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바스커빌가의 개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8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이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다는 것의 사치성에 대해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장난처럼 '아, 이대로는 난독증이 오겠다'라는 말을 할 만큼 어느 순간 글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너무 어색해진 순간이 되었다. 긴긴밤 어쩔수 없이 한발짝 멀어진 컴퓨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우연히, 문득 발견한 책이다. 여담이지만 민음사의 문학 전집은 정말 멋지다.현대 소설이나 일본 문학, 수필 등등과는 한 끝 먼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손님은 초콜릿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트리플에 아몬드까지 뿌려드릴게요." 하고 말하는 꿈 속에서나 나올 종업원의 한마디와 같다. 어쨌든 그렇게 아서 코난 도일의 가장 유명한 책 중 하나인 바스커빌가의 개를 읽었다.

장르를 따지자면 추리 소설이지만 고딕 소설에 가깝다. 미리 알고 읽었더라면 아마 꺼렸을런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너무 발달해서 조금만 찾다보면 스포일러 당하기 쉽상이라 그마저도 무서워서 하지를 못한다. 어쨌든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과 같은 고딕 소설을 접해봤다면 비슷한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코난 도일의 연관 검색어는 당연히 셜록 홈즈이다.
생각을 안했던 바는 아니지만 폭포의 벼랑 끝에 떠밀려 죽었던 셜록 홈즈가 부활했던 까닭은 원고료. 즉 돈 때문이었다. 어쨌든 죽은 줄만 알았던 셜록 홈즈가 빠밤 다시 등장한 소설이건만 소설의 주요 화자는 그의 친구 닥터 왓슨이다. 
짧게 내용을 간추리자면 대충 이렇다. 바스커빌이라는 대부호의 집안 상속자들이 족족 죽어나가는데 그것이 바스커빌가에 걸린 저주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악마의 짐승과 같은 산만한 개에게 찢겨죽는다는 것인데 그 흉흉한 믿거나 말거나 소문에 상속자들 유산 상속이 또한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소문난 탐정인 셜록 홈즈에게 진상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게 되는데 홈즈는 바쁘다는 핑계로 합류를 미루고 닥터 왓슨을 먼저 보낸다. 집안의 마지막 상속자인 헨리 바스커빌이 마지막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또한 흉흉한 미지의 짐승을 찾아내기 위한 왓슨의 모험을 다룬 이야기이다.
큰 감흥을 따지자면 딱히 별 다를 것 없다. 그냥 여느 코난 도일의 소설 같고, 사실 정말 유명한 그의 다른 작품만 하지 못하다는 게 나의 소견이다. (아니면 단지 프린지 사이언스 타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개인적 취향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번쯤 읽어볼 만 하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요새 드라마나 영화에 따지자면 별반 밋밋한 이야기일 테지만 짜고 매운 음식이 자극적이고 매력있지만 결국에 대세는 슬로우 푸드를 지향하듯이 진정한 추리 소설의 묘미는 탄탄한 글쓰기의 소양과 현 테크놀로지의 힘을 싣지 않은 고전미가 아닌가 싶다. 

최근 BBC에서 셜록 홈즈를 21세기 버전으로 내놓은 것을 봤다. 랩탑을 두들기고 스마트폰을 쓰는 셜록 홈즈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BBC는 정말 이런 것에 능하다. 온고지신.'그거슨진리'겠지만서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OD] 동백꽃 아가씨-춘희 1 큰글 세계문학전집 17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지음, 민희식 옮김 / 큰글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헤일 수 없이~ 수 많은 바암을~ 내 갸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일찍이 이미자 성님도 노래하셨듯, 동백 아가씨라는 애칭을 가진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올 해에 두고두고 후회 할 <<올해의 최고 후회상>>을 나에게 꼽자면 일단 라트라비아타를 너무 보러가고 싶었는데, 기말고사고 나발이고 ! 할 만치 입장이 아니되어서..아깝게 놓쳤다.

 

어쨌든 춘희, 원 작 제목은 La Dame Aux Camelias. 알렉상드르 뒤마의 실제 경험담이라고도 알려진 이 책을 처음 본 것은 폭풍 사춘기를 겪던 중딩 시절이다. 사실 그 시절에 보았던 책이 춘희, 마농 레스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이라, 내가 남 등 안 쳐먹고 나름 곱게(?) 자랐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그러나 잠시 연애관이 이상하게 박힌 적은 있었음)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프랑스의 고급 창부, 그러니까 코르티잔(courtesan)이다.

