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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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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을 선택하지 않았다. 부모는 당연하고 형제자매 또한 마찬가지. 부모 입장에서도 두 살 터울의 딸 둘이라는 자식 계획은 세울 수 있지만 그들이 각각 어떤 인격체가 될 지까지 미리 결정하지도, 본인들의 의지대로 만들 수도 없다.

<어쩌다 이런 가족>은 정말 어쩌다 이런 가족이 되었을까, 싶은 이야기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일거라 생각했던 예상은 첫 장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위 말해 상류층 가족, 돈도 명예도 빠지지 않는 한 가족의 이야기. 이런 류의 이야기가 크게 새롭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 서양 나라들을 배경으로 한 외국의 영화나 소설들로만 접했기 때문에 어차피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 생각되었다. 요즈음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와 정말 이 가족과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배경이 현대적이기는 해도 등장 인물은 전형적이다. 각자가 한 가족으로 묶이기에는 너무나도 다르긴 하지만 예상 가능하고 새롭지는 않은 성격의 인물들. 그런데 품위와 교양이 넘치는 이 집안에서 부모의 바람대로 자란 첫째 딸, 혜윤이의 XX 동영상이라니. 이건 예상치 못했던 전개다. 

거의 인터넷 소설을 읽는 정도의 흡입력으로 책장은 점점 빨리 넘어간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실을 공유하고 있지만 둘 중 한 사람이 앉아 있을 때는 다른 한쪽이 일부러 자리를 피하는 편' (p.7) 이고, '다들 이미 원하는 대답을 정해두고 질문을 서로 주고받는' (p.9) 식사 시간을 가졌던 '소음 없는 가족'은 첫째 딸에게 닥친 사건을 계기로 대답이 정해지지 않은, 아니 대답을 예상할 수조차 없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끊임없이 대화를 해나가며 해결방법을 찾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대판 싸우기도 하고, 가장 빈틈이 없었던 엄마 유미옥조차 잠시 이성을 잃는다.

위기와 절정에 이르러 문제가 해결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은 예상 가능한 해피 엔딩이라 소설의 끝이 다가올수록 앞부분만큼의 흡입력은 떨어지기는 했다. 결국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사실 뻔한 전개라서 감동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파우더룸에 방음벽을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유미옥 여사님은 좀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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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짖는 기술 - 욱하지 않고 상대의 행동을 바꾸는 고수의 대화법
나카시마 이쿠오 지음, 정선우 옮김 / 다산3.0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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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인 나카시마 이쿠오 아저씨는 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면서 꾸짖는 방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꾸짖는 방법 연구회'를 설립했다고 하는데 왠지 좀 일본스럽다. 주로 '꾸짖지 못하는 상사'와 '꾸짖어달라는 부하' 케이스를 많이 접했고, 그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 책을 쓴 계기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꼭 일적인 관계나 상하관계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것에 대해 한 마디 하기는 해야 하는데 과연 내가 이 말을 해도 될까 망설여지는 때가 있다. 또한 반대로 내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일을 할 때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를 꾸짖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요즘 들어 혼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자라는 아이들이 늘고 있어 젊은이들의 소위 '개념 없는' 행동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우리 나라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저자는 이런 사회 현상 또한 제대로 올바르게 꾸짖지 못하는 데 기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 야구 감독 노무라 카츠야는 "삼류 선수는 무시하고, 이류 선수는 칭찬해서 키우고, 일류 선수는 꾸짖어서 키운다."고 했다. 프로의 세계에서 꾸짖는 행위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가 실려 있는 것이다. 또한 리더는 상대방을 올바르게 꾸짖으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남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누구나 갖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 위에 서는 리더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움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올바르게 팀원들을 꾸짖지 못한다면, 그 팀원들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고, 리더 또한 관리 능력을 의심받게 되며 신뢰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올바르게 꾸짖기 위해서는 모든 팀원에게 공평하게, 일관성 있게 꾸짖어야 하고, 분노한 상태나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서 꾸짖으면 안 된다. 꾸짖는 기술의 4단계는 <1. 실수 사실을 알린다. 2. 꾸지람을 듣는 이유를 이해시킨다. 3.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반성하게 한다. 4. 개선을 위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실행하게 한다.>이다. 또한 올바른 꾸짖음이란 '꾸짖음 + 사후 관리'로, 꾸짖은 후에는 먼저 분위기를 푸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꾸짖기 전에 그 강도를 나무라는 정도(하), 따로 불러 이야기(중), 엄격하게 꾸짖음(상)으로 나누어 경중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때에는 온화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엄격해지는 것이 리더로서는 필요한 자질이다. 

