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에게는 적어도 세 개의 얼굴이 있다. 그리고 그 세 이미지를 나란히 간직하기란 매우 어렵다. 먼저 가출과 분노로 얼룩진, 매우 젊고 눈부신 시인의 얼굴 하나. 다음, 끊임없이 헤매는 고독한 방랑자의 얼굴이 그 뒤를 잇고, 그리고 아프리카 하라르(에티오피아 동부의 도시)의 대담한 중개상의 얼굴이 또 있다. 

 그 셋 중 어느 하나를 중시하는 것은 나머지 둘에 대해 오판하는 일이다. 아르튀르 랭보는 두가지 일로 물의를 빚는다. 먼저, 열일곱의 나이에 그렇게 빨리 그렇게 거세게 시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스물넷의 나이에 시의 세계에서 나와, 중개상의 삶, 무기 밀매자의 삶을 살러 떠나서는 더 이상 시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는 것.

프랑수아 봉 『불을 훔친 사람들』p. 59

Total Eclipse



 내가 아르튀르 랭보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2학년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이 한 권의 책, 프랑수아 봉의 <불을 훔친 사람들>을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집으로 가져와 읽던 중 랭보를 발견한 것이다. 사실 난 시를 잘 모른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랭보에 매료되었고 바람 구두를 신은 그처럼 종일 길거리를 쏘다녔다. 그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이해도 못한 채 읽고 되뇌었다. 그러나 역시 그의 시는 난해했고 그래서 서서히 잊어갔다.

 며칠 전 랭보의 삶을 다룬 이 영화 <토탈 이클립스>를 보았다. 영화의 존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쉽사리 볼 수가 없었다. 영화 내용는 책에서 본 것과 대략 비슷했다. 다만 영화에는 랭보와 베를렌느와의 관계가 주 내용을 이루고 있을 뿐 랭보의 전체적인 삶을 비중있게 다룬 것 같지는 않다. 그점이 몹시 아쉽지만 그래도 역시 한때 내가 열렬히 추종했던 랭보의 삶의 단면을 볼 수 있어 영화를 보는 내내 설레었다.

 영화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런던에서 랭보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여 떠나는 베를렌느 앞에서 랭보가 절규를 하는 모습이다. 가지말라고 모두 어리석은 농담이었다고 울부짖는 그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근데 정말, 랭보는 베를렌느를 사랑했을까.

 영화는 확실치 않다. 랭보와 베를렌느, 두 인물의 전기를 다루었다고는 하나 역시 영화일 뿐이다. 확실한 건 그들이 남긴 시들일 것이다. 영화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지금 나는 열다섯 무렵 그랬듯이 다시 랭보의 시를 찾아볼 것이다. 과연 지금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2006.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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