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제프 호킨스 & 샌드라 블레이크슬리 지음, 이한음 옮김, 류중희 감수 / 멘토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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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생각하는 뇌, 생각하는 기계> 나는 이 책을 받자마자 정말 무섭게 빠져들어 읽었다. 이틀만에 다 해치웠으니, 거의 무아지경으로 읽었던듯 하다. 그러면서 이 책에 대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인상을 얻었다. 일단 굉장히 쉽다. 그러나 그 파급력과 무게감은 엄청나다. 이렇게 가볍게 설명해놓은 책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긴 생전 처음이다.

먼저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소개하겠다.

1, 2장에서는 기존의 인공지능(AI) 연구에 대한 개략적 설명과 함께 이 접근법이 가진 문제점과 그 한계를 지적하여 저자인 제프 호킨스가 펼칠 주장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3, 4장에선 실제의 사람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연구사례를 내놓아 1, 2장에서 비판했던 AI 학자들과의 틈을 더 벌리는 동시에, 전통적인 신경과학자들 마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여기서 불변표상이라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 제시된다. (이 용어는 이 책에서 끝부분까지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만큼 핵심이 되는 개념이다.)

5장은 저자의 주장을 전면부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6장은 이것의 세부사항을 하나하나 설명해낸다. 특히 6장은 이 책에서 가장 페이지수를 많이 차지할 뿐만 아니라, 저자가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7장은 저자의 이론에 의거한 응용이라고 할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창조성을 더 잘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다소 상투적인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의식을 설명하는 부분에선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 장의 후반부는 거의 철학자가 할법한 얘기들로 채워져있다.

8장은 저자 나름의 경험에 기반해 미래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능(이것은 전통적인 AI기술로 만들어낸 그런 지능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저자가 새로이 만들어낼 인공지능이란 뜻으로 해석하면 맞을것이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물론 8장을 읽게 되면 공상과학이 생각날지도 모르지만, 호킨스는 그보다는 상당히 현실적인 인물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텐데, 저자는 현명하게도 인간 뇌의 전부를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단지 뇌의 극히 일부인 신피질(neo-cortex)에 한정해서 자신의 기억-예측모형을 일반화시키고 있다.(이 기억-예측 모형을 매우 상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인 6장이다.) 이 책에선 해마나 기타 다른 뇌부위를 언급하고 있긴 하나, 뇌의 다른 부위들은 사실상 저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기존의 학자들은 뇌의 다른 부위들을 제대로 언급조차 않는 저자의 설명에 놀랄 노자를 표할지 모르지만, 저자가 이런 접근방식을 취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p78~79 를 읽어보시길...

그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기억-예측모형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다 읽은 나로선, 이것을 저자보다 더 쉽게 예시할 수 있을것만 같다. 이 메커니즘은 매우 단순하니, 글이 조금 길더라도 한번 다음의 예시를 생각 해 보면서 논리를 따라가 보자.(이 설명이 더 어렵다면, 내 예시가 실패한게 되겠다. 물론 난 그렇지 않길 바란다.)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모여사는 공동체가 있다. 그런데 그 공동체는 과학자들간의 계급구조가 대략 5단계까지로 구성되어 있는 계급사회이다. (편의상 1단계를 가장 높은 계급이라 하자. 그리고 5단계라는건 내가 임의로 정한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단계의 수는 다소 불명확하지만, 이 5단계라는 수가 중요한것은 아니니 여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길 바란다.)

특이하게도 이 사회는 5단계의 가장 낮은 계급에 있는 과학자만이 실제의 자연을 관찰거나 실험할 수 있다. 나머지 계급의 과학자들은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 이론만 만들어내면 된다. 이론이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은 다음과 같다.  
5단계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실험결과를 조금 더 가공해서 4단계 과학자에게 넘긴다. 4단계 과학자들은 이렇게 넘어온 자료들을 더 가공해서 3단계 과학자들에게 넘긴다. 이 과정이 1단계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 여기서 가공한다는것이, 추상화랑 동일한 뜻이다. 자료들를 특정하게 (손실)압축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1단계 과학자들은 가장 추상적인 (압축된) 형태의 이론을 접하게 된다.

