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물·동맹 -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과 테크노사이언스
브루노 라투르 외 지음, 홍성욱 엮음 / 이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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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인간.사물.동맹>을 읽기 전에 독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 두 가지만 일러두겠다.

첫째, <인간.사물.동맹>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인류학 및 역사를 서술해 놓은 책이 아니다.(<총.균.쇠>와 같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라는것이다.) 제목과 책표지에 현혹되어(?) 이 책을 그런 성격의 것으로 오인하면 안된다. 둘째, <인간.사물.동맹>은 브루노 라투르의 저작이 아니다. 이 책엔 그의 글 두편이 실려 있을 뿐이다. 충분히 사려깊지 못한 독자들이 책 겉면만 보고 낚일듯 하여, 이 두가지 주의점을 미리 밝혀둔다.

그럼 대체 <인간.사물.동맹>은 무슨책인가? ANT(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소개서이다. 책 구성 방식은? 여러 다양한 ANT연구자들의 논문들을 책 한권으로 합쳐 놓았다. 단지 ANT를 개발하는데는 브루노 라투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의 글 두편이 실려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1부에서 ANT이론 자체를 설명하고, 2부에선 현실세계에 ANT를 적용 해석하는 case-study가 이어진다. 이 책의 구성은 그렇다.

 

예전부터 ANT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그 내용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살펴본다. 헌데, 내겐 이 책의 내용이 무척 당혹스럽다. 물론 이 당혹스러움이 <인간.사물.동맹>이란 책으로부터 기인하는건지, 아니면 ANT자체의 특성에 기인한것인지 나로선 전혀 알 방법이 없다. 전자의 경우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후자라면 정말 대책이 없다. 이 책에 실린 상당수의 글들이 이론 설명을 위한 개념설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을 행위자로 여긴다는것이 당혹스럽다는게 아니라, ANT의 허접함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 사물을 행위자로 여기는건 내게 무척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ANT에 따르면, 일명 구획나누기(근대/비근대, 자연/사회, 과학/인문학, 사실/가치 등등의 분별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행위라고 한다 (오 마이 갓~!). 모든건 사물-행위자의 네트웍상에만 존재하며, 그 네트웍조차 끊임없이 수정되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일체의 고정된 존재자를 상정하지 않아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그래서 ANT는 이 세상의 모든것을 잡종으로 본다. 인간도, 사물도, 그 어떠한것도 모두 서로에게 들러붙어 잡종적 네트웍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ANT에 따르면, 구획나누기는 일명 근대라고 불리워진(실은 근대라는건 없었지만) 시대로부터 전해내려온 질 나쁜 습관일 뿐이다.

벌써 이쯤되면, 멀리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유전("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것은 흐를뿐이다.")이나 좀 더 가까이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이 연상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다. 아닌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어떤글엔 ANT설명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거론하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떠서 복잡계 과학, 공진화 이론, 컴퓨터 과학에서의 객체지향 방법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정말 "헉~" 이다.) 

 

여러편의 글을 읽어본 결과 기본적인 ANT의 의도는 잘 알것 같다. 그리고 나는 ANT가 상정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엔 공감하며, 그것이 그렇게 비상식적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최신의 HCI분야의 연구들을 살펴볼것 같으면 ANT와 통하는 부분이 있기까지 하다. 즉 사용자가 컴퓨터(사물)와 어떤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는 단지 사용자의 행동에만 영향을 끼치는게 아니라 훨씬 거대한 사회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글에 달릴 덧글의 내용을 기술적으로(technically) 200자 이내로만 한정한다면, 그것은 그 글로부터 파생될 사용자들의 생각을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트위터는 사회적으로 텍스트를 실시간 소비하도록 촉진시켰다. 마우스는 윈도우라는 개념과 함께 붙어다니며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잡종적 네트웍의 주요 행위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외에도 ANT에 맞는 여러 다양한 사례들을 많이 퍼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결시키자면, HCI뿐 아니라 ANT를 다른 다양한 연구 분야에 관련지을 수 있다.)

요점은, ANT가 지향하고 있는 바는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것이다. 사물과 인간의 동맹이 사회적 네트웍을 변화시키고, 이것 자체가 또 다른 잡종적 행위자를 만들어내서 그 행위자가 다시 새로운 사회적 네트웍을 만들어내는 이 끊임없는 생성-소멸의 과정을 직시해야 한다는 ANT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공감가는 부분이고, 이미 많은 분야에서 진지한 학문적 탐구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ANT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여럿 존재하고, 특히 어떤 부분은 ANT를 진지한 이론으로 취급하기 어렵겠다는 내 의심을 굳건하게 한다. 혹시 ANT는 인식론적 구획나누기를 존재론적 구획나누기와 혼동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ANT에선 설명과 기술(description)이 혼재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ANT자체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그저 자신의 불명료한 언어구사에 대한 변명은 아닐까? 특히, ANT를 (이 책에서 말하는 바대로 표현하면) 성찰적으로 따져볼 때, ANT에서의 여러 개념구획들(문제제기, 관심끌기, 등록하기, 치환, 기입, 중재자, 매개자 등등의 개념)은 그것 자체가 ANT자신이 타파하려고 했던 근대적 구획긋기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내 문제제기가 정말로 ANT가 타파하려고 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근거하는 것일까? 오히려 내 문제제기를 ANT가 다시 문제삼는것이야 말로 ANT자신이 행위자가 된 번역과정의 산물이 아닐까? (여러가지 측면에서 성찰적 문제제기는 괴델이 연구했던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끌어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것 같다.)

