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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컴퓨팅
Tom Igoe 지음, 서동수 옮김 / 지구문화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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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컴퓨팅>은 이론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용에 관한 책도 아니며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쓴 교양서적도 아니다. 그 보다 본 서는 제작 및 실습에 관한 책이다. 무언가를 만드는데 흥미가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책은 어떤 움직이는 기계들을 궁리하고, 자작(DIY)하고, 기존 기계들의 기능을 수정(Modify)하거나 해킹(Hacking)하는 것에 재미 들린 전자공작 매니아들, 혹은 최소한 그러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내용의 8할은 전자공작에 전적으로 할애되어 있다. 기계가 재미있게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자공작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회로구성과 납땜하는 방법과 저항을 연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마이컴으로 모터를 어떻게 제어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각종 센서류에는 무엇이 있는지, 각 센서의 특성은 어떠한지를 가르쳐준다. 센서와 모터를 어떻게 연결하면 더 재미있는 반응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완전 초짜들을 대상으로 전자공작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알아야 할 수학이라고는 달랑 V=IR 이라는 간단한 수식 하나뿐이다. 그래서 "난 전자회로를 한번도 구경해 본적이 없는데..." 하는 사람도 전혀 겁먹을 필요가 없다.(단, 뭔가를 만들어 보려는 동기는 있어야 한다.) 책 제목이 풍기는 근엄함! 과는 달리, 저자는 어려운 내용도 아주아주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려운 내용이 잘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피지컬 컴퓨팅>은 온전히 전자공작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은 일반인들의 컴퓨터에 대한 개념틀을 깨는 뭔가를 담고 있다. 누구나 집에 한대 이상씩은 갖고 있는 PC의 강력함과 그것을 대할 때의 익숙함에 맛들인 사람이라면, 저자가 소개하는 컴퓨터에 대한 새 개념틀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그렇게 낯선 개념은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린 스마트폰은 <피지컬 컴퓨팅>이 담고 있는 이런 생소한 정신을 잘 구현해주고 있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스마트폰의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UX)이 그리 낯설지가 않다.

여기서 질문하나. 스마트폰엔 있는데, 일반 PC엔 없는 게 뭘까? 이 차이가 어느 정도 이 책에 대한 힌트를 주기에, 이는 꽤 유효한 질문이 된다.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제시될 수 있겠지만, 여기엔 손가락 터치와 중력 같은 것에 응용 프로그램들이 반응한다는 점이 꼭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 기동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제외하면, 스마트폰은 애초에 PC와 대적 상대가 못 된다. PC에 비해 화면도 작고 성능도 떨어지며 응용 프로그램들의 양과 질적 수준을 따지자면 PC가 스마트폰 보다 몇 백배는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지컬 컴퓨팅>은 스마트폰이 지닌 이 작은 장점에 주목한다.(비록 스마트폰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저자는 전통적인 컴퓨터를 바보상자가 아니라 현재의 스마폰처럼 유용하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컴퓨터를 유용하고 재미있는 물건으로 만들기 위해 주변에 여러 종류의 센서들을 부착하고, 모터까지 달아서 풍부한 사용자 경험(UX)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자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 쉽게 말해서, 전통적인 컴퓨터에 눈과 귀 같은 감각기관을 달아주고 여기에 손, 발까지 달아서 실제 살아 숨쉬는 사람과 풍부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그렇다고 어떤 정형화된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건 아니다.) 눈, 귀에 해당하는 것이 각종 센서류이고 손, 발에 해당하는 것이 모터와 솔레노이드(모터가 원운동을 만들어내는데 비해 솔레노이드는 직선 운동을 만들어낸다.)같은 것임은 책을 읽어나가며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을 터이다.(편의상 이 단락을 #1로 표시한다.)

물론 여기서 언급하는 컴퓨터는 일반 PC만을 지칭 하는 게 아니라 각종 마이컴들을 모두 포괄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무거운 PC뿐 아니라, 임베디드 장비에 주로 쓰이는, 극히 단순화된 회로로 구성된 마이크로컨트롤러류를 모두 컴퓨터로 본다. 그리고 이 책이 담고 있는 대부분의 설명은 PC가 아닌, 이 극히 작고 단순화된 마이컴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이 책에선 마이컴과 구별하기 위해 PC를 '멀티미디어 컴퓨터'라는 별도의 용어로 규정하고 있다.)

꽤 길게 설명했지만 내용을 요약하면, <피지컬 컴퓨팅>은 이 분야 초심자들을 대상으로 회로나 전자장비에 대한  디지털 기준의 거의 완전한 전자공작 실습 교재로서, 기존의 컴퓨터가 가진 인터페이스(키보드/마우스/모니터)의 한계를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전자공작(그리고 이를 제어하기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책 내용의 8할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인터페이스 확장에 대한 개념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전자공작을 전자공학이나 회로해석 이론과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 분야 모두 하나로 엮일 수 있긴 하더라도, 이들은 엄연히 달리 봐야 하는 독립적인 분야다. 여기서 상세한 내용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자공학이나 회로해석은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내용임에 반해 전자공작은 아마추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공부하는 입장에선 꽤 중요하다. 이 책은 또한 디지털 논리회로를 다루는 전공서적, 혹은 그런 전공서를 더 쉽게 풀어 쓴 교양서도 아니다. 전술한대로 본서는 단지 디지털 기준의 전자공작만을 다룬다. 이 책 구입 전에 이 점은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물론 아날로그 입/출력도 다룬다. 그러나 모든 설명은 디지털 기준이다. 그래서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환하는 컨버터와 신호 변환기법 같은 것을 같이 다룬다. 이것이 보기만큼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피지컬 컴퓨팅>"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위한 전자공학" 이란 부제가 무색하게도(물론 이들에게도 적합한 교재다.) 시중에서 판매중인 로봇제작에 대한 그 어떠한 책들보다도 설명이 잘 되어있는 명실상부한 로봇 제작 실습용 교재라고 본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로봇 제작을 위해 서점, 도서관을 전전하며 로봇과 관련된 거의 모든 책들을 훑어봤는데, 로봇 제작에 막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이만한 책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이 로봇 제작과 내용적으로 겹칠 수 밖에 없는 건 기계를 살아 움직이게 해서 사람과 풍성하게 상호작용 하게 만드는 것(<피지컬 컴퓨팅>이 지향하는 바) 자체가 기술적으로 로봇에 사용되는 모든 요소기술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비록 로봇제작이 저자가 원래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이 책을 로봇 제작 입문서로 보는 것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데다가 나는 <피지컬 컴퓨팅>이 그러한 종류의 책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기계를 다루는 예술가와 디자이너보다는 로봇 제작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 개발자들, 전자공작 애호가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인데, 이런 현실에 비해 시중에 로봇제작 초심자들에게 맞는 쓸만한 책들을 (이 책외엔)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로봇 제작에 관련된 실습용 책들은 그 내용이 부실하거나 체계가 많이 부족했다. 가령, 어떤 책은 모터에 대해서 지나치게 자세하게 나와있지만 마이컴을 다루는 법은 거의 나와있지 않다. 어떤 책은 로봇 움직임의 수학적 해석에만 매달린다. 또 다른 책은 이미 전자공학에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을 전제한 채로 전자공학 용어만 나열하다가 만다. 또 다른 책은 마이컴에만 치중해서 로봇 제작을 위한 전체적인 회로를 어떻게 구성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나와있지 않다. 초심자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절실한 것은, 회로구성을 하는 방법(또 회로도를 보는 방법)과 납땜하는 방법부터 익히는 건데 대개의 로봇 제작과 관련된 실습용 책들은 이를 건너뛰거나 다루더라도 무질서하게 내용을 나열할 뿐이다. HW에 치중한 책은 SW를 건너뛰거나 혹은 그 반대인 경우도 많았으며, 마이컴을 다루는 책의 경우 8051이니 하는 특정 프로세서만을 위주로 해서 책이 구성된 경우가 많았다. (그 책은 제목에 정확히 '로봇'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봇 제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수미-일관하게 설명해주는 내용으로는 이 책을 제외하고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실망스러웠다. 초심자 입장에서 로봇 제작을 위해 다른 참고자료들을 참고하지 않고도 그 책 한 권 만으로 모든걸 구성할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자료, 책이 전무했다는 것이다.(하다못해 브레드 보드와 PCB 기판의 차이를 가르쳐주는 책조차 본적이 없다.) 

