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트 -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김명남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도대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지?"

복잡계 과학에 대한 무한 관심(?)과 저자 바라바시로 향한 독자로서의 애정(?)때문에 앞뒤 안보고 이 책을 덜컥 사버린 나로서는, 책을 받은 후에야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보통의 책들은 제목과 앞뒷면의 여러 권위자들의 평가 글들을 쭉 읽어보면 대략 그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겠구나 하는 감이 오게 마련인데, <버스트>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 자체가 예욋값Outlier인가? 란 의문을 갖기도 했다.)

책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또 이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Burst" 란 우리말로는 폭발내지는 한꺼번에 뿜어 낸다는 것인데, 저자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인간의 행동에는 한참을 뜸하다가 한꺼번에 분출하는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메일을 보내는 행동에도, 생활속에서 일상적으로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경우에도, 심지어 몸이 아파 병원에 들르는 경우조차 한참을 뜸하다 한번에 분출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횟수나 거리와 같은 기준으로 정량화하면, 그러한 경향성이 분명히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내용이다. 가령 우리가 1분1초도 쉼없이 뻔질나게 동서남북을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는 점은 모든 사람이 자명하게 알고 있지만(즉 공간속에서 인간의 움직임은 완벽하게 무작위하지 않다), 대부분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너무 당연해서 더 생각할것도 없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자명하게 생각되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도 의문을 갖고 이 부분에 복잡계 과학이란 메스를 들이댄다. 저자에 따르면, 이렇게 한꺼번에 폭발하는 특성은 그것이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는 명백한 징후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결론을 인간의 행동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다양한 사례들과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과감히 확장한다. 

" 멱함수 법칙은 자연계에 상당히 보편적이다. 시간적 폭발성이 나타나는 곳엔 언제나 멱함수 법칙이 자리잡고 있다. "   


이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이 문구만을 놓고 보니 <링크>에서와 별반 다를게 없는 주장인 것 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링크>와 달리 본서는 시간성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전작인 <링크>가 표준적인 과학 교양서로의 모범적인 서술형식을 가졌던 반면에, 본작은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엇갈릴 가능성이 큰, 모험적 구성을 취한다. 저자 입장에선 과학지식과 역사적 지식을 창의적으로 엮어 독자들로 하여금 그 내용이 조화롭고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의도했을지 몰라도, 독자의 실제 느낌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자의 열혈 팬인 나로서도 책의 산만한 구성때문에 저자의 의도가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버스트>는 크게 다음과 같은 세 파트로 구분된다.

(1) 하산 엘라히 라는 이름을 가진 아랍계 미국인의 행적을 훑는 부분.
(2) 죄르지 세케이 라는 역사적 인물을 중심에 놓고 1400~1500년대의 헝가리 일대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
(3) (복잡계) 과학 자체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다소 산만한 느낌을 가질수 있다고 지적할 수 있는 근거로는, 내용면에서 확실히 구분되는 (1)~(3)이 씨실과 날실의 형태로 각 챕터별로 교차 편집되어 있어 이야기의 흐름이 챕터 단위로 끊긴다는 점과 함께, 최종적으로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3)의 결론에 (1)과 (2)가 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 책을 다 읽은 나로서도 잘 확신이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내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실제가 어떠한가는 독자들이 직접 읽어보고 판단 해 봐야 할 일이겠다.

상대적 분량면에서 (1)은 나머지 둘에 비해 작다. 특히 파트(2)는 여느 역사서 빰칠 정도로 중세 헝가리의 역사를 매우 상세히 다룬다. 때문에 <버스트>를 읽다보면, 어느순간 이것이 (사이언스 팩션이란점을 감안하더라도) 과학책인지 역사책인지 혼동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따라서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의해야 한다.

- 각 장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잘 쫓아 저자의 의도를 재구성하며 읽어야 한다.
- 과학책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2)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때문에 본 서로부터 다른 과학 교양서처럼 양적으로 풍부한 과학 지식을 기대하면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 파트(2)를 읽을때의 난해함을 어느정도 감수해야 한다. 이 난해함은 주로 두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생소한 헝가리어가 첫번째이고, 그 같은 헝가리어들의 양이 무척이나 많다는것이 두번째다.