이 책만 읽고서 ANT전체를 평가하는것은 분명히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만을 볼 때, ANT를 하나의 진지한 이론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사실 ANT가 잘 짜인 이론으로는 결격사유를 갖고 있다는건 홍성욱 교수가 책 첫머리부터 솔직히 밝히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모든 저자들이 ANT를 설명하는데, 그야말로 잡종적인 글쓰기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 실린 라투르의 <현실정치에서 물정치로>라는 글은 그 중에서도 으뜸이다. 라투르에게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이런 종류의 글을 쓰레기라고 부른다.(앞에 ""를 붙여도 되겠다) 어떤 전시회 도록의 서문으로 실린 글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해당 글은 무의미한 레토릭으로 가득차 있다. 일명 미학적 글, 예술적 글로는 훌륭한 것일지 몰라도, 이런 글은 그 외엔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불필요하게 지적 허영을 과시하고, 특히 논리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두리뭉실한 뜬구름잡는식의 레토릭은 제발 혼자 즐기는 용도로만 써달라는것이 내 부탁이다. 벌써 이 책에서 들뢰즈-가타리와 기호학을 끌어들일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그나마 맨 마지막에 실린 김환석 교수의 글이 비교적 건조한 문체로 책을 잘 마무리 해 주고 있다. 이 글이 아니었다면, 아마 열받아서 이 책을 다시 중고장터에 팔아버렸을지 모른다.)

 

내 자신이 여러분야에 관심을 가진만큼, 이 책을 내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이론들과 맞 대어 보면서 읽었다. ANT자신이 여러 다른 이론들을 다수 거론하고 있으니, 당연히 통하는 부분이 있을걸로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는것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ANT의 불명료함 때문에 도저히 기존의 이론들을 어떤식으로 갖다대야 하는지 그 지점을 찾질 못했다. 현재로선 그나마 꽤 분명해 보이는 것 하나를 찾아 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것은 ANT가 잡종적 인간-사물의 복잡계 네트웍에 대한 사회학/정치학이라는 것이다.

복잡계 과학과 ANT가 다른 지점은, 전자가 정량적으로 측정되는것의 통계적 분포와 그와 관련된 추상적 패턴에 관심을 갖는 반면에 후자는 측정될 수 없는 정성적인 부분들까지 식별해내고, 특히 그런 부분들이 이루는 네트웍에서의 권력분배과정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ANT는 복잡한 것들이 이루는 권력의 분배과정에 관심을 갖는 사회학내지는 정치학이다.(이것은 체계의 동적 전개과정-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복잡계 과학과는 분명히 다르다.) 다만 그 연구방식에 있어 상부구조니 하부구조니 인간이니 사회니 하는 고정된 일체의 구조를 거부하고, 그저 모든것은 네트웍이란 선언을 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네트웍엔 인간뿐 아니라 사물까지 다 포함된다.

흥미로운것은, 복잡계 과학과 달리 ANT는 추상적 패턴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ANT는 그것을 거부한다. ANT가 말하는것은, 패턴 그 자체도 변하기 때문에 그런것에 초점을 맞추고 현상을 바라보는것은 부질없다는 식이다. 고정된 패턴이 없으니, 고정적으로 설명할꺼리도 없다. 그저 변화하는 네트웍 그 자체의 기술(description)이 바로 설명(explanation)일 뿐이다. (정말 허망한 결론이다.)

아마 내가 <인간.사물.동맹>을 통해 ANT를 설명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는다면, 내용을 이렇게 요약할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라투르의 원저작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는 고민말이다. ANT가 하나의 이론조차 아닐 수 있다는(담론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강한 심증이 있는 상황에서, 라투르의 저작을 찾아 읽는것이 과연 내게 얼마나 영양가가 있을것인가? 그의 글을 읽는것이 괜한 시간낭비는 아닐까?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ANT에 대해 기대했던 내용이 실제의 내용과 달라 실망스러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ANT에 대한 최초의 대중소개서로서 이 책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생각은 없다. ANT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겐 읽어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같은 별종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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