이제 우연히 하늘에서 김연아의 사진 2장이 떨어졌다고 하자. 하나는 김연아가 웃는 사진이다. 다른 하나는 재밌는 포즈를 취하는 사진이다. 분명히 사진은 달라도, 이 사진에 담긴 인물이 김연아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마침 이 사진에 담긴 인물을 파악하라는 1단계 과학자들의 지시가 떨어졌다. 5단계 과학자들은 부랴부랴 이 두장의 사진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그들은 이 두장의 사진에 담긴것이 어떤 연속된 선, 점들의 집합임을 파악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모양인지는 모른다. 그들은 이 두 장의 사진에 대해 연속된 선, 점들의 패턴만을 뽑아내서 그것을 4단계 과학자들에게 넘긴다. 4단계 과학자들은 이제 그 점과 선들의 패턴으로부터 몇개의 덩어리로 구성된 점들과 선들을 분리시켜낸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으로 소임을 마치고 다시 그 결과를 3단계 과학자들에게 넘긴다. 이 과정이 1단계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반복된다. 최종적으로 1단계 과학자들은 비록 그 두장의 사진이 전혀 다른것일지라도 그것이 "김연아"라는 공통된 인물상을 담아내고 있다는것을 알아낸다. 김연아가 웃는 모습이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든, 비록 5단계에서 전혀 다른것이었어도 1단계까지 오게 되면 김연아라는 동일한 표상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는 불변표상이다. 대상이 마구잡이로 회전되어 있거나 흩어져 있거나 넘어져 있어도 우리는 최종적으로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즉시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정보의 흐름이 양방향이라는 것이다. 5단계 과학자에서 1단계로 가는 정보의 흐름이 있고, 그 역의 방향도 존재한다. 앞서 1단계 과학자가 그 하위 과학자들에게 지시(명령)하는 경우가 그렇다. 게다가 1단계 과학자들은 지시할 때 어떤 단서까지 줄 수도 있다.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진 사진을 보고 5단계 과학자들이 우왕좌왕할 때 "그건 아마 김연아일 것이다" 란 단서를 주면, 5단계 과학자들이 우왕좌왕 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의미다.(그들은 이전에 김연아의 점-선집합을 관찰했던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점과 선의 집합을 관찰하게 됨)  
이런 역방향의 정보 흐름이 바로 예측이란 용어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아마 저 사진은 김연아를 표상할 것이다" 1단계 과학자로부터 5단계로 퍼져나가는 정보(명령)는 각 과학자 계층을 이렇게 기대하게 만든다.  
(이 예시의 경우, 시각적 자료 즉 사진속의 인물로 이야기를 한정했지만, 촉각, 미각, 후각, 청각등등의 모든 감각자료에 대해 이와 동일한 논리가 작동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예컨대, 5단계 과학자들이 녹음기, 음향탐지 장비를 이용해 특정 주파수대의 소리들을 선별적으로 모으면, 이 자료가 최종적으로 1단계 과학자들에겐 "애국가"란 노래로 식별되는 식이다.)