물론 시중에도 전자공작에 대한 책은 꽤 있다. 그러나 로봇제작과 연계한 전자공작 책은 발견할 수 없었다. 사실 본 서를 접하기 전엔 입문용으로 모 출판사의 전자공작 시리즈(몇권에 걸쳐 연재되는 형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나마 그 중에서 내용이 잘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책은 마이컴과 회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프로그래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SW의 측면)에 대해선 나와있지 않아 이에 대한 별도의 공부를 요구했고, 더군다나 꽤 오래된 책이라 최신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피지컬 컴퓨팅>을 접하게 되면서, 이 책이 로봇 제작 실습용으로는 시중에 나와있는 것들 중에 가장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이런 류의 책조차 한국인 저자들을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을 개탄스러워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이 책을 로봇 제작에 막 입문하려는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다른 책들을 보며 괜한 삽질 할 필요가 없다. 로봇 제작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이 책부터 읽어라. 두드려라 그럼 문이 열릴 것이다!

<피지컬 컴퓨팅>은 전체적으로 1, 2부로 나눠지는데 1부만으로도 기본적인 내용은 익힐 수 있다. 2부는 1부의 응용이다. 응용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2부는 안 읽어도 내용을 스스로 구성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초심자라면 2부까지 읽을 것을 권한다. 기초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솔직하게 말할 때가 됐다. #1은 저자의 의도를 내가 다소간 주관적으로 해석한 경우라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1의 내용을 반대로 돌려야 저자의 의도에 더 잘 부합하는 것이리라. 여기까지 읽어온 독자라면 한번 다음의 시나리오를 생각 해 보자.

눈과 귀 그리고 전구가 달린 Y라는 기계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박수를 치면 불이 켜지는 그러한 단순한 회로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 해 보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감지하기 위해 눈(빛 감지 센서)이 필요하고 박수 치는 것을 감지하기 위해 귀가 필요하며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게 될 때 불이 켜져야 하므로 전구가 필요하다. 사실 이런 회로는 그저 컴퓨터 없이 전기회로 자체(몇 개의 스위치와 저항, 센서, 전구, 전선 등)만으로도 기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건 너무 재미가 없으므로,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박수와 함께 발을 구르면 불이 켜지도록 회로구성을 바꾸고 싶다고 하자.(이 역시 그리 흥미롭지는 않은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도 간단하다. Y에 진동센서를 달아주고 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때 불이 켜지도록 기존의 회로를 수정하면 된다.(비록 여러 배선을 일일이 바꿔주는 수고를 해야겠지만)

그러나 상황을 좀 더 복잡하게 꾸미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사람이 Y 가까이 가서 손뼉을 두 번 연달아 치고, 두 번째 손뼉 직후 발을 한번만 굴렀을 때 불이 켜지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는 손뼉 사이의 시간간격을 측정해야 하고 두 번째 손뼉 이후에 발을 한번만 굴렀는지 연달아 굴렀는지를 분별해내야 하며 이 모든 사건이 적절한 시간 간격 안에 수행되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손뼉을 두 번 친 다음 10초가 지나서야 발을 굴렀을 때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엔 꽤 정교한 논리연산이 개입되며, 바로 이때가 컴퓨터가 개입하는 시기가 된다. 즉, 이제는 Y에 작은 컴퓨터를 달아주어야 한다.(작은 마이컴으로 충분하다.) Y는 사용자로부터 적절한 입력이 주어지면 그 작은 컴퓨터로 어떤 논리연산을 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전구를 언제 켜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Y는 이 시점에 최초로 (초보적인 수준의) ''를 갖게 된 셈이다. 물론 배선을 바꾸는 것은 이제 이 작은 뇌에 코드를 프로그래밍해 넣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이 시나리오 전체를 #2라고 하자.)

독자들은 #1과 이를 역으로 바꾼 #2를 진지하게 비교해 봄직하다.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지를 제대로 감 잡을 수 있으면, 생명체 진화와 시스템 제어의 꽤 심오한 측면까지 엿 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다만 저자는 #2의 접근으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1의 방식으로 바라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사실 저자의 거의 모든 의도는 몇 페이지 안 되는 서론에 거의 다 피력되어 있다. 그래서 책의 요점만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서론부만 읽어봐도 무방하겠는데, 이때는 책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자공작에 대한 지식은 그냥 버리는 셈이 될 것이다.

한편, 저자가 의도하고 있는 컴퓨팅에 대한 개념틀은 정보처리 및 전달이라는 컴퓨팅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물리적 입력(센서)-처리(마이컴)-물리적 출력(모터) 이라는 에너지 변환 개념으로 치환한다. <피지컬 컴퓨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본다. 에너지 변환과 정보처리는 상호 겹쳐지지만 서로 다른 개념이며 각자의 기능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사실 제어이론으로 넘어가면 에너지 변환 개념이 정보처리보다 더 역사가 오래되고 학술적인 가치가 높은 내용이 된다.) 역시 깊은 내용은 생략하겠다.

책의 특성상 다양한 독자층이 예상된다. 그 중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전자공학 전공자들도 포함될 것이다. 특히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느끼는 바가 서로 다를 것이다. 아마 프로그래머들에겐 전자공작 내용이 유용하게 느껴질 것이고, 전자공학을 한 사람에겐 프로그래밍 내용이 유용하게 느껴질 법하다. 그러나 둘 다에 충분히 익숙해지면, 어느 쪽에 더 강조점을 두게 될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어떤 종류의 양가감정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그 시점이 어떤 무형의 가치를 결정하는 때로서, 본인이 초심자에서 중급 이상으로 뛰어오르는 때가 될 것이다. 본인이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미리 축하한다. 초급자에서 중급자로 올라서게 된 것을 말이다!  