당시의 코르티잔은 미모는 물론이요, 글 그림 할 것없이 예술적 소양도 갖추어야 했기에 항상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던 동백꽃을 들고 극장, 사교계에 나타나 동백 아가씨라는 애칭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양가의 자제인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이 그녀를 보고 한 눈에 반해 열정적 사랑을 고백하며 끊임없는 구애를 하고, 그로 인해 마르그리트 고티에 또한 처음으로 '사랑'에 눈 뜨게 된다.

그러나 상류층 귀자제와 다름없이 살아온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사치욕을 이겨내야하는 일이 쉽지 않고, 때 마침 아르망의 아버지, 앙드레가 찾아와 그녀와 아르망의 관계를 끊을 것을 부탁한다.

(어쩐지 우리나라의 백석 시인과 지고지순 했던 자야가 떠오른다) 앙드레의 간곡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마르그리트는 N백작에게로 떠난다. 오래지않아, 그녀는 극도로 병약해져 세상을 뜨게되고, 쓸쓸한 그녀의 임종 앞에 아르망과의 순수한 사랑을 했던 일기장만이 남게된다.

 

사랑이 무어길래, 명예도 권세도 뿌리치게 되는 것일까. 어쨌든 이러한 비련의 여 주인공도 알렉상드르 뒤마가 남자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스토리일런지도 모른다. 순애보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의 판타지 말이다. 마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에 대한 광기어린 사랑을 이야기하였듯 어쨌든 남녀는 서로 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열정적인 사랑을 바라게 마련인가보다.

 

어쨌든 실제 프랑스의 창부이자, 이 소설의 모델이기도 한  마리 뒤프레시,Marie Duplessis는 고급 창부였다기 보다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처녀성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 자식이었다고 한다. 몽마르뜨 언덕에 가면 여전히 뒤마의 묘에 수 많은 사람들이  동백 꽃을 들고 찾아온다고.

미의 기준은 정말이지 모르겠다. 사실 마리 뒤플레시의 사진은 너다섯살에 무슨 문학 백과사전을 통해 처음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왓 절세가인이다 ! 라는 말은 차마 안 나온다. 어쨌든 이 여자도 22살 꽃 띠에 운명을 달리한 가련한 여인. 정말 그녀가 좋아했다던 동백꽃 만치로 꽃처럼 짧은 생을 보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열린 결말'이 싫다. 

아마 내 멋대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프로세스가 잘 정립이 되질 않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어쨌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자체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러한 문제에 우리가 가장 많이 집착하는 것은 결국 그 것이다.

' 그래서 범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

 

이러한 형식의 틀을 깬 것이 바로 덤불 속의 주제에 있다. 덤불 속 역시도 살인범이 누구인가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조마루와 마사고, 다케히로 본인 혼령의 증언들이 오가며 결국 한 사건에 각자 다른 증언, 그것도 다조마루와 마사고는 자신들의 결백이 아닌 서로가 사내를 살해한 진범이라고 주장하게 되는 상황 또한 흥미롭다.

 

다조마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마사고의 미모에 홀려 마사고를 범하였고, 두 사내를 섬길 수 없다는 그녀의 청에 따라서 다케히로와 결투를 벌이다 그를 죽이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뒤 이어 등장한 마사고는 몸을 더럽힌 자신을 남편이 용서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동반 자살 하려 하였으나 자신만 살아남게 되었다며 울부짖는다. 처녀 무당의 몸을 빌어 나타난 죽은 사내, 즉 다케히로의 혼령은 몸을 더럽힌 아내가 되려 다조마루에게 자신을 죽일 것을 청해 자신이 화를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울분을 토한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의 진위 여부를 떠나 다조마루 입장에서는 자신이 떳떳한 도적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다른 남자의 아내를 범하였지만) 마사고 역시 정절과 도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숙한 여자로써의 자신의 모습을 지키려 함이 중요했을 것이다. 다케히로 역시 다조마루가 마사고를 범한 후, 사무라이로서의 명예를 지키기위해 명예로운 자살을 했다고 하는 것이 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최선이었을 것.