저자는 이 계급화된 과학자 사회와 동일한 메커니즘이 인간 뇌의 신피질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물론 기존 연구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게 그리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David Marr의 선구적 업적에 영향받은 시각 인지(지각) 이론가들, 그리고 전통적인 컴퓨터 비전을 전공한 사람들은 아마 이 내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을, 어쩌보면 뻔한 내용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저자의 관점이 유별난 것은, 기존의 이론에 비해 앞서 예시한것 처럼 예측으로 표현되는 역방향 정보의 흐름을 크게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정방향-역방향의 대칭적인 정보 흐름에 따른 표상의 추상화/구체화 과정의 연속이 지능의 본질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측이란게 숙고(deliberation)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통상적인 용어법을 따를 경우 우리가 예측한다는건 보통 꽤 오랜시간을 숙고해서 어떤 미래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인데, 여기선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예측은 실시간으로 (신피질의 수준에서) 일어난다! 야옹~하는 소리만 듣고서도 단 0.5초안에 우리 마음이 떠올리는 고양이에 대한 표상이 바로 예측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의식적으로 조정하는것은 아닐지라도 매 순간 순간을 이렇게 예측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문 손잡이를 돌리면, 철컥하는 소리가 날거라는 것을 예측한다. 가려운 곳을 손으로 긁었을때 곧 시원한 느낌이 오게 되리라는것을 예측한다. tv보고 있다가 1초간 한눈을 팔고 나서 다시 tv쪽을 봤을때 tv가 그대로 놓여있을거라는 점을 예측한다. 저자는 이렇게 과거엔 전혀 주목받지 못한 예측이라는것을 지능의 본질로 놓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예측능력은 숙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저자가 말하는 예측은 일반화로 대치시켜 생각하는게 옳다고 본다. (예컨대, 야옹~하는 소리가 난 후 고양이를 예측하는 경우는, 고양이가 그런 울음소리를 내게 된다는 과거의 수 많은 경험에 의한 우리의 자동 반응이다. 즉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그 울음소리와 고양이간의 결합을 일반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예측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이 관점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 논리를 인간의 감각-운동 영역 전체로 확장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예 신피질 전체가 이 논리로 짜여져 있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즉 앞서의 예시를 끌어온다면, 신피질 전체가 통째로 하나의 계급화된 과학자 사회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독자입장에선 그의 주장이 아직 가설수준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볼때 저자의 주장은 경계적 지식인의 정말 도전적이면서도 놀라운 가설이다. 어디 한군데 허접스러운 점이 없다.

여기까지가 책 전체의 요약 내용이다. 그러나 이 요약본이 이 책이 암시하고 있는 내용의 전부가 아니다. 사실 이 책엔 책의 구성상 저자가 미처 다 설명하지 않았거나 그냥 넘어간,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비록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일부만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는 불변구조가 세계의 구조를 어느정도 반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고로,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우리의 뇌(신피질)는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실제의 과학(ex 물리학)이 세계의 불변구조를 포착해내는 그런 집단적인 연구과정임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과거에 비트겐슈타인이 지적한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다는 내용이었던것임을 기억하자. 인공생명 분야에선,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동형이라는 유명한 공리도 이미 제창되어 있다. 이렇게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진술들이 존재한다는것은 이것이 뭔가 철학적으로 연구될만 한 가치가 있다는것을 암시한다. 사실 이 부분은 지능 탐구와는 별개로 철학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둘째, 저자의 기억-예측모형은 만약 참으로 밝혀질 경우, 현재 IQ테스트의 기반 이론인 일반지능이론에서의 g-팩터를 제대로 지지해줄 토대가 될 만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내가 아는 바, 상당수 일반지능이론가들은 g-팩터로 지능의 거의 모든 측면을 설명해낼 수 있다는, 사실상의 지능의 g-팩터 환원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저자가 언급하고 있듯이 지능테스트는 예측능력 테스트이다. 추상화된 패턴을 인식하고, 범주화하는 능력을 측정하는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IQ테스트의 전부란 얘기다. 따라서 저자의 기억-예측모형은 (그것이 참일 경우) 일반지능이론의 g-팩터의 실제 메커니즘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분명히 일반지능 이론가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셋째, 저자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과연 무엇이 나타날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점이다. 사실 내가 이 책으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이곳에서 밝혀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인데, 그래도 궁금해 할 만한 사람이 있을테니 그 내용을 말 해 두겠다.

