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制壓하는
  노고지리가 自由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의 말은 修訂되어야 한다.

  自由를 위해서
  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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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구조적 비평으로는 복잡한 현실 해명 못해
논쟁: 임지현(교수신문 353호)에 대한 재반론

2005년 05월 07일   조희연 성공회대 이메일 보내기

1987년 이후의 민주화의 길고 복잡한 여로와 우리 현실의 복합성을 생각할 때, ‘폭압과 저항의 도덕적 이원론’이나 ‘강제와 억압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악마론적 코드’를 성찰해야 한다는 임지현의 문제제기는 신선하다.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은 분명 중요한 문제제기이며 박정희시대, 더나아가 현단계 한국정치사회변동의 성격에 대한 논의지평을 확장하는 계기이다. 그동안 ‘역사비평’을 둘러싸고 대중독재론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근현대사를 둘러싼 중요한 쟁점들, 예컨대 박정희 독재 나아가 일반적인 지배에서의 강압과 동의의 관계, 헤게모니 구성에서의 폭력과 자발성의 관계, 근대권력의 한 형태로서의 파시즘의 복합성과 모순성, 한국에서의 지배의 전통과 박정희독재의 관계, 한국에서의 반공주의와 개발주의의 성격 및 그 헤게모니적 지위, 새마을운동에서의 자발성, 역사적 박정희와 현재적인 과거청산의 성격과 이에 대한 태도, 한국근현대 역사像의 재구성 과제 등이 제기됐다고 생각된다.

포스트독재담론 대 혁신 반독재 민주담론?

먼저 밝혀둬야 할 것은 대중독재론을 둘러싼 논쟁이 보수 대 진보의 논쟁으로 설정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나는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을 보수적 담론으로 폄하하고 싶지 않다. 굳이 얘기한다면, ‘포스트-구조주의 담론 지향’ 대 ‘혁신 구조주의 담론 지향’ 간의 논쟁, 혹은 ‘포스트-독재담론’ 대 ‘혁신 반독재 민주담론 지향’ 간의 논쟁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따른다. 임지현의 문제제기에서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재시대의 대중의 동의 문제, 탈민족주의적 성찰의 당위성, 박정희 독재 혹은 파시즘을 넘어서기 위한 근대성 자체의 질곡 등에 대해서 긍정하면서 섬세한 차이들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에 대한 단순 비판보다는, 기존의 반독재 분석프레임을 확장?재구성하는 방식을 통해서, 임지현이 제기하는 동의문제 등 현실의 복합성을 포괄할 것인가하는 ‘대안추구적인’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노력했다. 이것을 추후 ‘개발동원체제, 헤게모니, 복합적 주체화’라는 책에서 종합적으로 제출하기 위해 나름대로 작업하고 있다.

포스트 독재담론의 양가성

나는 임지현의 문제제기가 기존의 반독재 담론의 성찰과 혁신, 확장 혹은 ‘발본적 전환’의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점에서 의문점과 고민해야 할 지점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먼저 포스트 독재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독재론의 이론적 시선의 양가성이다. 임지현의 논리 속에서는, 독재와 반독재, 좌파와 우파가 공히 ‘악마론적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극복대상이다. 양자의 차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서술에서는, ‘좌파나 진보파는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좌파나 보수파의 이미지 그대로이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 임지현이 제기한 ‘혐의’라고 반론을 제기했고 이에 수긍하면서도 못내 해결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포스트-구조주의적 담론이 꼭 탈구조적 인식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부시와 빈 라덴, 나아가 박정희와 김일성을 공생관계로 보는 최근 그의 책 ‘적대적 공범자들’(대중독재론도 그 일부를 구성한다)가 내장하는 인식틀의 양가성에 대해서도, 나는 동일한 의문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정확히 구조적 시각이 결여돼 있다. 빈 라덴과 부시의 동일성에 대한 통찰력과 문제의식에 일정 측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현실의 복합성에 대한 탈구조화된 비평만을 제공할 수 있다. 

