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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남자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의 마르코와 그 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 크누트 함순의 <굶기의 예술>을 떠올렸다. 모두 자신을 극한에까지 마이너스적 방향으로 소진시키면서 존재의 의미를 추구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였다. 달이 이즈러졌다 다시 차오르는 것처럼, 존재에서 비본래적 요소를 다 제거해야만 다시 적극적으로 플러스적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역설!
조르쥬 페렉의 <잠자는 남자>는 "나"라는 일인칭이 아닌 "너"라는 비주체적 이인칭으로 기술되어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주체가 빠진 너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매사에 무관심하며 삶에서 자신을 지워가기에 급급하다. 아무 것도 안하기, 더이상 기다릴 것이 없을 때까지 기다리기, 그는 근대의 이상이던 성공하려는 삶의 의지가 없다. 외려 적극적으로 탈개성화하고 자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즉 그의 의지는 마이너스를 향하려는 의지이다. 이것은 타자에 의한 영락과는 다르다. 자발적으로 영락하는 것은 영락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인 일이 되고, 존재로의 실험이 된다. 그러기에 마지막에 그는 다시 반환점을 돌아 자신을 바꾸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역시 자발적으로!
누군가가 권하는 대로, 타의에 의해서 우리는 성공이데올로기를 주입받고, 자아의 확장을 꾀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너무나 당연히 여기는 그 근대적 성공의 가치를 페렉의 주인공은 무조건 수용하지 않고, 그 반대로의 실험을 해봄으로써 체득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자발적 무관심과 영락은 적극적인 허무이다. 그래서 그의 무관심은 힘이 있다.
추기: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역시 그의 자사전적 에세이 <불안의 책>에서 페렉과 같은 정조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고보면 자신의 존재의 부피를 소진시켜 존재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존재론적 실험은 서구 문학의 한 흐름으로 자라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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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변화를 줄 수 없는 그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다.그렇게 되면 그는 사소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존재의 변화가 없을 때까지 존재를 단조롭게 하라. 가장 사소한 것이 흥미로운 일이 될 때까지 하루 하루 감정을 이완하라.지루하고, 똑같고, 불필요한 노동을 날마다 몰두하다 보면 내 앞의 탈출의 환영이 나타난다. 머나먼 섬에 대한 상상 속 이미지가, 과거에 있었던 동원의 거리 축제가, 다른 감정이, 다른 내가 나타난다.그러나 장부 두 권에 숫자를 적는 동안내가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중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을 나는 한 권의 장부를 쓰고 다음 장부를 쓰는 동안 인식한다.(<불안의 책>,38-39)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때문에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이라도 되었다면나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회계사 보조는 로마의 황제가 되는 꿈을 꿀 수 있다. 영국의 왕은 그럴 수 없다. 영국의 왕은 이미 왕이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것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같은 책,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