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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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5월 나는 그를 만났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만남의 시간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언젠가부터 나는 요절한 혹은 잊혀져간 시인들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지리산 등반도중 실족사한 고정희 시인을 비롯하여 기형도 시인 등 아까운 그들의 목숨이 보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죽기 전에 어떤 처절한 몸부림을 겪었을 그들의 마지막 흔적들이 더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산문집은 그의 습작노트를 비롯하여 그와 가깝게 지낸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그리고 기자로써 썼던 기사들 그리고 몇 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료였고, 유능한 기자였으며 유망한 소설가였다. 허나 그가 보고 느꼈을 시선들이 가 닿는 곳마다 아름답다기보다 어쩐지 무덥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자신의 나이보다 훌쩍 커버리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그는 너무 성장하여 서둘러 가버린 건 아닌가. 이제 그가 짊어지고 힘겨워 했을 그 나이를 나는 한 발짝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어리숭하고 덜 자란 미련한 내게 그는 등대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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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
전성태 지음 / 실천문학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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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내가 맡았던 과제 중 하나가 풍자와 해학의 달인 작가 김유정에 대한 소설을 읽고 레포터를 써야 하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작가 김유정의 작품들을 읽고 박장대소하며 흠뻑 빠졌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나는 해학과 풍자적인 소설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었다. 재치와 유머는 그 어떤 고급스러운 개그보다도 유쾌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웃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풍자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인간적인 고뇌를 재미와 웃음으로 치장 할 뿐 그 속뜻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작가 김유정이 있었다면 현재는 농촌소설과 풍자 해학 소설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 선생님이 계시다. 그리고 이어 문단에서는 이 젊은 작가를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전성태 작가의 첫 작품집 [매향]은 농촌에서 일어났음 직한 소재들은 모두 다루고 있다. 작가는 젊은 나이에 등단을 했지만 나이답지 않는 담대함과 구수한 남도 사투리와 입담은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서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요즘처럼 소위 최루소설이 범람하고 길들여진 이 시기에서 전성태 작가의 작품은 독보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작품집에 실린 모든 작품이 고루했지만 역시 등단작 [닭몰이]와 [새], [가문정월] 등이 기억에 남는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들과 우습지만 웃음으로만 끝내기엔 어쩐지 아쉬운 상황들이 기가 막히게 잘 묘사 되어있다. 당분간 나는 이 풍자적인 소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거 같다. 그래서 이 입심 좋은 젊은 작가의 차기 작품이 누구보다도 무척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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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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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학살을 소재로 다룬 것 중 가장 감동적이고 가장 잘 된 서사문학' -월스트리트저널- 이라는 광고를 책표지에서 보았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나 역시 그 어떤 영화보다도 어떤 잘 짜여진 구조를 갖춘 소설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만화라는 통상관념을 뒤엎는 작가의 신선한 발상이 재미있었고, 아버지의 과거 속으로의 여행과 현실에서의 아버지와의 견해차이들이 새로운 구성과 함께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 유태인들의 나치시절에 대한 두루뭉실한 생각들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인간이 가진 가장 나약한 부분들에 있어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오직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 작가의 아버지는 대단히 적극적이어야 했고 모든 것을 뚝딱 해치우는 만능인간이 되어야 했다. 못하고 안하고의 차이를 떠나 단 1%의 기회가 주워지면 망설임 없이 99%의 가능성으로 밀고 나가야 했다.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그저 살아남기 위한 (가족을 위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여러 극한 상황에서 살아 돌아온 아버지와 작가의 사소한 견해차이는 사실 대단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자의든 타의든 강박관념들로 익숙해진 아버지 그래서 전쟁이 끝난 지금에도 무엇하나 버리지 못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대립은 누구도 탓할 것 없는 아픔이다. 아트 슈피겔만씨는 아버지의 과거를 작품으로 담아내기가 고통이었을 것이다. 만화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 나치는 고양이로 유태인은 쥐로 표상한 재치 있는 작가의 발상에 놀랍다.

이 책의 소재는 우리가 수없이 영화나 소설로 혹은 다큐로 본 나치시절 유태인의 암담한 생활을 담고 있지만 이 흔한 소재가 전혀 식상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바로 인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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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한쌍
닐 사이먼 지음, 강인환 옮김 / 청목(청목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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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집을 읽기란 쉽지가 않다. 그것도 외국작가의 작품이라면 더욱 쉽지 않는 일이다. 시나 소설같이 많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대본을 읽는 다는 건 아직까지 우리에겐 몇 명에 국한되어진 듯 보인다. 언젠가 선배가 닐 사이먼의 작품을 추천해 주었다. 이 책은 닐 사이먼의 대표작품인 [희한한 한쌍]을 비롯하여 [굿 닥터]시리즈, [플라자 스위트] 등 여러 편이 실려 있다.

기발한 발상과 그야말로 희곡적인 문체들은 글을 보고도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했다.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벗어나 사회계층 전반에 걸쳐있는 소재의 다양함은 희곡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에 적잖이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안정된 구성과 함께 반전이 잘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주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거다. 자칫 꽁트나 재미 위주의 메시지로만 그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차피 주제를 찾고 음미하는 것은 독자나 관객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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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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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다소 몽롱한,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슬픔을 교묘하게 감추고 사는 그녀의 주인공들을 사랑한다. 뭔가가 늘 부족한 그래서 아픈 그녀의 주인공들은 늘 외롭다. 나는 한강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의 신작을 무던히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이번에 신간된 [그대의 차가운 손]은 나오자 마자 구입을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강의 그 특유한 주인공들에게서 크게 변화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기존의 소설과는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딱히 뭐라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약간의 틈이 보였다고 할까.

한강의 소설은 잘 읽힌다. 묘한 분위기가 있는 그녀의 소설은 여타 다른소설과는 다른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소설도 성장과정에서 아픔이 있는 조각가인 주인공 남자와 감추고 싶은 신체적 비밀들을 간직한 그의 여자들과의 관계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감추고 싶은 아픔들을 드러내놓는 (전시적으로 보여지는) 조각으로 떠낸다는 설정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마지막부분에 그들 주인공들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나 조각가 남자의 여동생이 오빠가 단 한번밖에 보진 못한 작가 '나' 에게 오빠의 흔적들은 보여준다는 부분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강. 그녀는 내게 너무도 매력적인 소설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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