부하 직원을 꾸짖을 때는 잘못한 행위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그 외의 능력을 폄하하는 말이나 인격을 모독해서는 안된다. 분노한 상태로 꾸짖으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은 침묵의 꾸짖음이 효과가 있을 때도 있으며, 반항적으로 나오는 직원에게는 더욱 관대하게 대응하도록 한다. 그 외에도 연상의 부하 직원, 임시직, 남자 직원, 신입사원 등등 대상에 따른 꾸짖음의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모두 읽다 보면 머리가 끄덕여지는데, 당연한 이야기들이면서도 이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스스로도 깨닫게 된다. 

사실 나는 꾸짖는 입장이라기보다는 꾸짖음을 당하는 사회초년생이기 때문에, 이렇게 명확한 기준으로 올바르게 꾸짖어주는 선배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되짚어 생각해보니 다행히 지금까지 올바른 꾸짖음을 받았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꾸짖음을 들을 만 했고, 납득이 가는 내용의 타이름이었으며 나 또한 그 이후에 잘못했던 점들을 개선하려고 나름 노력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나중에 시간이 더 지난 후에 올바르게 꾸짖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장래희망에서 선생님을 지워버렸던 이유 중 하나가 아이들을 대할 때 내 감정을 섞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꼭 교직에 있지 않더라도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고, 연차가 더 쌓이면 부하 직원들이 생기게 되며 그들의 실수나 잘못을 나무라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직장 생활에서 꾸짖기의 기술을 활용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쓴소리가 필요한 것처럼 어디에서나 우리는 서로 타이르고 나무라고 꾸짖으며 서로 발전해나가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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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의 통찰 - 전 세계 1% 전략가들에게만 허락된 MIT 명강의
히라이 다카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다산3.0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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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등의 통찰>은 MIT 슬론 스쿨에서 공부한 컨설턴트가 쓴 책이다. 나는 논리성만큼이나 근본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굳이 분류하자면 뜬구름 쪽에 가깝기 때문에 논리적인 사람들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부러워 하기도 한다. (컨설턴트 친구들이 일상 대화에서도 첫째, 둘째, 하며 이야기하는 건 이제 나도 옮은 기분.) 그래서인지 이런 류의 책을 가끔씩 보면 머리가 트이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이 책의 1강, 가장 첫 부분에서는 '통찰을 방해하는 아홉 가지 생각 습관'을 소개한다. 처음엔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그리고 이내 곧 회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습관들이 많아서도 놀랐는데, 그 직후에 바로 이런 생각 습관 때문에 실패했던 P&G의 사례가 나와 있었다. 직장인이라면 이 아홉 가지 생각 습관을 보면서 본인의 회사를 한 번씩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허허.

시스템 다이내믹스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구조 / 인과 로 나눈다. 구조는 A→B와 같이 구성 요소들 간의 상호관계성을 보여주는 '모델', 인과는 그 모델이 장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인 '다이너미즘'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면서 '모델'에는 익숙했는데, 모델에 시간 축을 더한 것이 다이너미즘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회사라는 경영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때때로 협력 업체와 협상을 하기도 했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현실 세계에서 다이너미즘을 간과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혁신은 기업이 한다'는 모델에 빠져 고객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혁신이 기회를 놓친 글쓴이의 경험담 역시 마찬가지.

