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읽고 싶은 단편들이 있다.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눈이 내리는, 칼바람이 부는 날의 이야기들.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 이상하게도 ‘여름에 읽고 싶은 소설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겨울’로 바꿔 묻는다면 바로 답할 수 있다. 겨울이 오기도 전에 ‘아, 그때가 되면 읽고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소설들. 그건 내가 여름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덥고 찌고 연방 땀이 흐르는 날씨에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얘기를 하려면, 또 그것을 읽으려면 얼마나 고된 일일까. 아무튼 겨울이 되면, 나는 이 단편들이 꼭 읽고 싶어진다. 그래서 꼭, 읽는다.
1.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사랑을 믿다」를 처음 읽은 것은 2008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다. 표제작으로 실려 있었는데(세상에나, 대놓고 사랑을 믿는다 하다니!), 고로 대상 수상작이었는데(이상문학상이 센티멘탈해졌나?), 읽고 나서 몇 날 며칠을 끙끙댔다(이런, 이런, 이럴 수가). 작가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이전까지 이름도 몰랐던 소설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게 만들어 준 소설이기도 하다.
유독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권여선 소설 속 주인공들답게 남녀는 기차 모양의 술집에서 만난다. 삼 년 만에 만난 그들은 각자의, 그리고 친구의 실연담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여자는 삼 년 전에 실연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고모님 댁을 방문했던 일을 남자에게 말해준다.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던 그녀 앞에서 각자의 고통을 늘어놓는 세 여자를 보고 그녀는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 남녀가 만난 때로부터 또다시 삼 년 뒤. 남자는 단골 술집에 앉아 옛일을 돌이키며 자신이 놓친 사랑과 흘려보낸 청춘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의 이해하는 키워드는 전반부의 ‘실연의 유대감’, 후반부의 ‘보잘것없음’이다. 실연의 유대만큼이나 끈끈하고 사람을 너그러이 만드는 것은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의 메인보드를 살짝만 기울이면 고통의 무게에서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인생의 한낮’을 제때 알아보는 일일 것이다. 지난날 새된 소리에 홀렸던 일을, 만종을 울리는 청춘 앞에서 후회해봤자 부질없는 일이므로. (소설을 처음 읽을 땐 다소 복잡한 구석이 없지 않다. 이렇게 억지로 정리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읽고 또 읽으면서 아귀를 맞춰야 하는 것이, 그리고 거기에서 어떠한 소름에 가까운 떨림을 느끼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사랑을 믿다」를 처음 읽었을 때, 그 쨍하게 맑고 추웠던 날씨. 그런 날이면 기차 모양의 술집과 안동소주, 맥주와 안주 반반이 생각난다. 주인공들이 만났던 날도 가을이나 겨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처음 읽었던 것이 2월의 초입이었으므로, 어쨌든 나에게는 겨울에 생각나는 소설이 맞으므로, 겨울이라고 해둬야겠다. 서두에서 말했듯 200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고 올 가을에 나온 소설집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 수록되어 있다.
2.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절기로의 대설과 기상으로의 대설이 꼭 같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대설이 되면 생각나는 소설이다. 나는 대설에 내리는 눈을 직접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대설에 눈이 내렸다지만 올해도 역시 내가 사는 곳은 아주 맑았다. 겨울에도 ‘쾌청’이라는 말이 어울린다면 바로 갖다붙여줄 만큼. 눈길 주의하라는 뉴스가 마냥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는데, 허허로운 기분을 한 편의 소설로 달랬으니 그것이 바로 「대설주의보」다. 올해 3월에 출간된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하다.
「대설주의보」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관통할 수 있다.