%아래 박스 친 글은 현재의 로봇 제작업체, 판매업체들과 로봇 제작을 위한 책을 집필하려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관련이 없는 사람은 읽지 않으셔도 된다.%

장차 로봇 제작을 위한 교재, 책을 쓰려는 분들은 이 글을 참고해 초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넘어가길 바란다. 국내에서 로봇을 제작하는 업체나 그것을 다룬다고 하는 권위있는 책조차 로봇 사용자(주로 제작자)의 니즈(needs)와 이들의 현황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대개의 로봇 제작 아마추어들은 인터넷 까페나 동호회 형식을 빌어 사람-to-사람으로 로봇 제작에 대한 노하우를 직접 '전수'받는형태로 로봇 제작을 익히고 있다. 로봇이 전통 옹기 제작과정 처럼 '전수'되고 있다는게 자랑스러워할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지양되어야 할 내용이라고 본다. 뉘앙스가 좋지 않은 표현을 빌어 표현한다면, 이 같은 로봇 제작 분야는 아직 산업화 이전의 "전 근대적인"(근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겠지만)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로봇 제작업체에 특정 부품에 대한 주문을 넣었더니, 달랑 그 제품 하나만 오고 매뉴얼이나 설명서는 인터넷 검색과 동영상을 참고하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곳에도 주문을 해봤지만, 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비스가 완전 개판이라는 것이다. 아직 국내 로봇 산업은 전자 땜질하는 사람들의 공돌이 마인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것 같다. 이 사람들은 고객을 위한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어떻게 친절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로봇 제작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정말로 필요한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감조차 없는것 같다. 공돌이 마인드로 접근하니까 사용자 요구분석이 안되고, 서비스도 개판이 되는거다.(본인들은 나름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여기선 친절함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사용자 요구사항을 파악했느냐라는게 문제가 된다.)  

나의 이런 비판은 로봇 제작을 위한 교재나 책을 집필했거나 또는 하려고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제발 로봇 사용자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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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지?"

복잡계 과학에 대한 무한 관심(?)과 저자 바라바시로 향한 독자로서의 애정(?)때문에 앞뒤 안보고 이 책을 덜컥 사버린 나로서는, 책을 받은 후에야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보통의 책들은 제목과 앞뒷면의 여러 권위자들의 평가 글들을 쭉 읽어보면 대략 그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겠구나 하는 감이 오게 마련인데, <버스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 자체가 예욋값Outlier인가? 란 의문을 갖기도 했다.)

책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이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Burst" 란 우리말로는 폭발내지는 한꺼번에 뿜어 낸다는 것인데, 저자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간의 행동에는 한참을 뜸하다가 한꺼번에 분출하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메일을 보내는 행동에도, 생활속에서 일상적으로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경우에도, 심지어 몸이 아파 병원에 들르는 경우조차 한참을 뜸하다 한번에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횟수나 거리와 같은 기준으로 정량화하면, 그러한 경향성이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내용이다. 가령 우리가 1분1초도 쉼없이 뻔질나게 동서남북을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는 점은 모든 사람이 자명하게 알고 있지만(즉 공간속에서 인간의 움직임은 완벽하게 무작위하지 않다), 대부분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너무 당연해서 더 생각할것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자명하게 생각되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도 의문을 갖고 이 부분에 복잡계 과학이란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 한꺼번에 폭발하는 특성은 그것이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명백한 징후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결론을 인간의 행동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사례들과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과감히 확장한다. 

" 멱함수 법칙은 자연계에 상당히 보편적이다. 시간적 폭발성이 나타나는 곳엔 언제나 멱함수 법칙이 자리잡고 있다. "   


이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이 문구만을 놓고 보니 <링크>에서와 별반 다를게 없는 주장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링크>와 달리 본서는 시간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전작인 <링크>가 표준적인 과학 교양서로의 모범적인 서술형식을 가졌던 반면에, 본작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가능성이 큰, 모험적 구성을 취한다. 저자 입장에선 과학지식과 역사적 지식을 창의적으로 엮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 내용이 조화롭고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의도했을지 몰라도, 독자의 실제 느낌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의 열혈 팬인 나로서도 책의 산만한 구성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스트>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파트로 구분된다.

(1) 하산 엘라히 라는 이름을 가진 아랍계 미국인의 행적을 훑는 부분.
(2) 죄르지 세케이 라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에 놓고 1400~1500년대의 헝가리 일대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
(3) (복잡계) 과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가질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는 근거로는, 내용면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1)~(3)이 씨실과 날실의 형태로 각 챕터별로 교차 편집되어 있어 이야기의 흐름이 챕터 단위로 끊긴다는 점과 함께, 최종적으로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3)의 결론에 (1)과 (2)가 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을 다 읽은 나로서도 잘 확신이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내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실제가 어떠한가는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고 판단 해 봐야 할 일이겠다.

상대적 분량면에서 (1)은 나머지 둘에 비해 작다. 특히 파트(2)는 여느 역사서 빰칠 정도로 중세 헝가리의 역사를 매우 상세히 다룬다. 때문에 <버스트>를 읽다보면, 어느순간 이것이 (사이언스 팩션이란점을 감안하더라도) 과학책인지 역사책인지 혼동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따라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해야 한다.

- 각 장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잘 쫓아 저자의 의도를 재구성하며 읽어야 한다.
- 과학책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2)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때문에 본 서로부터 다른 과학 교양서처럼 양적으로 풍부한 과학 지식을 기대하면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 파트(2)를 읽을때의 난해함을 어느정도 감수해야 한다. 이 난해함은 주로 두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생소한 헝가리어가 첫번째이고, 그 같은 헝가리어들의 양이 무척이나 많다는것이 두번째다.

마지막 주의점에 대해서라면, 예를들어 레나르드 버를러바시라는 인물이, 저자 자신의 선조이면서, 1507년 당시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부총독인 동시에, 자신의 편지에서 죄르지 세케이를 사소한 좀도둑으로 묘사하고 있는 인물로서, 독자는 이를 확실히 기억해 둔 채로 추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를러바시란 이름이 나올 때 마다 "대체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를 연발하며 계속 앞 부분을 다시 들춰 봐야 만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불행히도 <버스트>엔 이런 생소한 헝가리식 인물명/지명/지물명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암기과목에 약한 나로서는 이 부분을 제대로 읽어내는데 꽤 애 먹었다는 점을 솔직히 밝힌다.)

물론 이런 점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나는 (특히 이런 종류에 속하는) 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 못지 않게 독자들의 영감, 통찰, 그동안 파묻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주 귀중한 어떤 불명료한 느낌과 같은것들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매우 가치있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시나 소설은 거의 전적으로 이러한 역할에 할애되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버스트>로부터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서로 다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물론 읽는 동안에 생각해 두었다가, 잊는 바람에 미처 길어올리지 못한 항목도 있을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내게는 큰 소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1. 인간 행동이 반드시 심리학, 생물학만의 연구 대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2. 인간 행동 예측의 실현과 그것과 결부된 [인간에 주는 편익 vs 프라이버시] 문제.
3. 행동 예측과 자유의지의 문제.
4. 엄밀한 역사과학의 시작.

물론 서평으로 올리는 이 글에서 이들 각각을 상세히 살펴 보는것은 부적절하므로, 내가 왜 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배경과 동기들만을 설명하고 이 글을 마무리 하는게 좋을것 같다.(이것만도 꽤 많은 분량이다.) 나는 각 항목들에 대해 이 정도의 언급은 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특별히 항목2는 저자가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므로 내가 따로 덧붙일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최근 구글의 행보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Weekly BIZ] 미래 예측… 神의 영역에 도전
구글-CIA, '마이너리티 리포트' 현실로 만든다  

마침 이 글이 작성되고 있는 시점에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기사도 마련되어 있다.
국외 서버 속 ‘자국민 정보’를 어찌할꼬

독자들은 위의 기사들에 담긴 내용과 저자의 설명 내용을 맞춰 보면서 놀라움과 함께 전율, 혹은 어떤 두려움을 느낄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현실화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와 함께 본서가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검토해 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 외의 항목들은 내가 본 서에서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것들로, 여기에 어느정도는 내 주관이 반영되어 있다는것을 미리 경고 해 둔다. 그럼 이제 이들을 하나씩 훑어보도록 하겠다.(<버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의 서평은 여기까지다.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은 이러한 주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읽도록 하자. 이하 가독성을 위해 각 항목별 설명을 박스로 묶었다. 그지 같은 편집시스템 때문에 박스 치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연결된 별표* 표시로 항목1~4의 시작과 끝을, 세개의 덧셈+표시로 각 항목간 구분을 해 놓았다. 이건 되겠지?