대중독재와 탈민족주의

그런데 여기서 임지현은 더 나가는 지점이 있다. 그는 주권독재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독재가 가능하게 된 근대성의 태반 자체를 넘어서기 위해, 민족주의와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탈민족주의적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나아가 그는 조희연, 이병천, 박태균 등의 비판이 근대의 가치에 집착하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나는 탈민족주의적 지향 자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다. 단지 탈민족주의 혹은 탈국가주의라는 선험적 기준을 절대화하면서 독재나 반독재나, 보수나 진보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동일하고 그런 점에서 동일한 극복대상이라는 식의 설정에 대해 반대한다. 이런 점에서 탈민족주의와 탈국가주의적 지향을 공유하면서도, 현재의 민족주의적 국가주의적 프레임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즉 근대성의 틀 내에서 작동하고 있는 진보적 잠재력을 급진적으로 확장하고, 동시에 이른바 포스트-근대적인 지구화의 과정이 몰고 오는 ‘국민국가의 상대화’ 효과를 목적의식적으로 확장하면서 국경을 넘는 다양한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을 강화해야 한다.

첫째, 나는 근대성의 틀 내에서 존재하는 여러 진보적 잠재력 중엔 근대독재권력의 내적 모순, 즉 ‘국가와 민족을 매개로 추동되는 집단성과 근대성 시민성 간의 모순’ 같은 것도 지적했다. 물론 이는 임지현이 비판하는 바와 같은, 근대적 시민주체를 절대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와 관련해, 국민국가적 경계를 넘는 아래로부터의 역동성은 반세계화 운동 속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 반전활동가들의 ‘국적포기’ 언급 속에서, 많은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다양한 시민사회의 활동, 외국인노동자의 탄압반대운동이나 노동의 초국경적인 이동권 운동 등에서도 이미 진전되고 있다. 현단계 사회진보는 민족주의적 국지화 전략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국경을 넘는 지구화는 분명 여권, 비자 등으로 상징되는 국민국가의 권력을 이미 상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의 이동은 합법의 영역에 속하지만, 자본이 요구하지 않는 민중의 자발적인 초국경적 이동은 여권 및 비자 등으로 상징되는 국민국가의 제도적 형태에 의해서 통제받는다. 이것은 근대성의 형평의 원리에서 보더라도 모순적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성의 적극적 측면들을 급진적으로 확장하고, 현재의 지구화를 포함해 포스트근대적 흐름들이 갖는 잠재적인 근대국민국가의 상대화 효과를 급진화하는 이론적?실천적 노력들을 통해서, 포스트 근대의 흐름을 형성해 내야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국민국가의 질곡을 넘어서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네그리가 지적하는 대로, 기존의 민족국가적 주권을 대체해가고 있는 ‘제국적 주권형태’의 아래로부터의 극복을 통해서 비로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정희독재는 폭압적이었으며 불안정했다 "


다음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이상의 이론적 논의를 넘어서서, 박정희 독재의 총체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는 기존에 간과됐던 박정희 독재에 대한 대중의 동의-사실 이는 우리 현실의 중요한 측면이다-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쟁점화하는 건 파시즘의 헤게모니에 대한 과잉인식이나 과소인식이 아니라, 바로 파시즘의 헤게모니의 진정한 자리다. 이 점에 대해서 임지현은 명확히 정의하진 않는다. 대중의 동의가 있었다고만 말할 뿐이다. 나는 박정희독재는 ‘반공주의적, 개발주의적 동원’의 일정한 성공으로 동의와 헤게모니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으며 후반으로 갈수록 폭압이 전면화되고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붕괴한 체제‘였다고 생각한다. 18년 동안의 반절 이상의 해에 계엄과 위수령, 긴급조치로 ’연명‘한 체제다. 이런 점에서 총체적인 규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동의가 연구되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 독재의 헤게모니의 보편적 사례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독재와 관련한 파시즘의 유형론과 특수성을 강조한 것은 파시즘적 일반성을 박정희 독재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않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나아가서 박정희독재는, 파시즘의 정점으로서의 천황제가 엄존하는 일본이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아니라 패전에 의해 승전국에 의해 과거청산의 프레임이 주어진 독일의 파시즘에서 볼 수 없는 ‘대중독재적 헤게모니’가 균열되는 보다 전형적인 사례로 파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와 관련, 우리의 역사적 경험의 ‘진보적 긍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우리의 현실이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독재의 ‘헤게모니’가 아니라 독재의 ‘헤게모니의 균열’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본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경험의 진보적 긍정은 또다른 점에서도 표출될 수 있다. 독재의 유산과 관련해, 한국의 독재극복과 과거청산을-불철저하지만-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자는 견해도 갖고 있다. 남아프키라의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예가 거론되지만 그것은 대단히 타협적인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과거청산이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성찰적 과거청산과 제도적 과거청산의 관계


