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남자들이 꿈꾸었던 낙원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고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캐넌은 묻는다. 소설을 거의 다 읽어갈 무렵, 이 질문이 소설에 드러난 온갖 일들의 동기를 하나로 압축시켜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이 사라지고 여자들만 남은 마을 이야기라는 발칙한 상상은 결코 가벼운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았다. 바로 전쟁이라는, 인간의, 특히 남성들의 정복욕에 의해 갈라진 인간 사회와 전선으로 떠난, 혹은 떠밀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남겨진 자들의 새로운 세계로의 이행을 마리키타라고 하는 작은 마을을 초점으로 진행된다.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는 한 신문의 기사를 접하고 이 책의 모티프를 잡았다. 기사 내용인즉,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어느 산간마을의 남자들 대부분을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끌려간 남자들에 초점을 맞춘 기사와는 달리 작가는 남겨진 여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무려 5년에 걸쳐 이 소설을 썼다.

마리키타라고 하는 평범한 마을에 어느 날 무장한 게릴라들이 들어선다. 그들은 마을의 남자들을 전투에 끌어들이고 저항하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무참히 학살한다. 목숨이 붙은 남자들이 강제로 끌려 나간 자리에 이제 남은 건 거의 여자들뿐이다. 남자들에 의해 유지되었던 마을의 질서는 깨지고 여자들은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며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와중 한 군인에 의해 우연히 로살바라고 하는 한 과부가 치안판사에 임명되고 그녀는 사명감을 가지고 마을을 위해 일하기로 다짐한다. 바야흐로 마리키타는 저만의 질서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말이지 온갖 사건들이 일어났다. 거의 유일한 남자였던 신부는 출산 장려 운동에 실패하고 나중에 마을에 남은 소년들마저 독살하고 마을을 떠난다. 그가 떠난 후 마을의 시계는 멈춰버리고 로살바는 독창적인 여성달력을 만들어낸다. 이름하야, 여자 시간 달력. 의미없는 월명 대신 마을 여자들의 이름을 집어넣고 사다리꼴로 만든 이 달력에 의해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아마, 이 시간개념의 혁명이 마리키타의 가장 혁신적인 사건이 아닐까. 로살바는 모든 사유물을 공동화시키기까지 한다. 마을의 여자들은 모두 역할을 부여받고 일을 하며 사유재산은 인정받지 않는다. 나중에 전쟁에서 도망친 남자들이 마을로 돌아왔을 때도 이 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제 마을은 여자들 것이 되었으니까.

어찌 보면 상당히 혁명적인 소설로 보이는 이 책은 기존의 개념을 모두 뒤엎는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남자들에 예속되어 살아오던 여자들이 공동사회를 꾸려나가며, 거꾸로 가는 시간 개념을 도입하고 나체로 거리를 활보하며 여자들끼리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다. 자신들의 비참함을 내버려두는 신을 더 이상은 믿지 않으며 꾸준히 해오던 예배까지 없앤다.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고 엉뚱해 보이기까지도 하다. 거기에는 유머와 농담도 충분히 배여 있어 그 모든 게 거대한 농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쟁의 비참함에 굴욕당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자신만만한’ 사회를 꾸려나간 여자들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지랴. 또한, 그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책을 집어던지기에 이 사회는, 지금까지의 역사는 얼마나 ‘말이 되는’ 일들만 있었던가.

각 챕터마다 짤막하게 이어놓은 남자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그 비참함과 현실성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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