*** *** *** *** *** *** *** *** *** *** *** *** *** *** *** *** *** *** 

항목1은 인간의 행동이 자연의 패턴을 반영하는 측면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본서는 이 점에 결부된 여러 측면들을 논하고 있으나, 저자 자신이 이 지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단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저자의 생각을 한층 더 앞으로 밀고 나가고자 한다. 즉 인간의 어떤 행동은 인간의 심리상태와 무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이 부분은 저자가 가진 생각보다 훨씬 더 방대한 연구분야와 함께 급진적인 어떤 철학적 입장까지 아우를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아직 전인미답의 상태라 하겠으나, 이 분야는 (내 생각에) 체화된 인지를 다루는 특정 분야에서 이미 연구되고 있는 내용들과 부분적으로 겹쳐지는 것 같다.(체화된 인지에 관련된 이론의 학문적 위치나 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직관적인 생각과는 달리 어쩌면 인간(그리고 동물들)은 자신의 심리상태와 무관하게 어떤 행동들을 반복하는 패턴 구현자일지 모른다. 물론 그 패턴은 자연이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상세히 들춰보면, 이런 생각 이면에는 생명체가 자연법칙에 의해 구속되며 각각의 생명체는 능동적으로 자연법칙을 실현하는 개별자라는 철학적 사변이 놓여있다는걸 알게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유비를 가능하게 만든다. 체스게임에서 각 말의 위치가 체스규칙(또 이로부터 귀결되는 정리들)이라는 추상적인 패턴을 실현하는 실현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각 생명체는 단지 자연의 추상적 패턴을 실현해내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 말이다.(이를 단순히 물리주의라 볼 수 없는 이유는, 내용적으로 물리주의보다 더 강한 형식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플라톤 이데아론의 현대적 부활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 둬야 할 것이 있다. 체스게임에서 경기자의 전략이라는것은 경기 자체를 분석하기에 지나치게 성긴 틀일 수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심리학이란 분석단위는 지나치게 성긴 틀이어서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을 커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학문적으로 대하는 세련된 심리학, 신경과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도구가 아닐 수도 있다. 심리학이 다룰 수 없는 인간행동의 특정 측면들을 더 짜임새 있고 치밀한 도구(물리학)로 분석하는게 어떤 부분에선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수 없이 다양하고 기기묘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개별자들의 세부적 측면들로부터 시선을 떼어 자연법칙의 보편성과 함께 자연이 나타내는 대칭성, 불변성, 그리고 자연의 추상적 패턴과 같은것에 초점을 맞춘상태로 각 개별자들을 관통하는 보편적 양태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나는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위해선 이 같은 시각의 전환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어떤 행동이 자신의 심리상태와 무관할 수 있다는 앞서의 내 주장은 이런 측면에서 유효하다. 그리고 반 직관적인 것 처럼 보이는 이런 주장(심리상태와 무관한 행동이라니? 뭔가 모순되는것처럼 보이지 않는가?)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가졌던 시각을 새롭게 해서 자연의 근원적인 추상속성을 봐야만 한다는 점에서 항목1은 자연과 생명체간의 관계에 대한 매우 심오한 측면들을 아우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분야는 철학적 연구와 같이 가야만 한다. 아직 인간은 자신의 좁은 학문적틀에 갇혀 인간 자신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 

그러나 실질적으로 철학적 사고와 한층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항목3이다. 나는 예측가능성자유의지결정론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물론 자유의지론은 그 자체가 철학적으로 매우 방대한 주제이며, 굳이 예측가능성과 연결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서가 제시하는 내용이 이 주제에 관해 함축하는 바는 분명히 존재한다. 100%의 예측가능성은 결정론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확률 100%를 (본 서가 가정하는 대로) 더 낮은 확률로 할인하게 될 때 결정론자유의지에 어떠한 개념적 변화가 발생해야 만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부분은, 미래에 나타날지도 모를 어떤 사법 제도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용적인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의 기사에 언급된 대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가정하는 기술이 현실화 되었을 때, 범죄성향이 강한 개인에 대해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아직 그 사람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현재로 소급시켜 그를 법정 구속하는것이,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제거하는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 주제에 관한 연구가 어떠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많은 철학자들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붙들고 아직도 이런저런 실패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의식개념 만큼이나 이 역시 단 시간안에 깨끗하게 해결 될 문제인 것 같지가 않다. 그저 나로선 예측가능성자유의지론을 이해하는데 또 하나의 분석도구로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보다 현실적이고 정교화된 논의를 통해 단지 뜬 구름잡는 얘기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의미있는 논의가 이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

이제 마지막 항목을 보자. 이것은 인류의 손길을 거친 거의 모든 대상들이 과학으로 접근되거나 분석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심지어 인간의 경제활동 마저), 이 역사학이라는 학문만은 여전히 과학의 초보적 단계에도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는 (내가 가진)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연구대상의 시간적 단위가 수억에서 수만년을 헤아리는 진화생물학이 과학으로 올곧게 성립되어 있는것과 비교해 볼 때 겨우 만년 안쪽에 해당하는 인간 사회의 변화를 다루는 역사학이 아직 과학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위 역사과학이란 것이 인간이 세워놓은 과학에 있어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간의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맑스를 비롯, 역사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여러 사상가들이 무진 애를 썼음에도, 결과적인 면에서 그들 모두가 그 작업에 실패를 거듭한 것은 이 작업이 얼마나 난해하고 힘든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어찌됐든간에 나는 나만의 천연덕스럽고 자의적이기까지 한 관점을 통해, 예전부터 복잡계 과학이 이에 대한 좋은 시작점이 될 것으로 생각 해 왔다. 왜냐하면 복잡계 과학은 시스템을 다루며, 시간의 진행에 따라, 시스템의 상태 변화를 추적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고 있는 인간의 역사는 그 자체로 복잡계 과학의 좋은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기엔 갈길이 꽤 먼데, 인간에겐 아직 역사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역사속에 놓인 인간의 행동들을 어떤식으로 정량화 해야 할지에 대한 제대로된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저자의 연구를 이에 대한 좋은 시도로 평가하는 이유는,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행동을 거의 처음으로 정량화 해 복잡계 과학이라는 분석틀로 들여다 볼 수 있음을 저자가 실제로 입증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본서가 밝히고 있듯, 이러한 시도는 과거엔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각종 IT기기에 의해 인간의 행동들이 집단적으로 DB에 모아지고 수학적으로 분석되는 일은, 인류의 역사속에서 극히 최근에야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그렇게 보면 과학이라는 학문의 측면에서 현재는 엄청난 행운의 시기임이 분명하다. 예전보다 모든것이 정량화 될 조건들을 더 잘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란 인간의 행동들과 그 행동들간의 상호작용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인류의 역사란 엄청나게 복잡한 여러 사건들과 그것을 둘러싼 컨텍스트가 중층적으로 겹겹이 싸고 있는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우주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하다. 이런 거대한 대상을 과학적으로 분석 해 보려는 것은 분명히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이미 이에 대한 첫 발을 뗐다고 본다. 저자의 실제 의도야 어떻든간에 나는 <버스트>에서 (2)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에 대한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역사학이 과학이 될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이론도 갖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미래의 언젠가 복잡계 과학을 통해(또는 다른 과학들을 동원해) 역사에 대한 적당한 이론이 주어질 수만 있다면, 그 시점에서 기존의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여러 현장 증거들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학 정도로 취급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생물학에서 화석을 캐내고, 지층구조를 파악함으로써 과거의 역사를 훑는 현장 박물학이 진화론이라는 이론으로 수렴하면서 그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의 역사학은 앙꼬없는 찐빵, 즉 생물학의 영역에서 진화론이 빠진 현장 박물학이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틀리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글이 무색하게도 아직 역사를 과학적으로 이론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싶이 하다. 저자가 첫 돌을 놓고 있는 아주 약간의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 대목에서 실험-관찰보다 이론을 중시하는 다소 편향된 내 시각은 크게 신경쓰지 말자. 내가 이런 선호도를 갖는다고 해서 실험을 등한시하거나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포퍼리안이다. 포퍼식의 대담한 추측혹독한 테스트를 취하는 방식이, 효율성면에서는 최선이라고 본다. 물론 포퍼의 철학이 과학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식의 반증주의가 과학을 수행 할 때 최선의 가이드라인이 된다고 본다. 실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학의 발전이 지체될 수 있다. 나는 오류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담한 추측을 하는것이, 오류의 여지를 줄이면서 실험과 검증을 강조하는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똥이 무서워 된장을 못 담글 수야 없지 않겠는가? 오류를 두려워 한 나머지 실험과 검증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앞으로의 일보전진은 그만큼 더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버스트>가 추후의 역사과학을 만드는데 어느정도 기여 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또 그러기를 강하게 소망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항목을 읽어냈다. 역사과학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언제까지나 잃어버린 고리로 놔 둘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 *** *** *** *** *** *** *** *** *** *** *** *** *** *** *** *** *** 