박정희는 단순히 역사적 쟁점만이 아니라 현재적 쟁점이기도 하다. 현재적 과거청산 문제와 관련해 나는 몇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성찰적 과거청산-나는 임지현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개념화한다-은 철저한 제도적 과거청산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철저한 과거청산 위에서 비로서 가능하거나 병행돼야 하는 것이다. 임지현이 느끼는 현재의 제도적 과거청산의 문제점은, 통상적인 보수적 비판과 달리, 아래로부터의 과거청산 요구와 제도적 과거청산-국가가 주도하는-의 괴리, 거기에서 제기되는 딜레마로 이해하고 싶다. 즉 제도적 과거청산이 ‘공적 기억의 민주화’를 수반하지만 ‘기억의 국가화’가 갖는 딜레마를 안게 된다는 점이다. 성찰적 과거청산을 위해 임지현이 제기하는 ’죄의식‘에 대한 논의도 이것과 대립될 필요는 없다.


글을 마치면서, 대중독재론을 둘러싼 논쟁이 임지현과 그 연구그룹의 신선한 노력들을 폄하하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이러한 논쟁 자체가 반독재담론의 성찰적 확장의 계기로, 대중독재론의 정치한 이론화와 세계적인 이론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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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조희연, 박태균, 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
"왜 근대적 가치를 놓지 못하는가"

2005년 04월 26일   임지현 한양대 이메일 보내기

임지현 / 한양대·서양사

지난 가을의 일로 기억된다. 한 경제신문사의 정치부 기자가 전화를 했다. 그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들과 점심이나 같이 하면서 과거청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치권을 비롯해서 사회 전체가 과거 문제로 시끄러우니, 정치부 기자들도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식견을 갖추어야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부장을 비롯해서 진보적 정치성향을 지닌 젊은 기자들은 일단 ‘열린우리당’이 주도하는 과거청산의 방식을 지지하는 듯이 보였다. 나쁜 과거는 청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나는 물론이라고 답했다. ‘소득 20000달러 시대를 열자’라는 구호가 인쇄된 그들의 명함을 보면서 나는 다시 답했다. 바로 이러한 구호를 믿고 외치는 집단심성을 극복하지 않는 한, 유신독재의 망령은 우리의 머리 위에 배회하고 있다고. 그래서 과거청산은 생각보다 복잡한 것이라고. ‘행복지수’가 아니라 ‘국민총생산’이나 ‘일인당 국민소득’이 삶의 질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는 사고방식이야말로 개발독재의 헤게모니가 민주화된 한국 사회의 물밑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대중독재’가 함축하는 기억의 정치학은 이처럼 정치적 민주주의의 이면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포스트파시즘의 헤게모니를 겨냥한다. 

1. 실사구시: 유신체제의 역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박태균의 지적은 극히 온당하다. ‘대중독재’ 패러다임은 악마적 지배권력 대 선량한 민중이라는 단순한 이항대립의 회로판에 근대 권력의 복합적 현실을 가두어버리는 ‘악마론’(demonology)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북한의 김일성체제와 동유럽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보수 우파의 시선이나 나치즘과 남한의 유신독재에 대한 전통 좌파의 관점은 모두 이러한 악마론을 내포한다.


