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이 덜 깬 아이처럼 반쯤 풀린 눈으로 종합선물 셋트를 가슴에 안고 있다. 그리고 몽롱하게 꿈을 꾸듯 먼지 풀풀 날리며 주술성 강한 향신료를 익숙하게 섞어내는 작가를 보았던 거 같다. 천운영. 다소 생소한 이 신인 소설가의 바늘 끝은 한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나를 휘젓고 다닐 것이다. 그녀의 첫 창작집 [바늘]은 여러 가지를 담고 있는 종합선물 셋트 같다. '울퉁불퉁 못생겨도 맛은 좋아' 라는 카피가 있던 몇 해전 TV 광고의 한 초코바처럼 그녀의 소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못생겼다. 허나 어떻게 만들었던 또 무엇으로 만들었던 간에 누구라도 한번 맛은 보았다면 쉽게 잊지 못할 만큼 강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기이한 분위기와 모호한 행동, 거친 말투와 히스테릭한 웃음들을 가지고 있다. 문신을 그려주는 여자라는 독특한 소재의 [바늘]을 비롯하여,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소머리 가르는 청년의 이면을 다룬 [숨], 성장이 멈춰버린 여자 [월경], 조악하게 흉내낸 그러나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는 [눈보라 콘], 관념을 뒤집는 남편을 때리는 아내의 [행복한 고물상], 자신의 엑스레이 사진으로 또 다른 자신을 조합해 보는 [등뼈] 등. 신인답지 않는 현란한 문체와 독특한 소재들은 세련되어 그 빛을 더 발하고 있다. 문단에 이런 작가가 등장했다는데 무척 설레인다. 책에 실린 모든 작품은 어느것 하나 빠지지 않는 일정한 수준이상이다. 그 중 특히 애착이 갔던 작품은 [눈보라 콘]이었다. 절대 최고가 될 수 없기에 비슷한 것을 찾아 먹고, 모으는 아이. 어쩌면 어딘가 나랑 닮아서 일까. 적어도 한번쯤은 가지고 있는 어린 날의 기억들을 몽실몽실 피어오르게 했던 그래서 한동안 설레게 했던 그런 작품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 [유령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처럼 모호하다. 적어도 그녀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작품의 거칠 것 없는 묘사와 대사로 흡수되어 뭐든지 집어삼킬 듯 강력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세련되고, 거칠지만 때론 부드러운 묘한 매력을 가진 그녀만의 이 독특한 종합선물 셋트를 나는 언제고 잊지 않고 다시 찾을 것이 자명하다.
무슨 바람이 불어 요즘 와서 그림이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 먼저 우연찮게 디스커버리 총서 중 반 고흐의 책을 읽게 되었고 그가 귀를 자른 것과 정신이상이 오는 시점에서 일말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도 있는 고갱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었다.반 고흐의 글들과 그림을 보며 그가 가진 외로움과 소박함에 깊게 감명을 많았던 반면 어쩐지 고갱의 화려한 색채를 띤 작품과 글은 처음부터 잘 읽혀지지 않았다. 허나 장수를 거듭할수록 그가 가진 매력은 고흐의 그것과는 전혀 색다른 것이었다. 여럿 되는 그의 자화상과 외모는 어느 연극배우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인상을 주었다. 깊게 파인 쌍꺼풀 진 눈과 매부리코와 절제하고 있는 듯한 꾹 다문 입술이 그러했다. 또한 골똘히 뭔가를 원하는 표정은 어쩐지 모호하기까지 했다. 그가 남긴 자화상들 중에 빈센트 반 고흐에게 라는 글이 적힌 [레 미제라블]이라는 자화상은 아마 나의 머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거 같다.모든 천재들은 그 시대를 조금은 빗겨나 있다. 그들이 시대와 타협을 했다면 대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 했을 것이다. 고갱의 계속되는 도전은 그가 가진 재능과 잘 맞물려져 위대한 작품들을 낳게 했다. 타히티로에서의 삶은 그림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전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고, 특히 놀랄만한 것은 그가 가진 문학적 재능이었다. 그의 생각과 글과 관념들은 그 어떤 문학가들보다 더 문학적이었다. 이제 어디서든 그의 그림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을 거 같다. 선 굵고 검은 피부를 가진 그의 여인들을 어찌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내게 있어 좋은 그림이란 그저 바라보고 편안한 거면 된다.가령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다시 보고싶어진다면 그게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그림이다. 일전에 아는 동료가 우연히 보여준 고흐의 [비탄]이라는 그림을 보고 그저 고흐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다만 학생시절 미술시간에서 배운 자신의 귀를 자른 그리고 자살한 불우한 정신병자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그림 [비탄]은 내게 더없이 좋은 그림으로 비춰졌다. 그리고 단지 그 그림 외의 또 다른 그림이 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생겼었다.우연히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시리즈 중 태양의 화가 반고흐를 보게 되었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그의 여러 편 되는 자화상들은 눈빛부터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오른쪽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는 정녕 그리고 싶었을까. 몇 장 되지 않는 얇은 책장을 훌훌 넘겨보면서 그가 고민하고 아파했을 시간과 그의 시선들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가 겪은 몇 백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으로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 거 자체가 무리였겠지만 읽는 내내 뭔지 모를 안타까움 들이 나를 적잖이 힘들게 했다. 그가 가진 강한 삶의 대한 집착, 연민과 아픔 그리고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한 장돌뱅이 같은 삶을 그림으로 구원할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사람들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 가두는 것 그리고 우리를 매장하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장애와 문과 벽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구속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니? 그것은 깊고도 매우 진지한 애정이다. 친구가 된다는 것, 형제가 된다는 것, 사랑이야말로 지고하고 신비로운 힘이며, 감옥에 갇힌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사람들은 영원히 감옥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이다. '깊고도 매우 진지한 애정' 이라니 '사랑'이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을 살아서는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 중 안토닌 아르토드라는 사람 말대로 어쩌면 그는 '사회에 의해 자살한 인간' 일 지도 모른다.다만 분명한 것은 '화가는 모름지기 자아와 투쟁해 더욱 완벽한 자아를 만들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하며 물질적 어려움 따위는 극복해 나가야 한다' 고 말한 그가 진정한 화가이자 예술가라는 것이다.
