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비치네 1
소려홍 지음, 남옥희 옮김 / 가람기획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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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삼가다"

" 사랑이란, 잘못한 사랑이란 없습니다. 그 사람을 이미 당신 마음으로부터 사랑하였으므로 결국은 일생동안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하며, 다만 밝고 확실히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깊이 자신의 의지를 모으고 자기 마음을 붙잡아야만 넉넉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이미 넉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가지기 위해서 반드시 붙잡아 둘 필요는 없습니다.

장자가 말하였는데 '자연이란 금을 산에다 숨기고, 진주를 연못에 숨겨둔 것과 같다(若然者藏金於山藏珠於淵) .'고 했습니다.
......중략...

정관이 삼가 썼습니다."

대만 작가 소려홍의 소설 <<千江有水千江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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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의 메이메이가 예전에 소설 두 권을 선물했는데 둘 다 심상에 남았습니다. 그 하나는 신영복 선생이 번역해 유명해진 다이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이고 , 나머지 하나는 바로 위의 소려홍의 소설입니다. 둘 다 작가의 깊은 사색이 담긴 우아한 책으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다행히 번역본이 있습니다.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비치네>는 원래 따온 불교의 가르침이죠. 본디 실체의 달, 즉 진리는 하나지만 받아들여서 퍼질 대는 수만 수천의 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만 여기선 사랑하는 사람이 달이겠지요. 대만의 전통적인 가문에서 자라난 정관이란 소녀의 성장기와 첫사랑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표지의 아래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이십 오년. 세월 따라 우리는 늙었건만 추억은 늙지 않았구나. 옛이야기 밖의 우리는 순진함을 잃었건만 이야기 속의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움켜쥐고 있네...>

2.
얼마전에 죽림칠현에 관한 책을 읽다가 책의 말미에 "삼가...이 썼습니다."란 표현을 보았는데 이 소설에서도 다시 발견하곤 "삼가"란 말에 매료되었습니다. 일종의 형식처럼 보이지만 그 '삼가'란 말에 '文"과 그 글의 대상에 대한 존중과 겸허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 <<예기(禮記)>>에도 나오듯 관계의 예 역시 '삼가고 정중하고 성실하게 지낸 후에야 가까워지는 것'이겠지요.

* 사랑이 왜 인의예지신의 총합인가를 다시금 생각하며 삼가 몇 줄 보탭니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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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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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빌의 소설 주인공 '필경사 바틀비'는 "안하는 걸 선택하겠습니다"라고 수동적 저항을 하는 인물이지만, 존 윌리암스의 '스토너'는 수동적 순응을 하는 인물이다. 양상은 달라도 그 둘은 다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이다. 스토너는 자기 삶에 의미를 지니는 아주 주요한 부분을 빼곤 대부분의 영역에서 남과 다투지 않고, 제 삶의 방관자처럼 살아간다. 수동적 순응, 방관함으로써 직장과 결혼이 주는 굴레를 벗어버린다. 서구에선 새로운 저항의 유형이지만 동양에선 어쩌면 익숙한 유형이다. 체념을 통한 달관??!

발간된지 50년이 지나 새롭게 조명된 소설,
<<스토너>>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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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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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 4부작이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다.

현재 서구 독서계를 사로잡는 두 이름,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와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두 작가 모두 자전적 삶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방대한 시리즈에 담았다. 둘 다 노르웨이어와 이탈리아어로 씌여져 번역조차 쉽지 않은 기획인데,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에선 한길사가 그 총대를 맸다. 노르웨이와 이탈리아의 소설이니 역자 구하기도 쉽지 않을 터!! 한길사 창립 40주년의 기념 발간이다.

 

 

 

그 중 1부인 <<나의 눈부신 친구>>가 한길사에서 7월 7일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아무 흔적없이 갑자긴 사라져 버린 친구의 삶을 증거하기 위해 작가가 쓰는 일종의 비망록이자, 자서전이다.

 

서로 경외와 질투, 기쁨과 고통, 자랑과 열등감의 대상이 동시에 되는, 그러면서 평생 인생이 서로 뒤섞이는 두 여인이 주인공이다. 페란테가 형상화한 '릴라와 엘레나의 관계는 데미안과 싱클레어,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와 같이 문학사를 장식한 특별한 관계의 전형에 비견될 만하다. 그런데 선악 너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친구인 데미안과 선의 세계에 갇힌 규범적 싱클레어의 경우나, 타고난 천재 모차르트와 노력형 수재 살리에르의 경우엔 그 관계가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반면에, 릴라와 엘레나의 관계는 평등하고 역동적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평과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이것은 우정이라는 관계가 지닌 본성에 기인한다. 우정은 본질상 평등성과 상호성, 향상성에 기반한 아주 냉철하고 고독한 관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의 정의처럼  서로가 친구라고 인정해야 우정이 성립한다.  그래서 우정에는 항상 인정 불안이 잠재되어 있다. 엘레나와 페란테가 서로의 마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에 기반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것만큼 힘드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어느 시점에 피빛발로 깽기발을 하며 따라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인생의 크고 작은 변화 속에서 또 달라진 위상 속에서 보폭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그 우정의 지난한 과정과 과업을 엘레나 페란테는 놀랄 정도로 세밀히 묘사한다. 우정이 사람의 구체적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 깊숙히 관여하며 서로를 좌절시키고 또 눈부시게 이끌었는지를  아주 세밀하게 더듬었다.

