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바스콘셀로스 지음 / 효리원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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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훗

개구쟁이, 말썽꾸러기, 제제. 밍기뉴. 그리고 포르투가 아저씨. 다른 사람들 역시 감동 깊게 읽었겠지만 늦은 가을날 오후 난 전철 안에서 한동안 책을 덮고 눈을 감아야 했다. 부끄러움으로 얼른 눈가를 훔치긴 했지만, 정에 메마른 내게 진한 감동을 준 책이었기에 감사했다. 제제의 어린이 같지 않은 행동과 생각들.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무 귀엽고 웃겨서 슬픈 책. 작은 제제가 구두통 가방을 든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슴속깊이 울컥하는 그리움. 혹은 아련함. 포르투가 아저씨의 따뜻함이 있었기에 제제는 잘 자랐을 것이다. 자신의 깊이에 스무 배는 넘을 것 같은 사람과의 친구라... 너무 부럽고 가슴아팠다.

내게도 밍기뉴같은 나무가 있다. 몇 년전 친구와의 사랑으로 함께 심은 나무다. 나보다 작았던 것이 어느새 내 키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 몇 달째 찾아가 보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난 이제 제제처럼 밍기뉴에게 이것저것 얘기하는 솔직한 아이가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훌쩍 커버렸기 때문이다. 주말엔 한번 찾아가 볼까한다.

잊혀진 것 들을 찾아주는 책. 내게도 그리움이라는 불을 밝힌 하나의 사건으로 이 책은 영원히 내 안에서 꿈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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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하나
고정희 지음 / 푸른숲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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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시인겸 교수님에게서 우연히 본 사진 한 장. 그 사진은 교수님과 함께 찍은 광대뼈가 튀어나온 짧은 머리에 섬머슴아 같은 여자와의 오래된 흑백사진이었다. <생전에 고정희시인과 함께>라는 제목 아래 놓인 사진을 난 한참 쳐다본다.

죽음. 어느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한 인간의 삶을 마감하는 일. 고되게 일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등한 그 수많은 날들 중 단 하루도 똑같지 않은 긴긴 날들을 마감하는 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든 그 삶은 나름대로의 고귀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물며 글을 쓰는 시인이라는 여자.

문득 이 여자가 궁금해졌다. 인터넷검색어로 찾은 것은 91년 지리산에서 실족사 했다는 것과 '고백' 이라는 시 하나였다. 나의 궁금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아 그녀의 사후 첫 시집과 함께 두 권의 시집을 구입했다.

<아름다운 사람하나> 빳빳한 표지 첫 장을 넘기자 당장이라도 후두둑 눈물을 쏟아낼 듯한 기묘한 표정에 그녀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괴고 있다. 슬픈 눈. 뭔가 질문을 던져놓고 진지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표정이다. 그녀의 행적은 다양했다. 특히 여권신장에 뚜렷한 기여를 했다는 것과 짧은 생을 보상하려는것 만큼 활발하고 많은 소속단체들.

그녀의 시는 신비롭고 야릇하다. 뭔가 홀린 듯 훌쩍 훌쩍 넘겨지는 책장들. 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다. 섬머슴아같은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시어들은 때론 강하고 때론 부드럽다. 잘 짜여진 삼베처럼 정갈하고 깔끔하다. 여리고 순수하다. 누군가를 갈망하고, 사랑하고, 고대하고, 그리워한다. 그 대상이 신이든 자연이든 사람이든 그것은 여느 여자가 한 대상을 두고 심한 열병을 앓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래저래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짧은 시지만 강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전보]라는 시와 쉽게 다루지 않는 잊혀진 것들에 대한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 그리고 [어머니의 나라]나, 남북의 분단을 주재로 한 [눈 내리는 새벽 숲에서 쓰는 편지]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시들이 많았다.

시에서 그녀는 어디든 항상 떠나간다. 특히 지리산의 봄(부제-뱀사골에서 쓴 편지)는 이 시집에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산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그녀. 시의 마지막 구절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라는 글귀가 괜시리 눈에 밟힌다.