끝으로, 독자들은 내가 상기에 제시한 메시지들은 깨끗이 잊고 본 서로부터 각자 자신만의 메시지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나는 독서를 하면서 자신만의 컨텐츠를 쌓아 나가는 것도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주체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문것 같다. 주체적인 독서는 커녕, 유행에 따라 그저 독서도 남들을 쫓아가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씁쓸하다. 이래서야 어찌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주체적으로 읽되, 저자의 의도를 살려 가능한한 정확하게 읽는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본인의 생각에 저자의 생각을 끼워 맞추게 된다. 이때는 아무리 주체적 읽기를 시도 해도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곡해하고 오해하는 바탕위에선, 균형잡힌 시각에서의 건전한 비판이 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저자의 생각이 무엇이고, 내 생각이 무엇인지를 비교적 명쾌하게 밝혔다고 본다. 이제는 독자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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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2024-02-20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여정
 
주문을 깨다 - 우리는 어떻게 해서 종교라는 주문에 사로잡혔는가?
대니얼 데닛 지음, 김한영 옮김, 최종덕 해설 / 동녘사이언스 / 2010년 5월
절판


일반적으로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견해, 경험, 이성을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하려는 시도를 환영한다.(중략) 반면에 종교인들은 누구라도 자신들의 견해를 조사하고 싶어하면 무례함, 결례, 신성모독을 예상하고 화를 버럭 낸다. 나는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항변하고자 한다.그들이 믿고 따르는 고대의 전통(memeplexer 주 : 본인들의 믿음을 신성시 하는 전통)이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 전통은 잘못되었고 그래서 계속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말이다. 그 주문은 지금 당장 깨져야 한다. 종교를 믿고 종교가 인류의 가장 큰 희망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만일 그들 자신이 자신들의 신념을 현미경 아래 놓고 보기를 꺼린다면, 종교에 회의적인 우리에게 우리의 의심을 표현하지 말고 자제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42쪽

만일 당신의 종교가 진리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라고 확신한다면, 당신은 전 세계에서 다른 모든 종교들이 그렇게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해야 한다. 만일 이 사람들-당신의 종교가 무엇이건, 세계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진리를 보여 주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면, 당신은 외부자로서 그 종교들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무엇이 그것들을 돌아가게 만드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당신 자신의 종교가 외부자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가치 있는 행동일 것이다. 외부자들이 당신과 마주칠 때 발견하는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면 당신은 거의 틀림없이 당신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457쪽

과학과 종교의 상이한 관점을 해결하려는 보편주의적 시도에서 그런 문제가 종종 발생해 과학정신을 가진 토론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관점상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온화한 태도로 상호 이해를 보장하면서 균열을 얼버무리는 것도 예의 바른 방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불일치에 대한 고찰을 무한정 감추고 미루게 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발뺌하는 과학자에게 한순간도 주의를 기울일 마음이 없다. "내 이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내 연구실의 정식 구성원들만이 이 효과를 감지할 줄 안다." "당신이 내 주장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모순은 인간 이해의 한계를 입증하는 증거에 불과하다.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어떤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선언은 모두 과학적 연구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책임 회피이고, 지적 파산의 고백일 것이다.-460, 4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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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제프 호킨스 & 샌드라 블레이크슬리 지음, 이한음 옮김, 류중희 감수 / 멘토르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정말 무섭게 빠져들어 읽었다. 이틀만에 다 해치웠으니, 거의 무아지경으로 읽었던듯 하다. 그러면서 이 책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인상을 얻었다. 일단 굉장히 쉽다. 그러나 그 파급력과 무게감은 엄청나다. 이렇게 가볍게 설명해놓은 책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긴 생전 처음이다.

먼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소개하겠다.

1, 2장에서는 기존의 인공지능(AI) 연구에 대한 개략적 설명과 함께 이 접근법이 가진 문제점과 그 한계를 지적하여 저자인 제프 호킨스가 펼칠 주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3, 4장에선 실제의 사람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사례를 내놓아 1, 2장에서 비판했던 AI 학자들과의 틈을 더 벌리는 동시에, 전통적인 신경과학자들 마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여기서 불변표상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제시된다. (이 용어는 이 책에서 끝부분까지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만큼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5장은 저자의 주장을 전면부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6장은 이것의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설명해낸다. 특히 6장은 이 책에서 가장 페이지수를 많이 차지할 뿐만 아니라, 저자가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7장은 저자의 이론에 의거한 응용이라고 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창조성을 더 잘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다소 상투적인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의식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 장의 후반부는 거의 철학자가 할법한 얘기들로 채워져있다.

8장은 저자 나름의 경험에 기반해 미래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이것은 전통적인 AI기술로 만들어낸 그런 지능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저자가 새로이 만들어낼 인공지능이란 뜻으로 해석하면 맞을것이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물론 8장을 읽게 되면 공상과학이 생각날지도 모르지만, 호킨스는 그보다는 상당히 현실적인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텐데, 저자는 현명하게도 인간 뇌의 전부를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단지 뇌의 극히 일부인 신피질(neo-cortex)에 한정해서 자신의 기억-예측모형을 일반화시키고 있다.(이 기억-예측 모형을 매우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인 6장이다.) 이 책에선 해마나 기타 다른 뇌부위를 언급하고 있긴 하나, 뇌의 다른 부위들은 사실상 저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기존의 학자들은 뇌의 다른 부위들을 제대로 언급조차 않는 저자의 설명에 놀랄 노자를 표할지 모르지만, 저자가 이런 접근방식을 취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p78~79 를 읽어보시길...