늘 그리워하지는 않아도 언젠가 서로를 다시 찾게 되고 그때마다 헤어지는 것조차 무의미한 관계가 있다. (101쪽)
「대설주의보」뿐만 아니라 윤대녕 소설 속 인물들은 유독 오랜만에 만나거나 우연히 스치거나 만날 듯 만나지지 않거나 만나도 금세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국 땅에서 얼굴을 마주하거나, 오륙 년 가까이 만나지 못한다거나, 만나도 고작 하루쯤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이 「대설주의보」 속 남녀의 운명인 듯하다. 이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바로 위의 문장 때문이지 않을까. 만나지니까 만나는 것, 헤어져야 하니까 헤어지는 것, 그렇게 살다 보면 또 만나게 되어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대설주의보」의 결말부는 인상적이다. ‘백색의 계엄령’을 뚫고 만난 이들, 윤수와 해란은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지. 읽는 동안의 긴장과 읽고 난 뒤의 깊은 울림이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임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소설 제목은 최승호의 시 「대설주의보」에서 따왔다. 작가의 말에서도 ‘시집 『대설주의보』에서 영감을 받았음이 틀림없다’라고 말한다. (봄에는 「상춘곡」을 읽어야 한다. 그건 필수 코스!) 윤대녕의 소설은 읽기 어렵다는 독자들도 많은데(물론 나도 거기에 속한다), 이 작품만큼은 ‘윤대녕의 소설 세계’를 학습하지 않고도 읽기 부담 없는 소설이다. 다만, 읽고 난 뒤의 격정은 어쩔 수 없다. 「대설주의보」를 읽고 나면 마음 속에서 이미 내리고 있는 폭설을 그칠 수 없을 테니까.
3. 신경숙의 「부석사 -국도에서」
마지막 소설은 신경숙의 「부석사」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속임수에 가깝다. 부제를 놓친 채 읽어 나가면 부석사는 언제쯤 나오는 것인지, 애가 탈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제목에 잘 넘어가는 독자라면?) 그래서 「부석사」는 부제를 잘 봐야 한다. ‘국도에서’. 그러므로 이 소설은 ‘부석사 (가는 길) 국도에서’의 어떤 한 장면이다.
‘그’와 ‘그녀’는 같은 오피스텔에 산다. 약속을 피하기 위해(‘그녀’는 P와의, ‘그’는 박PD와의) 두 사람은 새해 첫날 부석사에 가기로 한다. ‘그’와 ‘그녀’는 개(바람이)로 연결되어 있고, 상추밭 서리도 함께 했고, ‘그’는 ‘그녀’의 우편물을 훔쳐본 적도 있다. ‘그’와 ‘그녀’의 오피스텔 방 앞의 것들은 대체 누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각각 어느 관계를 정리하고 있는 두 남녀가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부석사行. 그 길은 국도에서 지방도로, 군도로, 어딘지 알 수 없는 길로 접어들지만 두 사람은 오히려 편안함(안정)을 느낀다. 결국에는 ‘부석사’가 드러나지 않지만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의 두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소설을 읽으면 눈 속에 갇힌 그들보다도, 부석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든다. 오래 전 가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겨울의 부석사, 눈 오는 날의 부석사는 어떤 모습일지. 소설의 디테일은 생략하고서도, 책장을 덮을 때 마음으로 퍼지는 따뜻한 온기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눈이 쌓여 차창을 뒤덮었는데도 결코 춥지 않은, 감았던 눈을 뜨면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너른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 그것은 두 사람 사이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를 기대하는 마음과도 같을 것이다.
이전까지의 작가의 단편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소설이기도 하다. 2003년 출간된 소설집 『종소리』에 마지막 차례로 실려 있다.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다년간 장편 집필에 몰두하여 소설집 소식은 요원하지만 이미 여러 지면에 발표된 단편들만 모아도 한 권 분량이 되므로 늦어도 내후년쯤엔 새 소설집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세 편의 단편을 추렸지만 모두 장편 못지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작품들이다. 굳이 계절을 따지지 않아도, 봄이든 가을이든 말이다. 또 다른 좋은 작품을 읽게 된다면 ‘겨울에 읽고 싶은 소설’ 목록에 추가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이 겨울도, 시린 손 호호 불어가며 탐독하는 계절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