놀라지 마시라.. 먼저 이 책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미래엔 인간 과학자들이 모두 실직하게 되리란 점이 분명해진다! 생각해보라. 예측하고, 패턴을 뽑아내고, 정보를 저장하는데 기가막힌 재주를 가진 기계가 있다면 굳이 인간 과학자들이 왜 필요할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심각하게 생각했던 점은, 저자의 기억-예측모형이 과학활동에 필요한 거의 완벽한 mind tool-set 이라는 것이다! 내가 위에서 과학자 사회의 예시를 들적에 그냥 마구잡이로 예를 뽑아낸게 아니다. 사실상 과학자의 정신 활동에 필요한 모든 메커니즘이 저자의 이론안에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이론이 참으로 밝혀지고, 이 이론을 이상적으로 구현한 기계가 탄생할 경우, 인간 과학자들의 실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저자는 이 부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하나의 놀라운 귀결이 있다. 앞서의 과학자 사회 예시에서 나는 5단계까지의 계급을 설정 해두었다. 인간 뇌도 생물학적 한계로 그 정도 이상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6단계, 7단계 그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인간 뇌에 또 다른 장치를 부착하여 추상화를 더 진전시키는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할 이유가 하등에 없다! 저자의 이론은 이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며, 이것이 발생시킬 놀라운 가능성 즉 초-인간의 탄생까지 암시하고 있다!  (저자의 이론은 사실상 전지한 능력을 가진 거의 신의 지적능력에 버금가는 기계의 탄생까지 예상하고 있다.)

독자들중엔 이 마지막에 지적했던 내용들이 이 책으로부터 도출되어 나온다는걸 믿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듯 한데, 나의 이런 결론은 이미 책의 말미에서 암시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내용이니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다만 이런 내용들이 미래 예측의 형태로 너무 두루뭉술하게 표현되어 있어, 주의력이 부족한 독자의 경우 이런 행간을 읽어내지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가 자신의 이론을 이용해 대기과학을 이러저러하게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설명한 마지막 부분을 찾아 읽어보자. 그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 나는 그 내용이 내가 마지막 항목으로 지적한 내용의 일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엔 여러가지 암시, 예측, 번뜩이는 통찰들이 넘친다. 그것들을 전부 목록화시켜 이 글로 쓸 수 없다는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특히 저자의 이론은 최근의 situated cognition-extended cognition-embodied cognition과 연결시킬 여지가 매우 크다. 이 부분은 아마 별도로 얘기가 되어야 할 내용일 정도로 방대한 논의의 여지가 있는만큼, 여기선 더 이상 그 내용을 언급하지 않겠다.)

그저 한명의 소박한 독자로서, 저자가 지능을 탐구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고 창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것 같다. 호킨스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잘 아는 사람으로 생각된다.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지만 이렇게 상황판단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대개 성공하게 되어 있다.  이 특성은 사업을 하는 사람이든, 학문을 하는 사람이든 해당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쉽게 말해 스스로의 주제파악이 되는 사람은 뭘하든 잘 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그가 학자이면서, 사업가이며, 동시에 컴퓨터 엔지니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나는 그의 이런 독특한 이력이 그의 독창적인 이론을 만드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 기존의 과학자들은 너무 세부적인 사항들에 갇혀 전체를 구조적으로 탐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반대로, 소위 인공지능을 다룬다고 하는 컴퓨터 엔지니어들은 그저 컴퓨터를 지능적으로 만드는데만 관심이 있지, 지능을 컴퓨터로 구현한다는것엔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그의 문제의식은 책 첫머리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호킨스는 이 양자의 집단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서로간의 이점을 접목시키는 접합점을 아주 잘 찾아낸 것 같이 보인다. 특히 그가 이미 이름난 사업가였기 때문에, 펀딩을 받고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여러 과정들은 (적어도 일반인들보다는) 꽤나 순조로운것이 아니었을까 예상 해 본다. 무척 부러운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IT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은 계층구조라는 개념에 아주 강하게 얽혀있다. 이것은 컴퓨터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거의 공기만큼이나 친숙한 개념이다. 심지어 컴퓨터 과학은 SW계층구조에 관한 과학이라는 말이 있을정도이니, 할말 다 한것 아닌가? 때문에 저자가 억-예측 모형의 계층구조를 설명할 때 나는 신기하게도 컴퓨터 네트워킹의 표준 참조 모델인 OSI reference model 을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내 눈엔 양자가 매우 비슷해 보이는게 아닌가? (아마 독자가 IT/SW개발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둘이 정보를 처리하는 메커니즘조차 꽤 비슷하다.