 

어느새 이야기는 더 이상 누가 다케히로를 죽였는가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자기 방어를 보이고, 합리화를 하는가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점점 묘하게 흘러가 전혀 다른 이야기 같았던 라쇼몽과 덤불 속이 묘하게 이어짐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처해진 극한의 상황과 자기 합리화. 그리고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짧은 글에 수 많은 불편한 감정들이 오갔다. 사람들은 '돌직구'에 약하다. 그야 다른 사람에게 날리는 것은 하하호호 웃지만 '나' 혹은 '나'와 '너'의 우리라는 교집합이 성립하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아마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들킨 기분이 이런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인상은 우리에게 쉽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인간은 원래 어떤 신기한 일이라도 쉽게 곧이듣게끔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일단 곧이듣고 믿게 되기만 하면 단단히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것을 다시 지우거나 말소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85 p

 

 

아아, 내 가슴은 너무나 들끓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납득하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 84p

 

 

확실히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와, 그리고 우리를 모든 것과 비교해 보도록 만들어진 모양이다. 그래서 행불행은 우리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독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문학의 환상적인 이미지에 영향받은 우리의 상상력에는 본질적으로 더 높은 것을 추구하려는 충동이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피조물을 한층 고양시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가장 낮은 자리에 놓이게 되어 우리 이외의 것은 모두 우리보다 훌륭하고 누구 할 것 없이 우리보다는 완전해 보인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는 모자라는 것이 여러가지 있다고 우리는 느낀다. 그런데 우리에게 부족한 바로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 모조리 그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그 사람에게는 어떤 이상적인 삶의 즐거움마저도 부여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행복한 사람이 한 명 완성되는 것인데, 이처럼 완벽하게 이룩된 사람이란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 104p

 

 

무슨 연유에서인지 나는 이 책을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 선물 받았다. 막상 책을 읽은 것은 중학생이 되던 해였는데, 그 시절 내 기억 속 잔상이란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나'가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안타까운 집념은,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명치 끝이 살살 간지러워져 깔깔 거리던 14살 소녀에게는 너무 벅찬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실은 나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가 낯설다. 심지어 어릴 땐 '사랑'이 뭐냐며 진지하게 반문한 적도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하는 감정의 차이가 무엇일까? 너무너무 좋으면 그것이 사랑인건가 하며 아직도 나는 '그 것' 의 정의에 고개를 갸웃한다.

 

내가 생각하는 희대의 집착남, 그 양대 산맥을 꼽자면 다름아닌 베르테르와 히스클리프 (에밀리 브론테 作 폭풍의 언덕)가 되겠다. 실은 이 둘이 이렇게 광적인 사랑을 하게 된 데는 이 비극적 드라마의 히로인이자 조련사였던 로테와 캐서린의 지대한 공헌이 있었다. 받아주면서도, 정작 다 받아주지 않는 그녀들의 비정한 희망 고문이 있었기에 그들의 타이틀이 이렇게 굳건히 지켜질 수 있었으리라.

 

책 속 내용은 간단하다. 집안 상속건을 처리하러 왔던 법학도 베르테르가 우연히 로테를 알게되어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이 괴로워 먼 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러나 로테가 알베르트와 결혼한 사실을 편지를 통해 알게 되자 베르테르는 오히려 더욱 그녀를 잊을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그 그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되돌아 온다. 그야 베르테르의 극적인 선택을 오롯이 로테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열정과 이상이 있던 '젊은 베르테르'는 해묵은 관료사회에 염증이 나있었고 이제껏 직접적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던 로테가 (실은 자신의 자책감 때문에) 황급히 자리를 피해 버렸던 사건이 불꽃 같던 그의 성격에 도화선을 그었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다른 사람의 짝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내 짝사랑은 그리 아름답지도, 절절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저 길고 긴 외로움의 반추일 뿐.

그의 뒷 모습에 눈물이 난다던 서영은의 노래처럼, 나 역시도 그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났었다.

나는 열 다섯살부터 열 아홉살까지. 길고 지긋한 짝사랑을 끝내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닐 것에 도전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또 열병 같은 첫사랑이 지나갔고, 만남보다 더 긴 후유증을 앓았다.