* 타임래그: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 지체 현상
* 플러스 루프=positive loop: 과정이 반복될수록 결과가 눈덩이처럼 점점 확대되는 루프 (ex.군비경쟁)
* 마이너스 루프=balancing loop: 균형을 취하려고 하는 루프 (수요, 공급과 가격)
*모델의 다섯 가지 구성 요소: 인풋, 아웃풋, 경쟁 관계, 협조 관계, 영향자 (ex. 싱가포르 항공)
* 레이어: 생각의 두께를 늘리고 어떤 레이어에서 경쟁할 것인지 생각하자.
*인과관계vs상관관계: 영어를 잘하는 직원이 일을 잘한다? 모델을 구성할 때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

하나의 모델을 완성했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모델의 타당성을 검증해보고, 상상하는 것이 힘들다면 직접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부를 할 때는 질문하는 것에 익숙지 않았는데 오히려 일을 시작하고 나니 누구도 1과, 2과, 중요 키워드 등을 콕 찝어 알려주지 않아 작은 것도 여기 저기 질문하는 습관이 든 것 같다. (좋은 건가!)  아직은 그래도 막내라는 핑계로 잘 질문하고 있지만 연차가 쌓이고 나이도 쌓이고 나서는 왠지 또 다시 질문을 어려워하게 될 것 같았는데, 여전히 작가는 여러 선배들에게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모델이 말이 되는지, 재미있는지 등을 검증한다고 한다.

문제의 본질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만들고 난 뒤 1회전 결과를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모델이 오랜 시간축 안에서 수차례 회전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 눈에 보이는 현상은 그 패턴에 있는 한 시점의 스냅사진에 불과하다.

* stock과 flow를 구분해서 생각하기: 스타벅스의 출점 전략. 점포 앞 통행량은 flow일 뿐, 사람들의 점포 앞 체류 시간인 stock이 더 중요하다. 시나가와 역 내부 통로의 광고 또한 똑같은 광고를 수십 장 늘어놓음으로써 stock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통로의 광고가 하나 하나 다 달랐다면 flow가 되어사람들 기억 속에 머물지 못했을 것. 주로 자동차, 건물, 다리 등의 제조업과 인프라 산업에 사용되는 철의 경우 스톡이 충분해지면서 플로가 주어들게 된 경우.

*선형 vs 비선형관계: '나이를 먹으면 키가 자란다'와 같은 명제는 사춘기가 지나면서부터는 비선형관계가 된다.

미국에서 공부한 일본 사람이라 그런지, 주로 일본이나 미국 기업에 대한 케이스를 많이 든다. 일본의 경우에는 몰락한 일본 기업들의 케이스나 좋지 않은 일본 기업 문화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외국 친구들이 물어봤을 때 한국 기업이나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내 모습과도 겹쳐보였다. 오히려 내부자이기 때문에 그 안의 문제가 더 잘 보이고 느껴지는 것은 어디에나 똑같구나. 

