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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전작 『공무도하』를 지탱하는 인간론에는 ‘인간’이 네 번이나 나왔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35, 161쪽)
문장은 단정적이지만 ‘인간’이란 말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 모두가 주인공이고 누구도 주인공이 아닌 소설이 되었다. 소설은 강(江)의 이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더라도 여기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공무도하』 이후 일 년, 작가는 『내 젊은 날의 숲』을 펼쳐 보였다. 하지만『공무도하』와는 거리가 있어, 의외의 느낌을 주었다.
전작의 밑바닥에 ‘물’을 깔아 놓았던 것처럼 이번 작품은 ‘숲’속에 놓여 있다. 전작의 도입부가 장마와 홍수로 그려지고, 주된 배경도 해망(海望)이라는 바닷가 동네여서 읽는 동안 조금 추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숲의 일 년을 따라 덥기도 하고 춥기도 했다. 『공무도하』에서 ‘인간’이라 했던 것이 이번에는 ‘남성’으로 구체적이어서, 그것은 주인공의 ‘할아버지-아버지-좆내논(할아버지의 말馬)’과 ‘안요한-안신우(안요한의 아들)’ 그리고 ‘김민수 중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자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 둘뿐이다. (보조의 역할로 여겨지는 인물들은 제외했다. 얼마 되지 않는다.) ‘좆내논’은 어머니의 삶에 박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는 존재이다. 주인공 쪽으로는 안요한 실장과 김민수 중위가 기울 듯하는데 주인공이 기우는 것은 김민수 중위 쪽인 듯하다.
―얘, 그 말이 눈빛이 희끄무레한 게 꼭 느이 할아버지를 닮았어. 머리카락이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뿌연 것도 꼭 닮았어.
수없이 되풀이된 이야기였다. (중략) 죽은 말의 모습과 냄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에 포개지면서 어머니의 생애 한복판에 완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45쪽)
―좆내논, 너도 알지? 사진에서 봤잖아. 너네 아버지가 출감했는데, 교도소에서 집까지 그 말을 타고 왔어. 말이 늙고 병들어서 두 다리로 서지를 못하고 자쭈 주저앉았어. 나중에는 네 다리를 꺾고 무릎으로 기었어. 너네 아버지가 교도소 문 앞에서부터 그걸 타고 왔더라구. 너 자니? (100쪽)
소설 속 남성들은 무디고 약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좆내논’의 이미지에, 안요한과 그의 아들 신우는 자폐의 병명에 갇혀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버텨내지 못하고(혹은 가까스로 버텨내고), 관계 속에서 무너진다(혹은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버지, 안요한과 대척되는 이미지의 인물이 김민수 중위이다. 그는 군인의 신분이긴 하지만 살아 있는 인물이다. 건강해 보이고 자주 웃는다. 민간인이 되어 주인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작가 특유의 문장이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남성의 유약함을 말하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어색하기도 하면서 은근했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내 수긍했다. 시화평고원과 자등령, 숲속의 풍경이 없었다면 그저 건조한 문장들이 가득했을지도 모른다.
키 크고 잎 큰 나무들의 태평성대였다. 나무들은 드문드문 들어서 있었다. 나무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저마다의 존재를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서도 숲이라는 군집체를 이루고 있었다. 아침마다 자등령의 젖은 숲은 자줏빛 일광으로 빛났고 바람이 산맥을 훑어올라갈 때 잎 큰 나무의 숲이 서걱거렸다. 무수한 이파리들이 바람의 무수한 갈래에 스치면서 분석되지 않는 소리의 바다가 펼쳐졌다. 바람의 흐름이 끊어지면 숲의 소리는 잦아들었고 바람이 이어지면 숲의 수런거림이 다시 일어서는 것이어서, 숲의 소리에도 들숨과 날숨이 있었다. (23~24쪽)
작가의 문장은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담백하고 깔끔하다. 군더더기 없이 단단하다. 다만 『공무도하』에 비해 이번 작품의 문장들은 조금 부드럽게 감겨 왔는데, 그것이 여성의 발화여서 그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문장에 부드러움이 섞여 있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숲속의 풍경은 문장들로 옮겨졌는데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달마다 꽃과 나무를 그리는 작업을 서술하는(소개하는) 부분들이었다.
자작나무 사이에서 복수초와 얼레지가 피었다. 키가 작은 그 꽃들은 눈 위에 떨어진 별처럼 보였다. 눈 속에서 꽃이 필 때 열이 나는지, 꽃 주변의 눈이 녹아 있었다. (115쪽)
옥수수는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 사이에, 크는 소리가 들리듯이 자라난다. (117쪽)
패랭이꽃 그림은 6월 초에 갓 핀 꽃으로 데생을 시작해서 8월 초에 겨우 완성했다. 완성했다기보다는 그리기를 끝냈다.
패랭이꽃은 그 단출한 생김새 안에 억센 힘이 들어 있다. 패랭이 꽃의 힘은 그 나른하게 늘어지는 이파리로 발현된다. (196쪽)
숲속에 놓여 있는 소설, 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숲과 나무와 꽃을 제거한다면 소설은 굉장히 건조해질 것이다. 복수초, 옥수수, 패랭이꽃 외에도 봄부터 겨울까지의 숲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된 풍경일 뿐이라도 물기에 젖고 윤기가 흐르는 숲의 모습을 보기에는 충분하다. (유해발굴단을 따라 육십여년 전의 죽음과 그 죽음이 남긴 뼈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도 압권이다.) 『내 젊은 날의 숲』을 지탱하는 것은 숲과, 숲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나와 타자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숲속에 놓여 있어서인지 다른 것들보다 덜 인위적이었다.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의 역사물보다는 현대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일찍 나온 신작 소식은 물론 그것이 현대물이어서 더없이 반가웠다. 쟁쟁쟁, 거리는 꽃이 열리는 소리. 자등령을 넘나드는 바람소리.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 문장이 된 풍경들에서 많은 것을 보고 또 들었다. 별점을 매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인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안에서 숲이 피어오르고 나와 타인의 사이에서 숲이 울창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나의 젊은 날의 숲은 녹음이 짙었다고 추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