그렇게 짝사랑도, 첫사랑도 지나 버린 지금에서야 다시 마주보게 된 베르테르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는 내 또래가 되어버린 베르테르. 그래도 나도 아직은 청춘이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그가 그렇게 고뇌하던 모든 것들이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왔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너 아니면 죽을 것만 같던 그 시간들 역시 결국엔 다 지나가버린다. 어쩐지 잔인해보이는 말이지만, 상처란 치유가 되기 때문에 또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랑 자체를 순간의 치기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

 

-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일생 시니컬하게 살 것 같은 비평가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역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니, 인간은 좋으나 싫으나 마음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운명인가보다.

아 찬 바람이 쌀쌀한데, 나도 하고 싶다. 남들 다 하는 그 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이 각기 성이 다른 세 남매를 키워가며 겪어왔던 일들을 첫째 딸 위녕의 시각에서 바라 본 Faction(Fact+Fiction)『즐거운 나의 집』은 유교적 사상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싱글 맘, 줌마렐라, 골드미스. 이들은 요즘 여성들을 일컫는 새로운 수식어구들이다. 현대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직장 내의 지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증가됨으로써 ‘노처녀’라는 기존의 부정적 시각보다는 ‘골드미스’라는, 지적 수준과 사회적 위치를 겸비한 미혼여성들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돌아온 싱글, 싱글 맘 등 또한 더 이상 무조건적 인내를 요구했던 기존의 억압된 결혼 가치관을 탈피하기위한 표현 중 하나이다. 
 

가부장적 가치관이 뿌리 깊은 대한민국에서 기존의 이혼이란 남, 녀의 합의된 헤어짐임에도 불구 전적으로 이혼 여성에 대한 불평등한 사회적 시선이 강하므로 마치 결혼 생활이란 여성의 인내와 참을성만을 요구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남성 주도권의 가정 형태를 띠는 것이 우리나라의 혼인 실상임에도 불구하고 집안 살림과 육아의 문제를 거론하며 집안 대소사의 잘잘못이 여자의 탓으로 가려지고 남성들의 무분별한 음주문화나 불륜 행위쯤은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의 노고쯤으로 눈감아주는 것이 마치 내조의 일환인 것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여성들도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원하기 시작했고 자녀를 위해, 혹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참고 살던 기성층 부모들의 황혼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더 이상 남성 의존적인 결혼을 유지하지 않겠다는 기존 통념에 반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이름직하나 여성들이 주체적인 자신의 의지를 결혼 생활 자체에도 투영하겠다고 하는 시도이며 기존 남성 중심 사회에서 탈피하고자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해가 갈수록 이혼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스턴트식의 가벼운 대인관계가 생겨났으며 ‘몇 년 살고 이혼하느니 차라리 동거를 하겠다.’며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는 동거부부 또한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세태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신성도가 떨어지고 가정이라는 것의 책임감 또한 결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이혼 가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그들의 자녀들이라는 점이다

한 부모 가정의 자녀들이 무조건 가정교육의 결여와 비뚤어진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분명한 차이가 있듯 부모간의 서로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분명 아버지, 혹은 어머니 한 편의 부모만으로는 채워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배워야할 것들을 자녀가 제 때 배우지 못할 때 무경험이 가져다주는 혼란스러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가정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설파한다. 그것은 아이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학업, 친구, 의식주, 취미, 특기까지도 모두 그들의 부모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결혼이라는 것은 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기보다 한 가정과 가정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가정교육 없이는 사회화 또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느 해외토픽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짐승이 키운 아이들은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여느 짐승과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이나 개념을 확립하기 이전에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카피하며 생김새뿐만 아니라 부모의 사상, 신념, 경험, 말투까지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의 반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편부모 가정은 여전히 상처받기 쉬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사회적인 부적응 등을 경험하기가 쉽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공지영의 소설 속 위녕과 엄마 공지영은 너무나도 이상적 엄마와 딸의 관계를 맺고 있다. 위녕은 세 번의 이혼을 경험한 베스트셀러 엄마와 또 다른 유명 소설가의 딸로 처음부터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게다가 십여 년을 엄마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살아 온데다가 한창 사춘기에 접했을 소녀가 각기 성이 다른 두 동생과 갑작스럽게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위녕의 모습은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간직한 엄마를 보듬고 이해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위녕의 가족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기보다 공지영 자기 자신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장치들과 뒤늦게 이루어진 자신의 가정이 단란하고 행복하다고 믿기 위한 자기 합리화적인 부분들이 가득하다.