다이너미즘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점이 언제, 어떤 형태로 발생하는지 알아내는 것과 상전이phase transition 또는 근원적 요인을 찾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결혼, 출산, 유학 등이 상전이phase transition이라고 보면 되는데, 상전이가 일어나면 다이너미즘도 크게 바뀌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답도 달라져야 한다. 인류 역사에서 세계의 중심역할을 한 것은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 등의 동양이었다. 세계의 힘의 균형을 이루는 근원적 요인이 노동력에 기반한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과거 수백 년 사이에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진보 덕분에 힘의 균형이 유럽과 미국으로 이동했지만, 기술이라는 것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전 세계로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회사는 일본에 있고,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 회사는 한국에 있다. 게다가 더 시간이 흘러 나라별 기술력 차이가 크지 않게 되면 과거처럼 다시 인구가 많은 나라가 세계의 중심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제는 더이상 중국과 인도를 기술력에서 뒤쳐졌다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이 세계 기술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시간의 축을 수백 년으로 확장해서 바라본다면 미국의 이민 정책과도 상관없이 결국 중국과 인도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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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스페인을 걷고 싶다 - 먹고 마시고 걷는 36일간의 자유
오노 미유키 지음, 이혜령 옮김 / 오브제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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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하고, 게다가 성실하지는 않지만 명목상 천주교 신자인 나는 까미노 데 산띠아고(Camino de Santiago)를 알게 된 순간부터 저곳에 가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대학교 때는 서어과가 없는 우리 학교를 떠나 교환 학교에서 <스페인어 문화권의 이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도 보고 까미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하나둘 주변에 실제로 까미노를 다녀오는 친구들이 생겼다. 스페인어도 모르고 천주교도 아니지만 자신의 도전 정신을 자극한다며 다녀와서는 살이 쪽 빠진 친구, 인생의 큰 전환점을 앞두고 한 달 여간 까미노를 완주한 후 신발을 태우는 의식까지 마무리한 친구 등등. 

짧은 일정으로 갈 수도 있지만 왠지 이왕 갈 거라면 나도 프랑스부터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일반적으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라고 부르는 종착지인 산띠아고를 지나 피니스떼레까지 완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왠지 이 길은 '어른'들이 걷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좀 더 큰 고민거리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딱히 까미노를 걷는 명분을 만들지 못 했다.

"선생님은 거기서 뭘 얻으셨나요?"
"얻은 것이 아닙니다. 버렸지요.
인생과 여행에서 짐을 꾸리는 방법은 똑같아요. 쓸모없는 물건을 점점 버리고 나서,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은 것만이 그 사람 자신이지요. 걷는 것, 여행하는 것은 그 '쓸모없는 것'과 '아무리 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을 골라내기 위한 작업입니다. 성지라는 건, 모두 그를 위한 장치죠. 내 인생은 아직 20년 가까이 길게 남아 있는데 그사이에 얼마나 필요 없는 걸 버릴 수 있는가로 '나는 무엇이었을까'를 정하는 것입니다.
p.25

정신 없는 일상이지만 그 중에도 하루 24시간 붙어 있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인데, 바빠지고 사람들을 만날수록 정작 나 자신과는 친해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시절 친구처럼 조금은 어색하게 나 자신에게 요즘 어떻게 지냈고, 어떤 감정들을 느꼈고, 어떤 생각들을 했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까미노를 걷게 된다면 많은 시간을 나 자신과 친해지는 데 보내게 되겠지.


글쓴이가 도쿄 출신의 젊은이이다 보니 아시아권에서 자란 사람이 유럽의 땅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선이 나와도 많이 겹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이 글쓴이에게 해주는 말들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남편과 사별한 미국인 조안나>
이 길은 왠지 파트너와 사별한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마음을 정리하는 데 '걷는다'는 행위가 도움이 되는 걸까. 결혼도 사별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선 아직 알 수 없다.
p.40

"여자는 언제든지 강해질 수 있잖아. 
그렇지?"
p.41

<오지랖 넓게 미유키에게 까미노 걷는 팁을 알려준 스페인 사람들>
최근 3일간 만난 스페인 사람들은 다들 아주 밝다. 다른 순례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이나 독일인 같은 게르만계 사람들은 모두들 괴로워 보이는 얼굴로 담담히 걷지. 그에 반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라틴계 민족들은 아침 늦게 출발해 여유 있게 경치를 보며 걷고, 충분히 맛있는 식사를 즐기며 수다를 떨고, 오후 낮잠을 잔 뒤 밤에는 와인을 마시고 잠들어. 출신이 다른 걸 확실히 알 수 있지."
확실히 그렇다. 그들은 대낮부터 호쾌하게 마시고 호쾌하게 먹으며 호쾌하게 웃는다. 오후에는 와인을 한 손에 들고 일광욕. 밤에는 질리지도 않는구나 싶을 정도로 늦게까지 담소. 노인이든 아줌마든 아저씨든 '나는 나!'라는 생각을 갖고 살기에 근심이 없어 보인다.
p.48