마지막 주의점에 대해서라면, 예를들어 레나르드 버를러바시라는 인물이, 저자 자신의 선조이면서, 1507년 당시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부총독인 동시에, 자신의 편지에서 죄르지 세케이를 사소한 좀도둑으로 묘사하고 있는 인물로서, 독자는 이를 확실히 기억해 둔 채로 추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를러바시란 이름이 나올 때 마다 "대체 이 사람이 누구였더라?"를 연발하며 계속 앞 부분을 다시 들춰 봐야 만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불행히도 <버스트>엔 이런 생소한 헝가리식 인물명/지명/지물명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암기과목에 약한 나로서는 이 부분을 제대로 읽어내는데 꽤 애 먹었다는 점을 솔직히 밝힌다.)

물론 이런 점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이 책은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게 내 생각이다. 나는 (특히 이런 종류에 속하는) 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 못지 않게 독자들의 영감, 통찰, 그동안 파묻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주 귀중한 어떤 불명료한 느낌과 같은것들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매우 가치있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시나 소설은 거의 전적으로 이러한 역할에 할애되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버스트>로부터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서로 다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물론 읽는 동안에 생각해 두었다가, 잊는 바람에 미처 길어올리지 못한 항목도 있을 수 있다.) 이 정도만으로도 내게는 큰 소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1. 인간 행동이 반드시 심리학, 생물학만의 연구 대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
2. 인간 행동 예측의 실현과 그것과 결부된 [인간에 주는 편익 vs 프라이버시] 문제.
3. 행동 예측과 자유의지의 문제.
4. 엄밀한 역사과학의 시작.

물론 서평으로 올리는 이 글에서 이들 각각을 상세히 살펴 보는것은 부적절하므로, 내가 왜 이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배경과 동기들만을 설명하고 이 글을 마무리 하는게 좋을것 같다.(이것만도 꽤 많은 분량이다.) 나는 각 항목들에 대해 이 정도의 언급은 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특별히 항목2는 저자가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므로 내가 따로 덧붙일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최근 구글의 행보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Weekly BIZ] 미래 예측… 神의 영역에 도전
구글-CIA, '마이너리티 리포트' 현실로 만든다  

마침 이 글이 작성되고 있는 시점에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기사도 마련되어 있다.
국외 서버 속 ‘자국민 정보’를 어찌할꼬

