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이여, 너는 백골로 발견된 내 소식을 들으면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주겠지? 그리고 이 사람도 분명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무슨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고 애도해주겠지? 무릎을 꿇고, 내가 아직은 희미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을 오른손에, 내가 묻힌 이 땅 냄새를 왼손으로 받아 가슴 앞에 모으고 나를 기억하려 해주겠지? 어디의 누구인지 몰라도 너에게는 분명 좋은 점도 있을 거라고, 열심히 살았을 거라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사람이 존재했다고...... 기억해주겠지?-431쪽
이 세계에서는 누구나 차별 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서로에게 사랑받는 것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것이 전해진다. 이런 세계로 들어오게 된 것을 기뻐하며 준코는 사람들 쪽으로 걸어간다. 이제 불안도 망설임도 없다. 모두들 준코를 보고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641쪽
"그려도 될까?" 다카히코가 스케치북을 펼치고 연필을 들었다. 금방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카히코는 지금까지 인물을 그린 적이 없었다.만약 준코를 그릴 생각이라면...... 이렇게 마르고 훙해진 뒤가 아니라, 반짝반짝 빛이 나던 아가씨 시절에 그려줬으면 좋았을걸. (......) 베갯머리에 놓여 있는 스케치북을 들어보았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형태의 변형 없이 정직하게, 병으로 야위고 주름도 늘어난 지금의 준코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정말 편안하고 평화롭게 잠든 얼굴이기 때문일까...? 마치 젊은 아가씨가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있는 듯한, 온화한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그림이었다. "......너무 잘 그린 거 아니에요?" 준코는 중얼거리며 그림을 품에 안았다. 이것을 영정으로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632-633쪽
너무나 적막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나 죽은 거야? 여기가 내 마지막 장소......? 뒤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다. 귀에 익은 목소리. 애타게 기다리던 목소리가 "늦었습니다" 한다. 희미하게 남은 힘을 그러모아 눈을 뜬다. 정말로 보이는 건지, 진짜 현실인지 이제 알 수가 없다. -639-640쪽
한참 잡음이 이어졌다. 이제 나오려나, 곧 나오겠지, 하고 기다려도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테이프를 처음부터 다시 틀었다. 잡음과 함께 술을 들이켠다. 재생이 끝나고, 찰칵 버튼이 올라왔을 때, 소리가 새어나올 것 같아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 테이프는 버리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가지고 있을 수 있다.-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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