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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더없이 우울한 나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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