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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
반도 마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기발한 트릭도, 무서운 살인마도, 멋진 형사도 나오지 않지만, 끈끈, 찐득찐득한 일본 기담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소설이다.
일본의 섬 시코쿠를 배경으로 하며, 죽음의 나라 사국과 시코쿠의 발음이 같다는 데서 착안해, 88개의 영장을 돌며 복을 기원하는 시코쿠 순례에 호러적 상상력을 가미한 금기의 의식 사카우치에서(죽은 자의 나이만큼 88개의 영장을 거꾸로 돌면, 사자를 불러올 수 있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랜만에 고향 야쿠무라로 돌아온 히나코, 이혼 후 낙향해 마을사무소에서 일하는 후미야, 그리고 두 사람의 친구이자 십팔 년 전 물에 빠져 죽은 사요리의 이야기.
제대로 공포스럽다, 라고 하긴 어려울지 모르지만,
소설 전체에 흐르는 묘한 기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인물들이 문득문득 느끼는 섬뜩함과 두려움이 전해져 흠칫, 하게 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부분들.
“정원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풀을 밟는 소리. 히나코는 깜짝 놀라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흙냄새가 섞인 정적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후미야의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또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슬쩍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은 사진에 찍힌 정경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창밖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그러나 뭔가가 보고 있었다. 누구의 시선인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어스름한 밤에,
학과 거북이가 미끄러졌네.
뒤에 있는 사람, 누구게?
특히 가고메가고메 놀이는, 그 장면이 연상되면서 뒤에 있는 사람 누구게, 하는 자의 목소리가 왠지 이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오싹했다. 히나코, 후미야, 사요리의 절룩거리는 삼각관계를 드러내는 한편, 스멀스멀 뭔가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기에 그만이었다. (꼬마 때 신나게 했던 술래잡기가 설마, 귀신 잡기일 줄이야. 한자 귀에, 귀신 외에 술래의 의미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왠지 기분이 이상해진다.)
마을에 몰아닥치던 태풍도 지나가고, 산 자는 산 자의 자리로,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누구는 여기 남고, 누구는 새로운 동행과 함께 떠나갔다. 산 자의 광기 어린 집착도, 이루지 못해 한으로 남은 소원도 어쨌든 사그라졌다. 연애코드와 공포 분위기가 적절히 어우러진 소설, 더불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도 생각해보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