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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지음 / 살림 / 1990년 3월
평점 :
품절
2002년 5월 나는 그를 만났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만남의 시간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언젠가부터 나는 요절한 혹은 잊혀져간 시인들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지리산 등반도중 실족사한 고정희 시인을 비롯하여 기형도 시인 등 아까운 그들의 목숨이 보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죽기 전에 어떤 처절한 몸부림을 겪었을 그들의 마지막 흔적들이 더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산문집은 그의 습작노트를 비롯하여 그와 가깝게 지낸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그리고 기자로써 썼던 기사들 그리고 몇 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료였고, 유능한 기자였으며 유망한 소설가였다. 허나 그가 보고 느꼈을 시선들이 가 닿는 곳마다 아름답다기보다 어쩐지 무덥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자신의 나이보다 훌쩍 커버리게 만들었을까 그래서 그는 너무 성장하여 서둘러 가버린 건 아닌가. 이제 그가 짊어지고 힘겨워 했을 그 나이를 나는 한 발짝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어리숭하고 덜 자란 미련한 내게 그는 등대 같은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