독자들은 위의 기사들에 담긴 내용과 저자의 설명 내용을 맞춰 보면서 놀라움과 함께 전율, 혹은 어떤 두려움을 느낄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현실화되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와 함께 본서가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에 대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검토해 보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 외의 항목들은 내가 본 서에서 적극적으로 이끌어낸 것들로, 여기에 어느정도는 내 주관이 반영되어 있다는것을 미리 경고 해 둔다. 그럼 이제 이들을 하나씩 훑어보도록 하겠다.(<버스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의 서평은 여기까지다.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은 이러한 주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읽도록 하자. 이하 가독성을 위해 각 항목별 설명을 박스로 묶었다. 그지 같은 편집시스템 때문에 박스 치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연결된 별표* 표시로 항목1~4의 시작과 끝을, 세개의 덧셈+표시로 각 항목간 구분을 해 놓았다. 이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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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1은 인간의 행동이 자연의 패턴을 반영하는 측면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본서는 이 점에 결부된 여러 측면들을 논하고 있으나, 저자 자신이 이 지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단지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저자의 생각을 한층 더 앞으로 밀고 나가고자 한다. 즉 인간의 어떤 행동은 인간의 심리상태와 무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이 부분은 저자가 가진 생각보다 훨씬 더 방대한 연구분야와 함께 급진적인 어떤 철학적 입장까지 아우를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아직 전인미답의 상태라 하겠으나, 이 분야는 (내 생각에) 체화된 인지를 다루는 특정 분야에서 이미 연구되고 있는 내용들과 부분적으로 겹쳐지는 것 같다.(체화된 인지에 관련된 이론의 학문적 위치나 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의 직관적인 생각과는 달리 어쩌면 인간(그리고 동물들)은 자신의 심리상태와 무관하게 어떤 행동들을 반복하는 패턴 구현자일지 모른다. 물론 그 패턴은 자연이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상세히 들춰보면, 이런 생각 이면에는 생명체가 자연법칙에 의해 구속되며 각각의 생명체는 능동적으로 자연법칙을 실현하는 개별자라는 철학적 사변이 놓여있다는걸 알게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유비를 가능하게 만든다. 체스게임에서 각 말의 위치가 체스규칙(또 이로부터 귀결되는 정리들)이라는 추상적인 패턴을 실현하는 실현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각 생명체는 단지 자연의 추상적 패턴을 실현해내는 수동적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 말이다.(이를 단순히 물리주의라 볼 수 없는 이유는, 내용적으로 물리주의보다 더 강한 형식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플라톤 이데아론의 현대적 부활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 둬야 할 것이 있다. 체스게임에서 경기자의 전략이라는것은 경기 자체를 분석하기에 지나치게 성긴 틀일 수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심리학이란 분석단위는 지나치게 성긴 틀이어서 인간 행동의 모든 측면들을 커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학문적으로 대하는 세련된 심리학, 신경과학은 인간 행동에 대한 충분한 과학적 도구가 아닐 수도 있다. 심리학이 다룰 수 없는 인간행동의 특정 측면들을 더 짜임새 있고 치밀한 도구(물리학)로 분석하는게 어떤 부분에선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라도 수 없이 다양하고 기기묘묘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개별자들의 세부적 측면들로부터 시선을 떼어 자연법칙의 보편성과 함께 자연이 나타내는 대칭성, 불변성, 그리고 자연의 추상적 패턴과 같은것에 초점을 맞춘상태로 각 개별자들을 관통하는 보편적 양태가 어떠한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나는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위해선 이 같은 시각의 전환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어떤 행동이 자신의 심리상태와 무관할 수 있다는 앞서의 내 주장은 이런 측면에서 유효하다. 그리고 반 직관적인 것 처럼 보이는 이런 주장(심리상태와 무관한 행동이라니? 뭔가 모순되는것처럼 보이지 않는가?)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가졌던 시각을 새롭게 해서 자연의 근원적인 추상속성을 봐야만 한다는 점에서 항목1은 자연과 생명체간의 관계에 대한 매우 심오한 측면들을 아우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분야는 철학적 연구와 같이 가야만 한다. 아직 인간은 자신의 좁은 학문적틀에 갇혀 인간 자신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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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질적으로 철학적 사고와 한층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항목3이다. 나는 예측가능성자유의지결정론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하나의 항목으로 포함시켰다. 물론 자유의지론은 그 자체가 철학적으로 매우 방대한 주제이며, 굳이 예측가능성과 연결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서가 제시하는 내용이 이 주제에 관해 함축하는 바는 분명히 존재한다. 100%의 예측가능성은 결정론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확률 100%를 (본 서가 가정하는 대로) 더 낮은 확률로 할인하게 될 때 결정론자유의지에 어떠한 개념적 변화가 발생해야 만 하는지를 철학적으로 고찰해보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 부분은, 미래에 나타날지도 모를 어떤 사법 제도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용적인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의 기사에 언급된 대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가정하는 기술이 현실화 되었을 때, 범죄성향이 강한 개인에 대해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아직 그 사람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현재로 소급시켜 그를 법정 구속하는것이,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제거하는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 주제에 관한 연구가 어떠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많은 철학자들이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붙들고 아직도 이런저런 실패를 거듭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의 의식개념 만큼이나 이 역시 단 시간안에 깨끗하게 해결 될 문제인 것 같지가 않다. 그저 나로선 예측가능성자유의지론을 이해하는데 또 하나의 분석도구로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보다 현실적이고 정교화된 논의를 통해 단지 뜬 구름잡는 얘기로 그칠 것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의미있는 논의가 이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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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항목을 보자. 