이젠 그녀는 없고 그녀가 남긴 말처럼 어느 하나 눈물 없이 쓰여질 수 없었던 시편들만 남았다. 아픔의 글귀들. 그 글들이 가슴에 차곡차곡 들어와 앉는 느낌이다. 그녀의 낡은 사진을 보며, 이 여자의 슬픈 눈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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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걸작선
생 텍쥐페리 지음,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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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어린 왕자를 초년, 중년, 말년 세 번 읽으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지난 날 어린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한 부분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세 번씩이나 읽으라고 권할 수 있나. 참 한심한 사람들이군.'

이제 서른을 눈앞에 둔 나는 최근 책장에 꽂힌 <어린 왕자> 책을 펼쳐 본다. 지팡이(칼자루인가)를 짚고 남루한 긴 외투를 걸친 어린 왕자. 수 십 년을 이런 모습으로 서 있은 그가 다소 낯설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먼지를 한참 뒤집어 쓴 이 책을 다시 찾게 된 동기는 어느 잡지책에서 작가 생텍쥐페리의 관한 기사를 읽은 후였다.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기사는 단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글에 맺음부분에는 그가 어린 왕자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했다. 미지의 세계...

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 내가 그 보아뱀 그림을 보았다면 단연 모자라고 얘기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만큼. 그리고 쪼그려 앉아 숫자를 헤아리고 따지고 있다. 나는 몇 살인가, 돈은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책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한 줄 한 줄 놓치지 않고 읽은 모든 글들은 내게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분명 내가 초년시절에 힘겹게 읽다가 던져버린 글들이 아니었다. 나보다 앞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공감했을 그 얘기들로 난 오늘 새롭게 눈을 뜬다. 그리고 그들이 흘렸을 눈물의 의미도 함께 공유한다.

결국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할 나약한 존재라는 것. 작가는 그 깨달음을 모든 이에게 깊게 심어 주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얼마나 기대되고 신나는 일인가?

삶이 지루해지고 나태해지는 이십대 후반, 나는 요즘 해가 지는 것을 슬퍼할 만큼 복잡한 일들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나의 목마름에 단비와도 같은 어린 왕자는 어느새 내 곁에 있었음을 느낀다. 낡은 램프에서 알라딘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작가가 말한 대로 가끔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내 곁에 와 있다는 사실, 그를 본 사람은 자신에게 연락을 해 달라고 했던 작가에게 조용히 이야기한다. 저에게도 마음으로 보는 중요한 사람이 생겼어요.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지요. 그걸 어린 왕자는 몸소 시험하고 있었고, 작가 자신도 역시 증명이라도 하듯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쯤 작가는 어느 별에 앉아 장미꽃들이랑 담소를 나누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생각으로 깨달아 갈 것인가.

난 이 책을 덮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떠난 어린 왕자가 그리웠던 걸까. 아니면 행방불명된 작가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내가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이 이렇게 크고 힘들고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에서 지친 노숙자에게 힘겨워하는 연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들도 다시 뭔가를 다시 소중한 뭔가를 받게 되기를, 느끼게 되기를 그래서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며 창문을 열고 별 하나를 쳐다본다. 저렇게 수많은 별들 중에 나에게 길들여진 소중한 별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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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향기
서하진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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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낯선 이름 뒤에 [라벤더 향기]라는 상큼한 내음이 느껴진다. 요즘 소설책은 재미가 있다. 여성 독자들이 많이 공감하는 이루지 못하는 아픈 사랑이야기들. 분명 서하진의 소설은 공지영, 은희경, 신경숙, 김인숙, 한강과의 소설하고는 다르다.

여성작가들이 탈피하지 못하는 소재 '불륜'을 주로 이책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제 그녀의 소설 한 권을 겨우 읽은 독자인 나는 감히 이 소설에 대해 약간은 어설프고 확실한 보여주기가 없는 듯한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녀의 소설 소재들은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주변 이야기들이라 그닥 신선하지 못했다. 물론 소설 소재라는 것이 신선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무겁고 어두운 소재들과 내용인데 반해 그 내면에서 깊이 파헤쳐지지 못한 아쉬움이 들어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부분도 함께 지적하고 싶다.

