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몽상 -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홍성영 옮김 / 하늘연못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어린 시절 한번쯤 겪고 지나갔을 작품들 가운데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온갖 괴담과 기담 사이에서 나의 어린 귀와 미성숙한 정신은 좀 더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럴 때 만난 것이 포의 ‘검은 고양이’와 ‘어셔 가의 몰락’이다. 이 두 이야기는 무수한 학교 괴담이나 화장실 귀신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와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밤에라도 검은 고양이 플루토가 책에서 튀어나와 나를 노려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생매장의 가능성과 그에서 기인한 공포 또한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후에, 셜록 홈즈에 흠뻑 빠져있던 내게 다시 다가온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은 추리소설계의 대부라는 점에서 처음으로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새기게 되는 계기까지 만들어주었으니 그게 바로 나와 포의 인연의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다. 물론 그 후로 꽤 오랫동안은 그를 단순히 공포와 괴기의 작가라는 고정관념을 가지는 누를 저질렀지만 말이다.

   사실 기존에 국내에 소개된 포의 작품을 보면 나의 오해는 무리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포의 이름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작품들 대부분이 공포나 추리 파트 중에도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과 나에게 ‘우울과 몽상’은 그간의 오해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책이다.

  이 전집엔 총 59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고 이는 각각 환상, 풍자, 추리, 공포의 네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추리나 공포는 비교적 많이 접해보았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게 없지만 환상과 풍자 파트는 읽어본 일이 전무했기에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은 한마디로 ‘놀라움’그 자체였다. 환상 파트에서는 그의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상당한 과학적 지식을 소설화시킨 점을, 풍자 파트에서는 ‘뒤팽’이 보여준 바 있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과 세태를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풍자한 것을 볼 수 있다 . 특히 풍자는 그 성격에 걸맞게 유머가 적절히 배여 있어 포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 외, 포의 전집 전반에 걸쳐 두드러지게 드러난 현상은 인간의 내면에 관한 탐구다. 이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심화된다. 때론 냉소를 품고 때론 광기에 넘쳐 인간의 내면에 메스를 갖다댄다. 헤집어진 인간의 내면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음울하거나 기괴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마음의 심층부에 자리잡은 일면일 가능성은 그저 픽션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없게끔 한다.

 보르헤스는 말했다. ‘방대한 양의 책을 쓴다는 것은 쓸데없이 힘만 낭비하는 정신나간 짓’이라고. 그는 압축의 미를 강조했고 평생 단편소설을 썼다. 그런 그에게 모범이 된 작가가 바로 에드거 앨런 포다. 단편소설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포는 단편소설 분야를 개척했고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는 흔히 그를 부를 때, 단편 소설의 아버지라고 이르는 것을 보면 짐작할 만하다.

  그는 짧은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녹여내면서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은 실로 대단하다! 게다가 실제 이름을 살짝 바꿔치기 하기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거나 누군가의 행적을 들려주는 수법으로 픽션의 재미를 한층 더 높여준다.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지만 포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이라면 이만한 선물이 또 없을 것이다. 여전히 '포'하면 괴기스런 고양이나 어두침침한 저택을 떠올리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포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