<바르셀로나 출신의 이혼녀 에바>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지만 내 인생이 아이들의 인생보다 중요하지 않을 리 없잖아. 나도 아직 젊으니 여러 선택지가 있어.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지.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거야!"
발렌시아 오렌지 같은 에바의 웃는 얼굴.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지금껏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p.49

<테라피스트로 일하는 미국인 리타>
젊은 시절 증권사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몸이 망가져 은퇴한 후 테라피스트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리타가 하는 말들은 특히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너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사는 시간에 이끌려가고 있는 거야. 도시의 분주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좌우되는 그 시간 그대로. 하지만 그러면 몸이 망가지잖아?"
"도시에서 생활할 땐 자기 리듬에 따라간다는 게 아무래도 어려워지지. 모두가 말하는 걸.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라고. 하지만 이 길은 달라. 서두르든 천천히 가든 어차피 도착할 장소는 같으니까. 서두른다고 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오히려 소중한 걸 못 보고 지나치게 될 가능성이 커지지. 필요한 건 "Take your time" 그것 뿐이야."
p. 58

"올라간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더 빨리! 더 위로! 하고 사회의 맹렬한 바람에 휩쓸려 증폭된 힘에 실려가는 기분이지.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점점 높이 올라가니까. 하지만 문득 바람이 멈췄을 때 눈치채게 돼. 실은 전혀 내가 원한 적 없는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리타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에 있을 때 나는 말도 안 되게 초조해했다. 함꼐 입사한 동기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친구들보다 더 좋은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고, 친구를 많이 늘리고 싶고, 페이스북에 글을 쓰면 '좋아요'를 최대한 많이 받고 싶고. 그래서 공기 인형처럼 이상적인 나를 만들어 내, 그걸로 승부를 걸려고 했었다. 시원시원하게 다른 사람들과 발맞춰 협조하는 나. 눈치가 빠른 나.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답을 내는 나. 그러지 않으면 O와 X 중 X 쪽으로 금방이라도 분류될 것 같았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떨어져 나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 하지만 그렇게 조급해하면 할수록 난 텅 빈 채로 회전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무리해 '좋은 인상'을 연기하는 만큼, 집에 돌아가면 허탈한 기분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휴일엔 흙탕물처럼 엉망진창이 된 채 잠만 잤다. 내가 공황장애에 빠진 이유는 일 떄문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p. 61

어쩌면 나만의 페이스란 건 혼자 조급해할 땐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주변을 보고, 그때 처음으로 나와 세계가 일치해 삶의 페이스가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리타에게 일을 그만두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초조한 마음,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 리타는 말했다. "그러다보면 분명 너의 페이스와 사회의 페이스가 같아질 때가 올 거야. 미유키, 네가 걷고 있는 건, 그 무엇도 아닌 너만의 길이거든."
p. 63

미유키가 까미노에 오기 전 만났던 대학교 남자 선배가 충고랍시고(!) 해준 말 또한 장소를 도쿄에서 서울로 바꾸고 일본 사람인 그 선배를 한국 사람 선배로 바꾼다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미유키가 까미노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나탈리가 파트너인 팀과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망설임 없이 자신은 자유로운 길을 원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도 그 나이가 되어서 나의 삶을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미유키의 모습에 내 모습이 겹쳐졌다.