소설『즐거운 나의 집』은 『Gilmore Girls』라는 워너 브라더스사의 드라마와 많이 닮아있다. 16살, 한순간의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된 로렐라이 길모어와 그녀의 16살 딸 로리 길모어가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최근 싱글 맘 스토리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또한 10대 소녀와 같은 감성을 가진 엄마 로렐라이는 당당히 여러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로리의 친부와도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다. 또한 똑똑한 딸 로리와 서로 친구처럼 지내며 아옹다옹하는 모습 등이 공지영의 소설과 꼭 닮아있다. 하지만 좀더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로리나 위녕처럼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부모의 문제를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사랑과 이해는 다른 관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글을 쓰면서 그녀의 아이들이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쓴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모든 일을 딸과 함께 나누고 의논한다는 점은 친구 같은 엄마의 존재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상 이러한 역할을 원래 부부간의 역할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실패한 결혼 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 가치인 자식에게 전이하였다던가, 내외로 아이들이 겪고 겪어나갈 상처들에 대한 죄책감이 작용한 것 같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었다.
 

공지영의 현대 엄마로써의 쿨한 모습은 이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통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딸 위녕에게 쓴 편지들을 엮은 이 책은 기존 우리나라의 부모 세대와 자녀들이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성에 대한 조언, 여러 차례 이혼 후 그녀가 느꼈던 생각들, 그간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 등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책에도 공지영 자신이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음에 속죄하는 듯한 글귀가 많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다소 변명 짙은 하소연을 되풀이된다.
 

위녕 또한 자신의 엄마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을 마치 하나의 커다란 도전처럼 여긴다. 이것은 자신의 엄마가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점, 이미 세간의 유명세를 탄 사람들과의 결혼 경력 등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지영의 세 아이들은 그들의 엄마와 살기 위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버려야만 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돈독한 대신 아버지나 새어머니와는 갈등 관계에 서 있다. 공지영의 시점에서는 남편이란 그저 법적인 관계임으로 다시금 친구로 남아있길 원할 수도, 또는 평생을 남과 같이 지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어찌되었건 혈연관계로 이어진 위녕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사이가 좋지 못해 부모 중 한 편에 서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공지영이 ‘우린 남자 없이도 괜찮다’는, 행복한 가정의 환타지를 보여주기보다 그녀의 특별한 가족들만이 겪을 수 있었던 갈등과 세 아이를 양육하면서 겪었던 고충 등을 좀 더 솔직하게 나타내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좀 더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이야기의 초점이 너무 엄마와 딸의 관계에 맞춰져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딸은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입장과 생각을 고려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진다. 같은 여자로써 겪을 수 있는 상황들, 생각들이 공감을 살수도 있고 서로 대화를 하기에도 같은 성별이라는 점에서 손쉬어진다. 하지만 둥빈과 제제는 자라나는 성장기의 남자아이들이다. 어머니가 사랑만으로도 감싸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다가 둥빈 같은 경우는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의 죽음마저도 경험해야했다. 어린 나이에 겪기에 너무나 버거운 짐들을 짊어지고 있는 둥빈과 제제에게도 조금 더 이야기가 돌아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자기 자신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둥빈과 독특한 제제의 성장 과정보다는 세 번의 이혼을 겪고도 또 사랑을 하고픈 로맨티스트 엄마의 모습이 더 부각되어 비춰지고 있으니 말이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여성으로써의 삶 또한 포기하지 못한 공지영은 분명 현대의 새로운 어머니의 표상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잣대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한 여성에서 어머니로의 새로운 역할을 여성으로써의 희생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녀가 처음 결혼을 결심했던 그 순간에 결정된 당연한 책임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게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뜨거운 연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제 때가 있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마흔 살의 여성이 십대 청소년의 행동과 어휘를 사용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처럼 20대 때 불처럼 열정적인 연애를 경험했다면 조금 나이 들어서는 그 사랑을 자식에게 쏟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새로운 가정을 표방했던 책의 글귀와는 달리 아이들은 어머니의 손에 맡겨야한다는 모계 사회의 타당성을 더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등장인물과 배경을 제외하곤 모두 허구다’라고 강조하던 공지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위녕과 친부, 그리고 새로운 식구인 새어머니가 서로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책의 화자인 위녕에게 좀 더 진정한 의미의 즐거운 나의 집이 되지 않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