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어린 왕자를 초년, 중년, 말년 세 번 읽으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지난 날 어린 나로써는 이해할 수 없는 한 부분으로 기억된다. '이렇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세 번씩이나 읽으라고 권할 수 있나. 참 한심한 사람들이군.'이제 서른을 눈앞에 둔 나는 최근 책장에 꽂힌 <어린 왕자> 책을 펼쳐 본다. 지팡이(칼자루인가)를 짚고 남루한 긴 외투를 걸친 어린 왕자. 수 십 년을 이런 모습으로 서 있은 그가 다소 낯설어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먼지를 한참 뒤집어 쓴 이 책을 다시 찾게 된 동기는 어느 잡지책에서 작가 생텍쥐페리의 관한 기사를 읽은 후였다.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기사는 단연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 글에 맺음부분에는 그가 어린 왕자를 찾아 미지의 세계로 떠났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고 했다. 미지의 세계...나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 내가 그 보아뱀 그림을 보았다면 단연 모자라고 얘기해도 전혀 개의치 않을 만큼. 그리고 쪼그려 앉아 숫자를 헤아리고 따지고 있다. 나는 몇 살인가, 돈은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책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한 줄 한 줄 놓치지 않고 읽은 모든 글들은 내게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분명 내가 초년시절에 힘겹게 읽다가 던져버린 글들이 아니었다. 나보다 앞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공감했을 그 얘기들로 난 오늘 새롭게 눈을 뜬다. 그리고 그들이 흘렸을 눈물의 의미도 함께 공유한다.결국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할 나약한 존재라는 것. 작가는 그 깨달음을 모든 이에게 깊게 심어 주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얼마나 기대되고 신나는 일인가?삶이 지루해지고 나태해지는 이십대 후반, 나는 요즘 해가 지는 것을 슬퍼할 만큼 복잡한 일들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나의 목마름에 단비와도 같은 어린 왕자는 어느새 내 곁에 있었음을 느낀다. 낡은 램프에서 알라딘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나는 작가가 말한 대로 가끔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내 곁에 와 있다는 사실, 그를 본 사람은 자신에게 연락을 해 달라고 했던 작가에게 조용히 이야기한다. 저에게도 마음으로 보는 중요한 사람이 생겼어요.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지요. 그걸 어린 왕자는 몸소 시험하고 있었고, 작가 자신도 역시 증명이라도 하듯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쯤 작가는 어느 별에 앉아 장미꽃들이랑 담소를 나누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또 얼마나 많은 생각으로 깨달아 갈 것인가.난 이 책을 덮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시 떠난 어린 왕자가 그리웠던 걸까. 아니면 행방불명된 작가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내가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이 이렇게 크고 힘들고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에서 지친 노숙자에게 힘겨워하는 연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들도 다시 뭔가를 다시 소중한 뭔가를 받게 되기를, 느끼게 되기를 그래서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라며 창문을 열고 별 하나를 쳐다본다. 저렇게 수많은 별들 중에 나에게 길들여진 소중한 별 하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