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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1월
평점 :
걱정하는 마음, 지켜주고 싶은 마음, 오래오래 행복한 걸 지켜보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게 사랑의 한 형태임을 보여주는 소설.
제발 너를 걱정해.
네가 죽을까 걱정해.
-<붉은 실 끝의 아이들>, 196쪽.
요즘 들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다수 보인다. 어찌 보면 미숙하고, 또 다르게 보면 감정에 가장 솔직할 나이다. 미숙하기 때문에 실수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역동적인 매력적인 나이대다.
이는 유리와 시아에 관한 얘기기도 하다. 유리와 시아는 서로를 보고 '처음 보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아이로 인식한다. 있어도 존재감이 없고, 생명력 자체가 흐릿한 시아와, 예지몽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을 달고 사는 유리. 둘의 관계는 시아가 유리의 '걱정'을 알아보면서 시작된다. 고작해야 몇 달을 함께하면서 시아는 끝까지 유리만 걱정했고, 유리는 시아만을 살리려 했다.
이 세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이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유리의 능력은 예지몽과 평행세계의 다른 '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시아의 능력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날 평행우주에서 온 각기 다른 '나'들은 시아를 죽이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며, 이것이 평행우주의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 한다. 이미 어느 행성은 멸망했으며, 어느 행성은 시아의 죽음으로 멸망을 면했다. 마지막 남은 행성이 지구다.
이런 지구 망해도 상관 없어.
-<붉은 실 끝의 아이들>, 201쪽
시아가 죽는다면, 살고 싶지 않아지겠지. 다른 '나'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들 또한 자신의 손으로 시아를 죽였다. 따라서 죽고 싶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감시받고 있다는 이유로 죽지 못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시아를 잃은 '나'들은 비뚤어진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시아를 잃었으니 유리에게도 시아를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아를 잃은 후 그들은 공허해졌고, 사랑은 사그라들고 분노만이 찌꺼기처럼 남았다. 억울해졌다.
유리는 시아의 죽음을 막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의 회귀를 겪는다. 또 처음처럼 시아를 만나고, 시아와 인사하고, 붉은 실이 둘을 구속하는 것을 느끼고, 이별을 감지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시아의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단지 유예기간을 벌기 위해 흐르는 시간을 회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리와 시아의 관계가 가장 특별했다고 할 수도 없다. 다른 평행우주의 다른 '나'들도 유리만큼 시아를 사랑했다. 시아는 때로 '나'의 가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려 동물로도, 연인으로도 나타나기도 했다.
엄마는 네가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너는 엄마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네. 우리 인과율자,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물론 죽음은 두렵지. 그건 걱정과는 다른 거야.
65쪽, 륜의 엄마가 륜에게
저쪽도 이제 알 거야. 너랑 나처럼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나에게 지성이 있다는 것도 알고, 두족류도 지상동물처럼 각자가 구별되는 존재라는 것도.
122쪽, 진의 연인이 진에게
그냥, 널 걱정하고 싶어져서.
40쪽, 유리의 시아가 유리에게
이유 없이도 사랑하게 되는 사람, 몇 번이고 고통을 반복해도 좋을 정도로 안위를 바라는 사람, 책에서는 이를 '운명'이라고 표현했지만, 결국 소중한 사람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오며 우리는 아무런 이유나 대가 없이도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 한 사람의 무게는 때론 온 우주의 무게보다 무거우며 여기엔 어떠한 이유도 인과관계도 개입되지 못함을, 이 감정의 정체와 그 귀중함을 나는 새삼 다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