물론,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고 적용되는 분야가 전혀 다른것이지만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낼 때 아마도 SW의 계층구조적 사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점, 그리고 그가 뼛속깊이 컴퓨터 엔지니어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것! 결국엔 깊게들어가면, 하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이 책을 덮으며 그런 희미하지만, 이상한 전율이 내 심장을 강타해왔다.

이외에 내가 저자의 주장에 분명하게 동의하지는 못할 부분이 (현재로선) 딱 한군데 있다. 그러나 글의 길이도 그렇고, 또 여기에 그 글을 싣는것도 부적절한것 같아 이곳에 그 글을 작성할 예정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고 평가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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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크리스틴 케닐리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전체적으로 이 책은 저자의 독립적인 생각을 제시한다기 보다는 관련 연구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 생각들을 총 정리하면서 언어진화론에 관한 종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면에서 내용의 독창성은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이 책의 강점은, 주로 2000년대 이후에 나온 따끈따끈한 연구결과들을 집대성하고 있으며 어떤 한 연구자만의 편을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객관성을 기하려 크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이 책이 레퍼런스하고 있는 자료의 출처는 대단히 폭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상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긴 하겠지만, 이 부분은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듯 5년여에 걸쳐 수행된 관련 연구자들과의 인터뷰가 제대로 작동한 결과일것이다.

 

 물론 이 책이 이런저런 다양한 이론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있다고 해서 연구자들의 제각각인 목소리를 무질서하게 나열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다행스럽게 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한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 책의 저자도 그 점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언어라는것이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의 단일체로 생각될 수 없다는 점, 인간외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 인간만의 언어적 특수성을 주장하는것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 언어에 있어 (촘스키 학파가 신성시 하고 있는)통사론은 전혀 핵심이 아니라는 점, 언어의 생득적 기제를 주장하는것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전제 없이는 무의하다는 점, 특히 언어처리에 관련된 유전자와 뇌의 부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언어처리에만 특화된것이 아니라 다른 행동을 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 그리하여 언어와 행동과 생각은 따로 분리될 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 더 나아가 언어 진화를 이해하려면 현생 언어의 선행물로 여겨지는 개체간 신호전달 메커니즘(손짓, 얼굴표정등)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에 이르러 촘스키의 영향력을 벗어난 여러 흥미로운 연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언어 진화 연구에서의 촘스키의 막대한-부정적-영향력은 이 책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다), 특히 나는 그 중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언어의 진화과정을 이해하려는 시도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내 생각엔, 앞으로는 분명히 여기서 뭔가 의미있는 성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상하게도 현재 이런 연구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 촘스키가 언어 진화에 관한 모든 연구를 사이비로 규정해왔는데, 그것이 관련 연구자들에겐 거의 언어진화를 연구하지 말라는 권위적인 법률 문구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여러면에서 기존에 나온 <언어본능>과 비교함직하다. 스티븐 핑커가 소위 진화심리학자들을 대변하여 언어처리의 모듈성, 언어의 유전자적 상관물,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언어의 생득적 특성을 진화심리학이라는 틀안에 녹여내는 독창성을 발휘했다면(그 책 이전엔 그런 내용을 주장하는 책이 없었다), <언어의 진화>는 그만한 독창성을 보여주진 않지만, 핑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마저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입장에 불과하다는식의 일반화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더 큰 그림을 보자" 라고 제안한다.(이 책에 의하면 기존의 진화 심리학자들은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생각한 면이있다. 언어라는게 그리 단순한게 아닌데도 말이다.)

나 역시 저자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현장에 좀 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연구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어쨋든 언어학이 언어만을 연구하는 학문이어서는 안된다는것이 예전부터 내가 가져온 신념이었는데, 많은 최신 연구결과들이 이런 내 생각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것 같아 기분이 좋다.

번역상태도 좋고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아 대중서로도 흠이 없을뿐 아니라, 최신의 연구성과를 폭넓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 연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만하다. 내 생각에 여지껏 나온 언어학 관련 책 중에 이렇게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은 책도 없으니 이쪽 분야의 최신 연구결과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당장 읽어 보시길 권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지만 이 책도 어떤 형태의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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