"미유키는 잘 모르겠지만 스물다섯 살쯤 되면 주변 사람들이 점점 결혼하기 시작해서 초조해진다고. 내 주변을 둘러봐도 혼기를 놓쳐 일밖에 안 남은 여자들에 비해 결혼해 아이를 갖고 가정 안에서 사는 쪽이 더 행복하다고 해."
사이좋게 지내던 선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단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선배에게 그 자리에서 반론을 할 수 없었다. 줄곧 평온한 기반 위에 사는 것. 그 가치를 확신하는 사람의 굳건한 표정. 
그때 화를 내는 게 좋았을까? 자신의 기준만으로 타인의 행복을 재단하는 폭력에 대항하는 게 나았을까?
p. 67

<9형제가 모두 까미노를 걸은 멕시코인 미겔>
"일을 그만둬서.. 다음에는 그만두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서.."
"그만두면 왜 안되는데?"
"일을 도중에 내팽겨치는 건 도망치는 거잖아.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난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도망치는 게 뭐가 나쁜데? 나도 사자를 만나면 도망칠거야! 하지만 고양이라면 도망치지 않겠지. 너에게는 그 일이 사자였던 거잖아. 그렇다면 도망쳐도 괜찮아!"
문득 강렬한 그 말이 가슴에 닿아 눈물이 났다. 그렇구나,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선 도망쳐도 괜찮은 거였어.
줄곧 도망치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번 도망치면 평생 계속 도망만 다니게 된다'든가 '3년 안에 그만두는 사회초년생은 바보다'라든가 남들이 하는 말만 머리속에 쑤셔 넣고 그저 되뇌고 있었다.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몰아세우는 데 열중한 나머지 난 그게 내가 싸울 수 있는 크기였는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문제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면 안 된다'는 말에 사로잡혀 상대를 제대로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고지식함이었다.
남의 말에 꽁꽁 묶여 딱딱하게 뭉쳐 있던 마음  한 켠이 안쪽에서부터 녹아내렸다.
p. 76

"카미노의 길은 난무하는 언어의 수가 많아 '바벨탑'이라고도 칭한다. 하지만 이 길에선 모두 언어의 차이 따윈 가볍게 뛰어넘으며 탑 같은 건 금방 완성해낼 게 틀림없다."

<70대 스페인 사람 루카스>
"매일 월요일이구나, 화요일이구나 생각하게 되는 건 좋지 않단다. 매일이 토요일, 일요일, 휴일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일을 해봐. 나는 일을 하는 41년 동안 하루도 '일을 했다'고 생각한 날이 없었어."
그의 대쪽 같은 말에 가슴이 찔려 내심 헉 하고 놀랐다. 25년 동안 살아오며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나를 받아들여줄 '틀'을 찾는 것만 생각했을 뿐. 이런 회사라면, 이런 동료들이라면, 이런 대우라면 더욱 즐겁게 일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나를 끼워 맞출 '틀'만 생각했지 가장 중요한 '내가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p.88

<걷는 속도가 비슷해 같은 그룹이 된 조안나>
"미유키, 젊은이는 나비 같은 거란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여러 곳에 갈 수 있는 거야. 잠자리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건 나이를 먹은 뒤에 해도 괜찮아. 먹고 마시고 여러 가지를 듬뿍 맛보도록 하렴. 나도 아직까지 나비인걸, 꼬부랑 할머니가 되기 전까지, 여러 장소에 가서 인생을 즐겨야지."
p.95

Pan con Jamón y vino, eres todos!
(빵과 햄과 와인, 그걸로 충분해!)
스페인 역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나라다. 실업률은 유럽에서 가장 높고 경기는 매년 나빠지기만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아이를 키우며 슈퍼마켓 계산원 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에바의 시급은 5유로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자살이 적다. 과로사도 없다. 그들이 씩씩하고 평온할 수 있는 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리 커다란 슬픔도 분노도 활짝 웃으며 뛰어넘을 수 있는 걸까.
p.108

<'산띠아고, 우리들의 메카로 가는 길' 시나리오 작가인 프랑스인>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모두들 자기 인생에서 다음으로 내디뎌야 할 올바른 길을 찾으려고 하지. 올바른 길에 대한 답을 이 길이 줄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들은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알게 된단다. '올바른 길'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 선택지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p.115

<진로를 고민하는 한국 대학생 희주>
"여기로 여행을 오기 전에 아빠가 엄청 화를 내셨어. "스페인을 순례하는 게 네 경력에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냐?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엘리트로 만들려고 지금까지 너에게 얼마나 큰돈을 투자했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라면서. 지금도 아빠는 내가 보내는 메일에 답장도 안 해주셔. 난 어쩌면 좋을까."