너무 많이 알려진 책은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 일종의 고집이랄까. 누구나 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알 수 없는 고집들이 늘 주변에 존재해 있다. 하지만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써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할 말이 그 만큼 많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기에 삼십대를 한 달여 남겨둔 지금의 시점에서 그의 대표적인 소설을 읽었다. 우선 누구나 무리 없이 잘 읽히는 장점이 있었고, 다른 여타 외국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외국작가들은 어쩐지 우리네 정서와는 분명 차별성이 느껴진다. 허나 그의 소설은 같은 비슷한 문화권이라 그런지는 모르지만 분명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 뭔가는 뭐랄까 사람의 심리를 잘 자극한 솔직함과 너무도 섬세한 묘사력과 중간 중간에 뛰어난 미문(美文)들, 톡톡 튀는 대사에 있다고 생각된다. 간혹 섹스를 나누는 부분들이 숨겨져 있지만 전혀 외설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진지하게까지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의 의미. 그 물음을 던진 하루키는 전 세계 많은 젊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그 이상의 의미를 하나씩 품게 만들었다.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와타나베와 그를 중심으로 얽히는 삼각관계. 끝임 없이 사라져가고 생겨나는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관계는 마지막장에서 그가 미도리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나오코의 죽음으로 결국 끝이 난다. 왜 유독 그의 주변에서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았을까. 암울한 성장기의 시대. 너무도 많은 큰 밝음(희망)이 있기에 어둠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일까 이 소설은 철저하게 잘 아울러진 바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오코를 대신한 레이코와의 의식과도 같은 섹스장면과 미도리가 던진 '자기, 지금 어디야?' 라는 질문은 이 책의 가장 큰 압권이었다. 와타나베가 스스로 자문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은 현재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이제 서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좀더 일찍 젊은 날에 이 책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크지만 어쩐지 이십대를 보내는 지금 이 시점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스스로를 성장시켜가기에 내게 있어 충분히 자양분이 되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시를 공부하는 친구의 권유로 낯선, 다소 젊은 꽃 같은 미모를 가진 이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다. 김선우의 시는 어딘가 모르게 흥건하고, 질퍽하고, 은밀하다. 양수, 생명을 잉태한 모태를 모티브로 하는 시들은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포근하다. 때론 적나라하게 까발리기도 하고, 또 부드럽게 드러내는 폼이란. 어쩐지 당당함까지 느껴진다. 젊지만 그녀의 시는 다른 여타 시인들과는 달리 새롭다. 전체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는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라는 시였다. 죽음과 맞닿아 있는 엄마의 당부랄까. 당신이 죽은 후에 자신의 뼈 가루를 찹쌀 석 되와 섞어 바람좋은 날 시루봉 너럭바위에 흩뿌려 달라시는... 그냥 뼈 가루는 들짐승 날짐승들이 꺼려할지 몰라 찹쌀가루랑 섞으면 적당히 잡순 후에 나머진 바람에 실려 천. 지. 사. 방. 훨. 훨 가볍게 날으고 싶다는...이 시는 어쩐지 가슴을 아프다 못해 시리다. 시인이 시에도 말했듯이 나 또한 시인의 입장이 되어 당신께 묻고 싶어진다. 찹쌀 석 되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엄마는 이 괴상한 소망을 품게 된 걸까... 시집 전체에 흐르는 태생과 소멸해 가는 과정은 근본적인 틀을 벗어나지 않고도 긴장감을 유지한다. 나이보다 다소 성숙한 시인은 첫 시집답지 않게 당차다. 어쩌면 그녀는 또 하나의 창조를 위해 지금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산고의 고통을 느끼며 곧 해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