그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기억-예측모형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다 읽은 나로선, 이것을 저자보다 더 쉽게 예시할 수 있을것만 같다. 이 메커니즘은 매우 단순하니, 글이 조금 길더라도 한번 다음의 예시를 생각 해 보면서 논리를 따라가 보자.(이 설명이 더 어렵다면, 내 예시가 실패한게 되겠다. 물론 난 그렇지 않길 바란다.)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모여사는 공동체가 있다. 그런데 그 공동체는 과학자들간의 계급구조가 대략 5단계까지로 구성되어 있는 계급사회이다. (편의상 1단계를 가장 높은 계급이라 하자. 그리고 5단계라는건 내가 임의로 정한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단계의 수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이 5단계라는 수가 중요한것은 아니니 여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길 바란다.)

특이하게도 이 사회는 5단계의 가장 낮은 계급에 있는 과학자만이 실제의 자연을 관찰거나 실험할 수 있다. 나머지 계급의 과학자들은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 이론만 만들어내면 된다. 이론이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은 다음과 같다.  
5단계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험결과를 조금 더 가공해서 4단계 과학자에게 넘긴다. 4단계 과학자들은 이렇게 넘어온 자료들을 더 가공해서 3단계 과학자들에게 넘긴다. 이 과정이 1단계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 여기서 가공한다는것이, 추상화랑 동일한 뜻이다. 자료들를 특정하게 (손실)압축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1단계 과학자들은 가장 추상적인 (압축된) 형태의 이론을 접하게 된다.

이제 우연히 하늘에서 김연아의 사진 2장이 떨어졌다고 하자. 하나는 김연아가 웃는 사진이다. 다른 하나는 재밌는 포즈를 취하는 사진이다. 분명히 사진은 달라도, 이 사진에 담긴 인물이 김연아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마침 이 사진에 담긴 인물을 파악하라는 1단계 과학자들의 지시가 떨어졌다. 5단계 과학자들은 부랴부랴 이 두장의 사진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그들은 이 두장의 사진에 담긴것이 어떤 연속된 선, 점들의 집합임을 파악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모양인지는 모른다. 그들은 이 두 장의 사진에 대해 연속된 선, 점들의 패턴만을 뽑아내서 그것을 4단계 과학자들에게 넘긴다. 4단계 과학자들은 이제 그 점과 선들의 패턴으로부터 몇개의 덩어리로 구성된 점들과 선들을 분리시켜낸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으로 소임을 마치고 다시 그 결과를 3단계 과학자들에게 넘긴다. 이 과정이 1단계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 최종적으로 1단계 과학자들은 비록 그 두장의 사진이 전혀 다른것일지라도 그것이 "김연아"라는 공통된 인물상을 담아내고 있다는것을 알아낸다. 김연아가 웃는 모습이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든, 비록 5단계에서 전혀 다른것이었어도 1단계까지 오게 되면 김연아라는 동일한 표상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는 불변표상이다. 대상이 마구잡이로 회전되어 있거나 흩어져 있거나 넘어져 있어도 우리는 최종적으로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즉시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정보의 흐름이 양방향이라는 것이다. 5단계 과학자에서 1단계로 가는 정보의 흐름이 있고, 그 역의 방향도 존재한다. 앞서 1단계 과학자가 그 하위 과학자들에게 지시(명령)하는 경우가 그렇다. 게다가 1단계 과학자들은 지시할 때 어떤 단서까지 줄 수도 있다.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사진을 보고 5단계 과학자들이 우왕좌왕할 때 "그건 아마 김연아일 것이다" 란 단서를 주면, 5단계 과학자들이 우왕좌왕 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의미다.(그들은 이전에 김연아의 점-선집합을 관찰했던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점과 선의 집합을 관찰하게 됨)  
이런 역방향의 정보 흐름이 바로 예측이란 용어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아마 저 사진은 김연아를 표상할 것이다" 1단계 과학자로부터 5단계로 퍼져나가는 정보(명령)는 각 과학자 계층을 이렇게 기대하게 만든다.  
(이 예시의 경우, 시각적 자료 즉 사진속의 인물로 이야기를 한정했지만, 촉각, 미각, 후각, 청각등등의 모든 감각자료에 대해 이와 동일한 논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5단계 과학자들이 녹음기, 음향탐지 장비를 이용해 특정 주파수대의 소리들을 선별적으로 모으면, 이 자료가 최종적으로 1단계 과학자들에겐 "애국가"란 노래로 식별되는 식이다.)

저자는 이 계급화된 과학자 사회와 동일한 메커니즘이 인간 뇌의 신피질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물론 기존 연구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게 그리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David Marr의 선구적 업적에 영향받은 시각 인지(지각) 이론가들, 그리고 전통적인 컴퓨터 비전을 전공한 사람들은 아마 이 내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을, 어쩌보면 뻔한 내용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이 유별난 것은, 기존의 이론에 비해 앞서 예시한것 처럼 예측으로 표현되는 역방향 정보의 흐름을 크게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정방향-역방향의 대칭적인 정보 흐름에 따른 표상의 추상화/구체화 과정의 연속이 지능의 본질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측이란게 숙고(deliberation)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통상적인 용어법을 따를 경우 우리가 예측한다는건 보통 꽤 오랜시간을 숙고해서 어떤 미래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인데, 여기선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예측은 실시간으로 (신피질의 수준에서) 일어난다! 야옹~하는 소리만 듣고서도 단 0.5초안에 우리 마음이 떠올리는 고양이에 대한 표상이 바로 예측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의식적으로 조정하는것은 아닐지라도 매 순간 순간을 이렇게 예측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문 손잡이를 돌리면, 철컥하는 소리가 날거라는 것을 예측한다. 가려운 곳을 손으로 긁었을때 곧 시원한 느낌이 오게 되리라는것을 예측한다. tv보고 있다가 1초간 한눈을 팔고 나서 다시 tv쪽을 봤을때 tv가 그대로 놓여있을거라는 점을 예측한다. 저자는 이렇게 과거엔 전혀 주목받지 못한 예측이라는것을 지능의 본질로 놓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예측능력은 숙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저자가 말하는 예측은 일반화로 대치시켜 생각하는게 옳다고 본다. (예컨대, 야옹~하는 소리가 난 후 고양이를 예측하는 경우는, 고양이가 그런 울음소리를 내게 된다는 과거의 수 많은 경험에 의한 우리의 자동 반응이다. 즉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그 울음소리와 고양이간의 결합을 일반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예측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 관점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 논리를 인간의 감각-운동 영역 전체로 확장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예 신피질 전체가 이 논리로 짜여져 있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즉 앞서의 예시를 끌어온다면, 신피질 전체가 통째로 하나의 계급화된 과학자 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독자입장에선 그의 주장이 아직 가설수준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때 저자의 주장은 경계적 지식인의 정말 도전적이면서도 놀라운 가설이다. 어디 한군데 허접스러운 점이 없다.

