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코 범우문고 171
고골리 지음, 김영국 옮김 / 범우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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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박진영이 쓴 <희망고문>이란 글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지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만날 마음도 없으면서 분명한 거절을 하지 않고 여지를 두는 것이나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무료함을 때우려  대타로 만나는 것, 혹은 헤어지는 이유를 완곡히 돌려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헛된 희망을 줌으로써 그들이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희망고문이라 한답니다. 때론 명확한 거절이 막연한 희망보다 더 훌륭한 배려라는 거지요.

희망이 오히려 잔인하다는 것은 누군가를 짝사랑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런 희망이 갖는 잔인한 일면을 소설 속에서 찾아보기로 할게요.

 

고골리의 <외투>를 읽어보신 적이 있으세요?

말단 구등관 공무원 아까끼 아까에비치는 문서를 정서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갑니다. 그는 그일을 의미있게 받아들였으며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데에 만족하며 삽니다. 바깥의 일이나 사람들과의 흥청거리는 교유도 없이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다 떨어진 그의 낡은 외투처럼 익숙하나 낡은 풍경처럼 삽니다. 사람들 역시 그를 풍경처럼 바라보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물론 그를 아낀 상관이 그에게 더 나은 일, 예를 들어 문서를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작성하는 일을 맡진 적도 있지만 그는 그일을 감당하지 못해 거절합니다. 자기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아까끼에게 일이 하나 생겼어요. 입던 외투가 다 헤져 더이상 수선이 불가능해 새외투를 장만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는 그 외투를 살 돈을 절반밖에 가지지 못했어요. 해서 외투를 장만하기 위해 그는 밥을 한끼 굶고 옷세탁도 줄이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 듯 내핍을 견딥니다. 새외투가 생기리라는 희망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현실에 고통을 견디는 거지요. 상여금이라는 우연한 행운 덕분에 그는 계획보다 일찍 그 외투를 장만하게 됩니다. 새외투를 입은 아까끼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한 과장이 부유한 거리에 있는 자기집 파티에 그를 초대하게 됩니다. 아까끼는 새외투 덕분에 평소의 자기와 다른 세상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지요. 춤과 노래와 사교가 있는 세상요. 그는 그 세상이 있는 과장의 집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서게 되나, 그가 그렇게도 자부심을 가지고 입고 갔던 외투는 그곳에선 하찮게 취급받는 물건에 다름없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 저기 놀이에 끼여들기도 해보았지만 이내 식상한 그는 외투를 걸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도중에 불량배들을 만나 새외투를 빼앗기게 되지요. 다시 낡은 외투를 걸치게 된 아까끼는 더 비참해졌어요. 새외투를 찾으려는 생각때문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거리에서조차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이지요. 헌 외투를 입어도 이전의 안온하고 자족한 생활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지요. 환락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외투를 찾으러 사방팔방 진정을 해 보아도 헛되자 병을 얻어 그만 죽고 맙니다. 그의 주검은 낡은 외투로 감싸졌지요.

 

제것이 되지 못하는 열망은 고골리의 새외투처럼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미 경험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지요. 새외투를 입고 좋았던 경험은 그를 현재에 만족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느끼게 하지요. 일회성 당근이 좋지 않은 것처럼요. 오래되고 안정적이나 무미건조한 삶을 흔들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새외투의 환영과 설렘 뒤에는 어쩌면 삶의 비수가 들어있는지도요. 물론 잃어버려서 제것이 못되는 외투가 될 때만요. 한 발 한 발 내디디는 새로운 삶에는 뒤에 항상 비수가 꽂힐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요. 새외투를 살려면 그 비수까지 감당해야 함을요.

 

*윗글 고골리의 <외투>는 제가 외투를 사면서 연상되어 쓴 글입니다.

원래 고골리가 이 글을 쓴 것은 프롤레탈리아에게 일종의 경종-프로레탈리아가 구조적 변혁없이 부르조아 세계를 무조건 동경하고 일시적으로 맛봄으로써 전락해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을 울리고자 함이지요.

 

추신: 윗글과는 관계없는 여담 한가지:

 

저는 그저께 겨울 외투를 새로 한 벌 샀답니다. 이곳은 겨울이 없는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 겨울옷이라는 이유로 까다로움을 접고 입을만은 해서 장만했는데, 집에 와 찬찬히 살펴보니 맘에 안드는 부분이 꽤 되었어요. 다른 것으로 바꾸려니, 값을 손해볼 듯 하고, 그대로 입자니 썩 맘에 안들고 그랬어요. 물론 물리는 것은 중국사회에서 절대 되지 않는 일입니다. 방법이 없어 그대로 들고왔는데 이놈이 글쎄 제 것이 되고 나니까  볼수록 멋이나는 거예요. 혹 다른 마음이 들까봐 아예 세탁까지 해버려 바꿀수 없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고 나니 치룬 비싼 값이 전혀 아깝지 않더라고요. 어떤 것은 제 울타리에 집어 넣어야만 빛이 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200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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