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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페터 라우스터 지음 / 아침나라(둥지)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마음이 완전히 열려있을 때, 모든 감각이 깨어있을 때, 영혼이 느낄 태세가 되어있을 때, 내가 나날이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을 때, 오직 그럴 때만 사랑은 가능하다."(38쪽)
페터 라우스터의 <사랑에 대하여> (아침나라, 1999)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둘 것은 이 책이 이른바 '작업'을 부추기는 서적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말하는 '작업'이라는 게 상대방으로부터 사랑을 끌어내는 효과적인 행위(유혹적 행위)를 지칭한다면, 이 책은 그 '작업'에 필경 방해가 될 것이다. 바로 그 '작업'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으니까.
라우스터는 사랑을 시작할 때 두 사람이 제각각 원하는 것들을 제쳐둘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그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안정'을 지향하지 않을 때 사랑을 전개할 수 있다(39쪽)고까지 말한다. 라우스터의 '이유있는' 반론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성(性)은 사랑이고 성적으로 자유로우면 우리는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성문제가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낙관하거나, 만족한 사랑을 위해서는 성행위 기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우스터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사실상 상대를 미워하면서도 성행위를 통해 생리적 쾌감을 느끼는 일이 있다. 부부 간의 사랑 문제를 성행위 기술로 극복하려고 하는 수많은 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성행위 기술이 전혀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성행위 기술에 대한 과대평가나 터무니없는 신봉 때문에 사랑을 느낄 수 없어지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라우스터는 강조한다. 사랑은 창조적이어서 적절한 순간에 가장 올바른 방법을 찾아낸다(29쪽)고.
둘째, 사랑을 젊은 시절 한때의 일로만 보고, 일생에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운명적 사건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년에 들어서는 순간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감성은 늙지 않는데, 사람들은 육체의 늙음으로 감성의 늙음을 추정한다. 아니 확정한다. 라우스터는 영혼이 무뎌지지 않는 한 언제든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셋째, 사랑에는 질투가 따르게 마련이라고 믿는 경우가 아주 비일비재하다. '필수적인(!) 질투'에 대해서 사람들은 거의 무방비상태다. 남편의 낚시, 부인과 대화를 잘 나누는 친구들, 상대방의 취미와 상대방이 집중하는 일련의 행동들에 사람들은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상대방의 모든 시간을 다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사랑에는 역시 질투가 필수적이야"라고 중얼거린다.
라우스터는 질투는 사랑의 필수요소가 아니라고 날카롭게 분간한다. 질투의 감정은 상대방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이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사랑에 대하여 '그런 줄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반론을 단다. 그 반론들마다 이유가 타당하며 명쾌하다. 그 반론들을 쭉 추진해가며 사랑에 대하여 라우스터가 마침내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내가 사랑의 보답을 기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서 사랑의 보답이 없는 것이 나를 좌절시키지 않는다. 나의 독선적 자아가 휴식하게 된다."(213쪽)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마땅하다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현실에 폭력을 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208쪽)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사랑을 위해 사랑하고, 그러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사람만이 정말로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은 어렵다'는 말이 또 들린다. 자기자신을 한 번 믿어보는 것이 정말 그토록 어려울까? 내가 처음 스키화를 신었을 때 작은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은 어려워보였다. 그러나 조금씩 배우고 처음의 불안들을 극복하는 것은 지극한 기쁨이 아니겠는가?"(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