여기까지가 책 전체의 요약 내용이다. 그러나 이 요약본이 이 책이 암시하고 있는 내용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이 책엔 책의 구성상 저자가 미처 다 설명하지 않았거나 그냥 넘어간,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비록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만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불변구조가 세계의 구조를 어느정도 반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로,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의 뇌(신피질)는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실제의 과학(ex 물리학)이 세계의 불변구조를 포착해내는 그런 집단적인 연구과정임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과거에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는 내용이었던것임을 기억하자. 인공생명 분야에선,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동형이라는 유명한 공리도 이미 제창되어 있다. 이렇게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진술들이 존재한다는것은 이것이 뭔가 철학적으로 연구될만 한 가치가 있다는것을 암시한다. 사실 이 부분은 지능 탐구와는 별개로 철학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둘째, 저자의 기억-예측모형은 만약 참으로 밝혀질 경우, 현재 IQ테스트의 기반 이론인 일반지능이론에서의 g-팩터를 제대로 지지해줄 토대가 될 만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내가 아는 바, 상당수 일반지능이론가들은 g-팩터로 지능의 거의 모든 측면을 설명해낼 수 있다는, 사실상의 지능의 g-팩터 환원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지능테스트는 예측능력 테스트이다. 추상화된 패턴을 인식하고, 범주화하는 능력을 측정하는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IQ테스트의 전부란 얘기다. 따라서 저자의 기억-예측모형은 (그것이 참일 경우) 일반지능이론의 g-팩터의 실제 메커니즘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분명히 일반지능 이론가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셋째, 저자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과연 무엇이 나타날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점이다. 사실 내가 이 책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이곳에서 밝혀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인데, 그래도 궁금해 할 만한 사람이 있을테니 그 내용을 말 해 두겠다.

놀라지 마시라.. 먼저 이 책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미래엔 인간 과학자들이 모두 실직하게 되리란 점이 분명해진다! 생각해보라. 예측하고, 패턴을 뽑아내고, 정보를 저장하는데 기가막힌 재주를 가진 기계가 있다면 굳이 인간 과학자들이 왜 필요할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심각하게 생각했던 점은, 저자의 기억-예측모형이 과학활동에 필요한 거의 완벽한 mind tool-set 이라는 것이다! 내가 위에서 과학자 사회의 예시를 들적에 그냥 마구잡이로 예를 뽑아낸게 아니다. 사실상 과학자의 정신 활동에 필요한 모든 메커니즘이 저자의 이론안에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이론이 참으로 밝혀지고, 이 이론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기계가 탄생할 경우, 인간 과학자들의 실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저자는 이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하나의 놀라운 귀결이 있다. 앞서의 과학자 사회 예시에서 나는 5단계까지의 계급을 설정 해두었다. 인간 뇌도 생물학적 한계로 그 정도 이상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6단계, 7단계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인간 뇌에 또 다른 장치를 부착하여 추상화를 더 진전시키는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할 이유가 하등에 없다! 저자의 이론은 이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며, 이것이 발생시킬 놀라운 가능성 즉 초-인간의 탄생까지 암시하고 있다!  (저자의 이론은 사실상 전지한 능력을 가진 거의 신의 지적능력에 버금가는 기계의 탄생까지 예상하고 있다.)

독자들중엔 이 마지막에 지적했던 내용들이 이 책으로부터 도출되어 나온다는걸 믿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듯 한데, 나의 이런 결론은 이미 책의 말미에서 암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내용이니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다만 이런 내용들이 미래 예측의 형태로 너무 두루뭉술하게 표현되어 있어, 주의력이 부족한 독자의 경우 이런 행간을 읽어내지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가 자신의 이론을 이용해 대기과학을 이러저러하게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설명한 마지막 부분을 찾아 읽어보자. 그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 나는 그 내용이 내가 마지막 항목으로 지적한 내용의 일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엔 여러가지 암시, 예측, 번뜩이는 통찰들이 넘친다. 그것들을 전부 목록화시켜 이 글로 쓸 수 없다는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저자의 이론은 최근의 situated cognition-extended cognition-embodied cognition과 연결시킬 여지가 매우 크다. 이 부분은 아마 별도로 얘기가 되어야 할 내용일 정도로 방대한 논의의 여지가 있는만큼, 여기선 더 이상 그 내용을 언급하지 않겠다.)

그저 한명의 소박한 독자로서, 저자가 지능을 탐구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것 같다. 호킨스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지만 이렇게 상황판단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대개 성공하게 되어 있다.  이 특성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든, 학문을 하는 사람이든 해당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쉽게 말해 스스로의 주제파악이 되는 사람은 뭘하든 잘 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그가 학자이면서, 사업가이며, 동시에 컴퓨터 엔지니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나는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이 그의 독창적인 이론을 만드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기존의 과학자들은 너무 세부적인 사항들에 갇혀 전체를 구조적으로 탐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반대로, 소위 인공지능을 다룬다고 하는 컴퓨터 엔지니어들은 그저 컴퓨터를 지능적으로 만드는데만 관심이 있지, 지능을 컴퓨터로 구현한다는것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그의 문제의식은 책 첫머리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호킨스는 이 양자의 집단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서로간의 이점을 접목시키는 접합점을 아주 잘 찾아낸 것 같이 보인다. 특히 그가 이미 이름난 사업가였기 때문에, 펀딩을 받고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여러 과정들은 (적어도 일반인들보다는) 꽤나 순조로운것이 아니었을까 예상 해 본다. 무척 부러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IT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은 계층구조라는 개념에 아주 강하게 얽혀있다. 이것은 컴퓨터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거의 공기만큼이나 친숙한 개념이다. 심지어 컴퓨터 과학은 SW계층구조에 관한 과학이라는 말이 있을정도이니, 할말 다 한것 아닌가? 때문에 저자가 억-예측 모형의 계층구조를 설명할 때 나는 신기하게도 컴퓨터 네트워킹의 표준 참조 모델인 OSI reference model 을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내 눈엔 양자가 매우 비슷해 보이는게 아닌가? (아마 독자가 IT/SW개발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둘이 정보를 처리하는 메커니즘조차 꽤 비슷하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고 적용되는 분야가 전혀 다른것이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낼 때 아마도 SW의 계층구조적 사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점, 그리고 그가 뼛속깊이 컴퓨터 엔지니어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것! 결국엔 깊게들어가면, 하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이 책을 덮으며 그런 희미하지만, 이상한 전율이 내 심장을 강타해왔다.

이외에 내가 저자의 주장에 분명하게 동의하지는 못할 부분이 (현재로선) 딱 한군데 있다. 그러나 글의 길이도 그렇고, 또 여기에 그 글을 싣는것도 부적절한것 같아 이곳에 그 글을 작성할 예정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고 평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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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물·동맹 -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테크노사이언스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 이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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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간.사물.동맹>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 두 가지만 일러두겠다.

첫째, <인간.사물.동맹>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인류학 및 역사를 서술해 놓은 책이 아니다.(<총.균.쇠>와 같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는것이다.) 제목과 책표지에 현혹되어(?) 이 책을 그런 성격의 것으로 오인하면 안된다. 둘째, <인간.사물.동맹>은 브루노 라투르의 저작이 아니다. 이 책엔 그의 글 두편이 실려 있을 뿐이다. 충분히 사려깊지 못한 독자들이 책 겉면만 보고 낚일듯 하여, 이 두가지 주의점을 미리 밝혀둔다.

그럼 대체 <인간.사물.동맹>은 무슨책인가? ANT(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소개서이다. 책 구성 방식은? 여러 다양한 ANT연구자들의 논문들을 책 한권으로 합쳐 놓았다. 단지 ANT를 개발하는데는 브루노 라투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글 두편이 실려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1부에서 ANT이론 자체를 설명하고, 2부에선 현실세계에 ANT를 적용 해석하는 case-study가 이어진다. 이 책의 구성은 그렇다.