호칭 부분에서도 [무월의 시간]은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언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고 [종소리]에서는 주인공을 이름없이 모두 '여자'와 '남자'로 불려지고 있어 어느 누구를 지칭하는지 애매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남자]나 [저만치 누군가가 보이네]등은 마무리가 덜 되어 있는 듯 어설펐고, [회전문]이나 [개양귀비][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남자][종소리]등 제목에 있어서도 그저 문장에 속해있는 단어들 중 고심없이 쉽게 정한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어쨌거나 작가는 흠을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남자]같은 경우 왜 하필 스케이트보드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의 실마리는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소설은 재미가 있다. 스피드가 있고 문체가 깔끔하다.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모든 어긋나는 주인공을 보여준 [기차가 지나는 마을]이나, 아픈 남자를 보살피며 지켜보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지켜보는 여자를 보여준 [무월의 시간]은 특히 심리묘사가 좋았던 것 같다.

그녀의 소설은 상처와 아픔들이 적절히 잘 섞여있다. 비정상적인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어설픈 주인공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삶의 이중성인지도 모르겠다. 겉으로 드러내놓지 않는 반전, 그래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작가의 큰 장점으로 보인다.

야구를 좋아하고 지루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서하진은 그 자체를 즐기고 자기화하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같다.

가벼운 말들로 작가에게 상처만 주지 않았나 모르겠다. 아무런 글도 쓰지 못하는 독자가 과욕을 부렸다고 가볍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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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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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그녀의 소설은 절망적이다. 행여 그 절망에 나 스스로가 흡수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회색적인 문체.

<검은 사슴>뿐만 아니라 그녀 소설 전부는 아직 미명이 오기를 스스로 외면한다. 전설 속의 검은 사슴은 햇빛이 보고프다. 자신의 뿔과 이빨 모두를 빼앗기고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쓰러지고 만다. 결국 아무데고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외로움. 항상 혼자 다닌다는 그 짐승의 눈이 나는 무척이나 보고 싶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갑갑함을 느꼈다. 이름도 모르는 지하 탄광굴속에 갇혀 숨이 막히도록 물이 차올라 오는 경험을 한 것처럼 나는 기진맥진하다. 인영과 명윤과 함께 나 또한 황곡행 기차를 올라타고 의선을 찾아 헤맸었고, 눈이 무릎까지 폭폭 쌓이는 적요속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폐가에 앉아 라이터 불에 연명하며 그들과 하룻밤을 지냈던 것 같이 몸이 뻐근하다. 책을 덮어서는 인영처럼 먼 여행에서 돌아온 피곤으로 눈이 감겼다.

인영과 의선, 명윤 그리고 장 그 외의 그들과 관계하는 가족들. 모두가 얽히고 섥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한다. 자신의 상처가 너무 커서 그럴 힘조차 그들에겐 부족하다. 함께가 아닌 그들은 철처히 외톨이였다 '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인영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자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외로웠던 것 뿐이라고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그들 모두는 한결같이 타협을 싫어했고 두려워했다.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소설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이 모든 어둠이 절망이 아쉬웠다. 조바심이 났다. 어디서 어떻게 꼬였는지 너무도 안타까웠다.

<검은 사슴>은 너무도 한강다운 그녀다운 소설이었던것 같다. 치밀하고 꼼꼼한 디테일과 탄탄한 구성이 단연 돋보였다. 어느 잡지책에서 보았던 눈매가 선한 여자 한강. 한참을 보아도 그녀의 미소는 어둡지않다. 차라리 눈이 부셨다. 그녀가 사진을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진과 관련된 문장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강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작가이다. 앞으로도 변함 없이 흐르는 물줄기처럼 한결같은 글쓰기를 독자로써 바라고 싶다. 나 또한 철저하게 외롭고 싶은 가을. 그녀의 다음 소설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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