 

"나는 한동안 릴라를 피했다. 그만큼 화가 났다. 나도 그리스어 문법책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갔지만 우리 도서관에 비치된 유일한 그리스어책은 체룰로네 온 식구가 번갈아가며 빌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칠판에 그린 그림을 지우듯이 릴라를 지워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자신이 연약하게 느껴졌고 모든 것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것처럼 느껴졌다.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며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릴라를 찾았다.˝ (183쪽)

 

초기의 둘의 관계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그것처럼 천재적 직관과 악마적 매력을 소유한 릴라에게 추가 기운다. 그것은 상급학교 진학이라는 분깃점을 두고 서서히 엘레나 쪽으로 넘어오다가,

사춘기를 지나 청년기로 오면서 균형점을 찾는다. 엘레나에 비해 어른스럽고 똑똑했던 릴라는 가정형편 때문에 제도적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독학에 의지한다. 그녀는 엘레나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해서 상급학교로 진학한 엘레나에게 오히려 지적 영감을 제공하고 엘레나를 독려하는 위치에 선다. 한편 엘레나는 이런 릴라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극을 받아 학업적 난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점차로 독자적인 공부의 기반을 쌓고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은 한계를 지니고 릴라는 점차 다른 세계로 빠진다. 릴라는 공부로 균형점을 찾기 힘들자 돈으로 엘레나가 가진 교육의 계단과 나란히 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릴라의 잘못된 결혼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암시하면서 1권은 끝난다. 두 여인을 구별하던 불균형의 잣대, 즉 천재와 범재, 초월적 매력과 규범적 착함을 가르던 선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안타깝다. 엘레나의 마음 역시 그러했으리라!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는 즐거움은 눈부신 우정의 추이를 지켜보는 데에만 있지 않고,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군상들이 행동을 선택하는 심리적 동기 들여다 보는 데에도 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윤곽(프레임 혹은 상)이 허물어지는 징조를 느끼거나 관계의 파국의 전조를 감지하는 것은 거창한 사건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소하고 미미한 차이에서 이다.

페란테는 우리 인생에 커다란 구멍을 내거나 분깃점이 될 수 있는 그런 미세한 차이들에 관해 세밀히 살펴 눈부신 통찰을 표시안나게 소설 곳곳에 뿌려놓았다. 거창한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작고 작은 사건을 흥미롭게 서술하는 게 소설의 본령이 아닌가! 그녀의 소설이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데에는 이점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기이하게도 감상을 배제한 건조하면서도 가벼운 문체로 씌여졌는데도 소설에서 서정적 심미감과 진중한 무게감을 느꼈다. 문학적 시의는 서정적 문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시선에 있음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그 없이는 나의 삶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시절, 그런 우정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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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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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필생의, 눈부신 친구가 되는, 저 벅차고도 서늘한 우정의 과업을 놀랍도록 잘 포착한 소설!! 서정적 심미감은 서정적 문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깊은 시선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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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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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의 문체: 문체없는 글?

악착같이 내게 달려들어 두 손 가득히, 있는 힘을 다해, 오만하게, 내 안에 있는 인간을 다 뽑아내었다.
초록색 잎이 달린 이 나무를 가지고 나는 하나의 기둥을 만들어, 그 꼭대기를 제단 삼아,
거기에 어떤 천상의 불꽃을 올려놓고 싶었다.[......] 36세라는 나이에 내가 이토록 속이 텅비고
가끔 그토록 피로를 느끼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고사시켜 예술의 불꽃을 피우려던 플로베르의 글이다.
플로베르는 <<보봐리부인>>을 쓰는 5년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문체를 다듬었다.
8000여장의 원고지를 4000여장으로 줄였다. 말의 의미가 문체 속에 스며들 때까지!

크나우스고르 역시 3년동안 6권 원고지 3만6천장의 소설 속에 자신을 다 소진시켰다.
그러나 그는 플로베르와 정반대 길을 걸었다.
말의 의미가 오롯이 드러나도록 문체를 지워나갔다. 그에겐 방대한 량의 <<나의 투쟁>>이 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끝에서 새로운 문체가 태어났다.
"문체없는 문체", 투명평담체.이른바 "크나우스고르체"

"최고의 존엄은 진실이다"

*문학적으로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은 수천가지다. 그 한 가지 방법을 크나우스코르가 만들어 냈다. 그것 역시 스타일이다. 그가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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