 

예전부터 ANT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그 내용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살펴본다. 헌데, 내겐 이 책의 내용이 무척 당혹스럽다. 물론 이 당혹스러움이 <인간.사물.동맹>이란 책으로부터 기인하는건지, 아니면 ANT자체의 특성에 기인한것인지 나로선 전혀 알 방법이 없다. 전자의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정말 대책이 없다. 이 책에 실린 상당수의 글들이 이론 설명을 위한 개념설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을 행위자로 여긴다는것이 당혹스럽다는게 아니라, ANT의 허접함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사물을 행위자로 여기는건 내게 무척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ANT에 따르면, 일명 구획나누기(근대/비근대, 자연/사회, 과학/인문학, 사실/가치 등등의 분별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행위라고 한다 (오 마이 갓~!). 모든건 사물-행위자의 네트웍상에만 존재하며, 그 네트웍조차 끊임없이 수정되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일체의 고정된 존재자를 상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그래서 ANT는 이 세상의 모든것을 잡종으로 본다. 인간도, 사물도, 그 어떠한것도 모두 서로에게 들러붙어 잡종적 네트웍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ANT에 따르면, 구획나누기는 일명 근대라고 불리워진(실은 근대라는건 없었지만) 시대로부터 전해내려온 질 나쁜 습관일 뿐이다.

벌써 이쯤되면, 멀리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것은 흐를뿐이다.")이나 좀 더 가까이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이 연상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다. 아닌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어떤글엔 ANT설명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거론하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떠서 복잡계 과학, 공진화 이론, 컴퓨터 과학에서의 객체지향 방법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정말 "헉~" 이다.) 

 

여러편의 글을 읽어본 결과 기본적인 ANT의 의도는 잘 알것 같다. 그리고 나는 ANT가 상정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엔 공감하며, 그것이 그렇게 비상식적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최신의 HCI분야의 연구들을 살펴볼것 같으면 ANT와 통하는 부분이 있기까지 하다. 즉 사용자가 컴퓨터(사물)와 어떤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는 단지 사용자의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게 아니라 훨씬 거대한 사회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글에 달릴 덧글의 내용을 기술적으로(technically) 200자 이내로만 한정한다면, 그것은 그 글로부터 파생될 사용자들의 생각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트위터는 사회적으로 텍스트를 실시간 소비하도록 촉진시켰다. 마우스는 윈도우라는 개념과 함께 붙어다니며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잡종적 네트웍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외에도 ANT에 맞는 여러 다양한 사례들을 많이 퍼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결시키자면, HCI뿐 아니라 ANT를 다른 다양한 연구 분야에 관련지을 수 있다.)

요점은, ANT가 지향하고 있는 바는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사물과 인간의 동맹이 사회적 네트웍을 변화시키고, 이것 자체가 또 다른 잡종적 행위자를 만들어내서 그 행위자가 다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웍을 만들어내는 이 끊임없는 생성-소멸의 과정을 직시해야 한다는 ANT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가는 부분이고, 이미 많은 분야에서 진지한 학문적 탐구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ANT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여럿 존재하고, 특히 어떤 부분은 ANT를 진지한 이론으로 취급하기 어렵겠다는 내 의심을 굳건하게 한다. 혹시 ANT는 인식론적 구획나누기를 존재론적 구획나누기와 혼동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ANT에선 설명과 기술(description)이 혼재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ANT자체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저 자신의 불명료한 언어구사에 대한 변명은 아닐까? 특히, ANT를 (이 책에서 말하는 바대로 표현하면) 성찰적으로 따져볼 때, ANT에서의 여러 개념구획들(문제제기, 관심끌기, 등록하기, 치환, 기입, 중재자, 매개자 등등의 개념)은 그것 자체가 ANT자신이 타파하려고 했던 근대적 구획긋기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내 문제제기가 정말로 ANT가 타파하려고 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근거하는 것일까? 오히려 내 문제제기를 ANT가 다시 문제삼는것이야 말로 ANT자신이 행위자가 된 번역과정의 산물이 아닐까? (여러가지 측면에서 성찰적 문제제기는 괴델이 연구했던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끌어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것 같다.)

이 책만 읽고서 ANT전체를 평가하는것은 분명히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만을 볼 때, ANT를 하나의 진지한 이론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사실 ANT가 잘 짜인 이론으로는 결격사유를 갖고 있다는건 홍성욱 교수가 책 첫머리부터 솔직히 밝히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모든 저자들이 ANT를 설명하는데, 그야말로 잡종적인 글쓰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라투르의 <현실정치에서 물정치로>라는 글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라투르에게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쓰레기라고 부른다.(앞에 ""를 붙여도 되겠다) 어떤 전시회 도록의 서문으로 실린 글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해당 글은 무의미한 레토릭으로 가득차 있다. 일명 미학적 글, 예술적 글로는 훌륭한 것일지 몰라도, 이런 글은 그 외엔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불필요하게 지적 허영을 과시하고, 특히 논리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두리뭉실한 뜬구름잡는식의 레토릭은 제발 혼자 즐기는 용도로만 써달라는것이 내 부탁이다. 벌써 이 책에서 들뢰즈-가타리와 기호학을 끌어들일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나마 맨 마지막에 실린 김환석 교수의 글이 비교적 건조한 문체로 책을 잘 마무리 해 주고 있다. 이 글이 아니었다면, 아마 열받아서 이 책을 다시 중고장터에 팔아버렸을지 모른다.)

 

내 자신이 여러분야에 관심을 가진만큼, 이 책을 내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이론들과 맞 대어 보면서 읽었다. ANT자신이 여러 다른 이론들을 다수 거론하고 있으니, 당연히 통하는 부분이 있을걸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는것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ANT의 불명료함 때문에 도저히 기존의 이론들을 어떤식으로 갖다대야 하는지 그 지점을 찾질 못했다. 현재로선 그나마 꽤 분명해 보이는 것 하나를 찾아 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것은 ANT가 잡종적 인간-사물의 복잡계 네트웍에 대한 사회학/정치학이라는 것이다.

복잡계 과학과 ANT가 다른 지점은, 전자가 정량적으로 측정되는것의 통계적 분포와 그와 관련된 추상적 패턴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후자는 측정될 수 없는 정성적인 부분들까지 식별해내고, 특히 그런 부분들이 이루는 네트웍에서의 권력분배과정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ANT는 복잡한 것들이 이루는 권력의 분배과정에 관심을 갖는 사회학내지는 정치학이다.(이것은 체계의 동적 전개과정-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복잡계 과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그 연구방식에 있어 상부구조니 하부구조니 인간이니 사회니 하는 고정된 일체의 구조를 거부하고, 그저 모든것은 네트웍이란 선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네트웍엔 인간뿐 아니라 사물까지 다 포함된다.

흥미로운것은, 복잡계 과학과 달리 ANT는 추상적 패턴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ANT는 그것을 거부한다. ANT가 말하는것은, 패턴 그 자체도 변하기 때문에 그런것에 초점을 맞추고 현상을 바라보는것은 부질없다는 식이다. 고정된 패턴이 없으니, 고정적으로 설명할꺼리도 없다. 그저 변화하는 네트웍 그 자체의 기술(description)이 바로 설명(explanation)일 뿐이다. (정말 허망한 결론이다.)

아마 내가 <인간.사물.동맹>을 통해 ANT를 설명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면, 내용을 이렇게 요약할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라투르의 원저작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고민말이다. ANT가 하나의 이론조차 아닐 수 있다는(담론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강한 심증이 있는 상황에서, 라투르의 저작을 찾아 읽는것이 과연 내게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것인가? 그의 글을 읽는것이 괜한 시간낭비는 아닐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ANT에 대해 기대했던 내용이 실제의 내용과 달라 실망스러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ANT에 대한 최초의 대중소개서로서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생각은 없다. ANT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같은 별종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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