이것은 인류의 손길을 거친 거의 모든 대상들이 과학으로 접근되거나 분석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심지어 인간의 경제활동 마저), 이 역사학이라는 학문만은 여전히 과학의 초보적 단계에도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는 (내가 가진)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연구대상의 시간적 단위가 수억에서 수만년을 헤아리는 진화생물학이 과학으로 올곧게 성립되어 있는것과 비교해 볼 때 겨우 만년 안쪽에 해당하는 인간 사회의 변화를 다루는 역사학이 아직 과학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위 역사과학이란 것이 인간이 세워놓은 과학에 있어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간의 시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맑스를 비롯, 역사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여러 사상가들이 무진 애를 썼음에도, 결과적인 면에서 그들 모두가 그 작업에 실패를 거듭한 것은 이 작업이 얼마나 난해하고 힘든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어찌됐든간에 나는 나만의 천연덕스럽고 자의적이기까지 한 관점을 통해, 예전부터 복잡계 과학이 이에 대한 좋은 시작점이 될 것으로 생각 해 왔다. 왜냐하면 복잡계 과학은 시스템을 다루며, 시간의 진행에 따라, 시스템의 상태 변화를 추적하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들을 모두 갖고 있는 인간의 역사는 그 자체로 복잡계 과학의 좋은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기엔 갈길이 꽤 먼데, 인간에겐 아직 역사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역사속에 놓인 인간의 행동들을 어떤식으로 정량화 해야 할지에 대한 제대로된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저자의 연구를 이에 대한 좋은 시도로 평가하는 이유는,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인간의 행동을 거의 처음으로 정량화 해 복잡계 과학이라는 분석틀로 들여다 볼 수 있음을 저자가 실제로 입증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본서가 밝히고 있듯, 이러한 시도는 과거엔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각종 IT기기에 의해 인간의 행동들이 집단적으로 DB에 모아지고 수학적으로 분석되는 일은, 인류의 역사속에서 극히 최근에야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다.(그렇게 보면 과학이라는 학문의 측면에서 현재는 엄청난 행운의 시기임이 분명하다. 예전보다 모든것이 정량화 될 조건들을 더 잘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란 인간의 행동들과 그 행동들간의 상호작용들의 집합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인류의 역사란 엄청나게 복잡한 여러 사건들과 그것을 둘러싼 컨텍스트가 중층적으로 겹겹이 싸고 있는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우주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듯 하다. 이런 거대한 대상을 과학적으로 분석 해 보려는 것은 분명히 그 자체로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저자가 이미 이에 대한 첫 발을 뗐다고 본다. 저자의 실제 의도야 어떻든간에 나는 <버스트>에서 (2)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에 대한 좋은 신호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역사학이 과학이 될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이론도 갖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미래의 언젠가 복잡계 과학을 통해(또는 다른 과학들을 동원해) 역사에 대한 적당한 이론이 주어질 수만 있다면, 그 시점에서 기존의 역사학은 과거에 대한 여러 현장 증거들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학 정도로 취급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생물학에서 화석을 캐내고, 지층구조를 파악함으로써 과거의 역사를 훑는 현장 박물학이 진화론이라는 이론으로 수렴하면서 그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현재의 역사학은 앙꼬없는 찐빵, 즉 생물학의 영역에서 진화론이 빠진 현장 박물학이라고 생각해도 그렇게 틀리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글이 무색하게도 아직 역사를 과학적으로 이론화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싶이 하다. 저자가 첫 돌을 놓고 있는 아주 약간의 부분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 대목에서 실험-관찰보다 이론을 중시하는 다소 편향된 내 시각은 크게 신경쓰지 말자. 내가 이런 선호도를 갖는다고 해서 실험을 등한시하거나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포퍼리안이다. 포퍼식의 대담한 추측혹독한 테스트를 취하는 방식이, 효율성면에서는 최선이라고 본다. 물론 포퍼의 철학이 과학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퍼식의 반증주의가 과학을 수행 할 때 최선의 가이드라인이 된다고 본다. 실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학의 발전이 지체될 수 있다. 나는 오류가능성을 열어놓고 대담한 추측을 하는것이, 오류의 여지를 줄이면서 실험과 검증을 강조하는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똥이 무서워 된장을 못 담글 수야 없지 않겠는가? 오류를 두려워 한 나머지 실험과 검증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앞으로의 일보전진은 그만큼 더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버스트>가 추후의 역사과학을 만드는데 어느정도 기여 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또 그러기를 강하게 소망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항목을 읽어냈다. 역사과학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언제까지나 잃어버린 고리로 놔 둘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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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독자들은 내가 상기에 제시한 메시지들은 깨끗이 잊고 본 서로부터 각자 자신만의 메시지들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나는 독서를 하면서 자신만의 컨텐츠를 쌓아 나가는 것도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주체적인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문것 같다. 주체적인 독서는 커녕, 유행에 따라 그저 독서도 남들을 쫓아가는 경향이 강한 것 같아 씁쓸하다. 이래서야 어찌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주체적으로 읽되, 저자의 의도를 살려 가능한한 정확하게 읽는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본인의 생각에 저자의 생각을 끼워 맞추게 된다. 이때는 아무리 주체적 읽기를 시도 해도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곡해하고 오해하는 바탕위에선, 균형잡힌 시각에서의 건전한 비판이 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저자의 생각이 무엇이고, 내 생각이 무엇인지를 비교적 명쾌하게 밝혔다고 본다. 이제는 독자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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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2024-02-20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