<그 말을 들은 브라질인 마르코스>
"브라질에는 '마우 헤조우비두 Mal resolvido'라는 말이 있어. 직역하면 '미해결 인간'. 자기 가족이나 인생의 고민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 그들은 설령 대기업의 중역이라도 '저 녀석은 마우 헤조우비두라니까'라는 말을 들으며 동료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해. 너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 미유키, 희주, 난 너희들이 마우 헤조우비두가 되지 않았으면 해. 좋은 직장을 갖는 것보다 그게 더 중요하니까."
p. 118

<다시, 이별하는 조안나>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란 자신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란다. 미유키, 자신을 겨울 장미가 아닌 한여름의 해바라기처럼 대해주렴."
p.132

<까미노 순례를 마치며>
"카미노는 성지에 도착했다고 끝난 게 아니야.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 여행인 거지."
분명 그 말대로다. 성지에 도착하면 무언가 바뀌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약하고, 도망치고, 금방 지치는 그 모습 그대로다. 그렇대도 괜찮아.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돌아가자. 나의 길은 이제부터 계속해서 이어질 테니까.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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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바다
김재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방구석에서 읽을 자신이 없어 유난히 자주 들고 다니며 밖에서 읽었던 책이다.


집 근처 공원 벤치에서, 평일 오전 카페에서, 이동하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었다. 보통 나의 독서 습관은 몸을 제멋대로 방치해둔 채, 두 눈만 똑바로 뜨고 책을 노려보는 모양새다. 따라서 주로 방 구석의 책상에서, 거실의 소파에서 책을 본다.

<봄날의 바다>는 제목부터 표지의 일러스트와 색감까지 모두 참 예쁘다. 참 예쁘지만 이걸 예쁘다고 말해도 될지 머뭇거리게 된다. 살짝 어깨 뒤에 소름이 돋는다.

"엄마, 준수 왜 이렇게 편안해 보이지? 너무 예쁘잖아. 이렇게 해맑게 말이야."

피해자와 가해자.
그들을 비추는 조명 뒤에 서 있는 그들의 가족.
결국 아무도 행복해지지 못하는, 모두가 손해를 보는 이상한 게임.

평소에 추리소설류에서 예측 성공률이 전혀 높지는 않지만 이 소설에서는 유난히 작가에게 끌려다닌 느낌이었다. 모르겠고, 모르겠고, 계속해서 모르겠는 기분으로 이야기를 따라갔다. 어쩌면 그래서 더 현실적이게 느껴지고 그래서 더 등 뒤가 싸늘했다.

추리 소설처럼 모든 사건과 등장인물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상관이 직접적으로 있지도 않지만 완전히 없다고 하기는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황. 가해자와 피해자, 악인과 선인, 진짜와 가짜. 이 모든 것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어느 순간 문득, 가장 무서운 건 이만큼의 흡인력을 가진 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배경은 친숙한 시간과 공간이다. 있을 법한 공간과 등장인물과 사건에 순간적으로 너무 몰입이 되어서 책을 읽던 도중 일부러 책장을 덮고 현실감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쉬어주었다. 이야기의 초반에 예상하고 각오했던 종류의 무서움과는 다른 종류였다.

책을 다 읽고, 이야기를 한 번 다시 곱씹어 본 뒤에도 여전히 모르겠고, 모르겠다. 명쾌한 답을 내려주기보다는 숙제처럼 질문을 잔뜩 안겨준 소설이다. 그래서 더욱 두고두고 생각나고 들춰볼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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