‘대중독재’는 이처럼 냉전의 정치적 진영의 관점에서 우파독재와 좌파독재를 각각 강제와 억압의 단순논리에 꿰어 맞추는 냉전논리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1990년대 이후 나치즘과 파시즘,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스탈린주의에 대해서 ‘대중독재’의 패러다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증적 연구가 적지 않게 축적되었고 또 진행 중이지만, 김일성체제와 유신체제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냉전논리에 포박되어 있는 실정이다. ‘대중독재’의 문제제기가 남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한 냉전시대의 악마론에서 벗어나 실사구시의 연구를 향한 출발점이 된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

2. 강제와 동의/지배와 저항: ‘(자신이) 독재의 균열적 측면과 저항적 측면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대중독재론은 대중의 동의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는 조희연의 비판은 여전히 그가 강제와 동의/지배와 저항을 이분법적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물론 논쟁의 진행과정에서 강제와 억압의 일면적 분석을 비판하고 기존의 좌파 분석들이 간과하고 있는 동의의 지점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인상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중독재의 역사적 현실에서 양자는 상호 배타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침투되어 있는 복합적 관계를 구성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대중이 권력에게 보내는 갈채와 동의의 다양한 양상들을 드러내고 해체하여 ‘복수화’할 때 오히려 지지와 동의 속에 잠재된 저항이 드러나는 것이다. 대중독재론이 기존의 시각에 대한 반동으로 정반대의 시점으로 이동하여 데펠리체의 ‘반-반파시즘’적 시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조희연의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지적처럼 독재의 과거에 대한 ‘과잉과거청산’을 도모한다는 ‘대중독재’론을 데펠리체의 네오파시즘 정당화 논리와 연결시킨다면 그야말로 정치적 혐의에 기초한 오독이 아닌가 한다.

3. 헤게모니의 과잉/과소 인식: 조희연은 또한 파시스트 헤게모니를 과장 인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한다. ‘대중독재’론이 ‘자발적 동원체제의 구축을 대단히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독재의 동의적 기반을 추출하는 연구’로 나아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파시스트 헤게모니의 크기를 계량화하거나 질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며, 현재의 연구수준으로는 검증 불가능한 문제이다. 다양한 방법론의 개발은 물론 그 방법론에 따라 간과되어 왔던 자료들을 재점검하는 등 그야말로 실사구시의 연구가 상당히 축적되어야만 어느 정도 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나 만약 ‘과장’이라고 해도, 그래서 위험하거나 문제라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조희연이 역설하는 좌파적 실천의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나는 파시즘의 헤게모니에 대한 ‘과소 인식’이 ‘과장 인식’보다 더 위험하다고 본다. ‘과소 인식’이 지적 혹은 도덕적 자기 위안을 준다면, ‘과장 인식’은 더 깊이 있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민주화로의 진전을 생각할 때, 포스트 파시즘의 헤게모니에 대한 경각심은 지나침이 모자람보다 나은 것이다. 의도적으로 과장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훗날 연구가 축적되어 비교적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때, 나도 차라리 내가 과장했고 틀렸다면 마음이 편하겠다.              

4. 파시즘의 보편성과 유신독재의 특수성: 논쟁이 경과하면서, 대중독재에 대한 비판자들도 나치즘과 파시즘의 경우 대중의 지지와 동의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부터 타협적 순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졌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유신체제에 대한 ‘대중독재’ 패러다임의 적용 가능성에 이르면, 한국사의 특수성이라는 방패가 등장한다. 조희연의 경우, 유럽의 파시즘을 보편논리로 일반화하고 그것을 한국 파시즘에 그대로 적용하는 ‘종속적 지적 경로’에 대한 우려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나 보편과 특수의 관계에서 한국사의 특수성을 이야기할 때, 그 밑에는 유럽의 파시즘 경험을 ‘보편’으로 상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종으로서의 파시즘’(generic fascism)이라는 우산 아래 파시즘을 유형화하고 한국사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접근방식은 조희연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유럽의 고유한 역사현상으로서의 파시즘을 보편으로 설정하고 거기에 한국의 독재체제를 견주어보는 ‘종속적 지적 경로’를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널리 사용되는 파시즘 대신 ‘대중독재’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 것은 ‘밑으로부터의 독재’라는 20세기 독재의 성격을 제시한다는 의도도 있지만, 파시즘이라는 용어 속에 내포될 수밖에 없는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다는 의도도 있는 것이다. 좌파 독재와 우파 독재를 동시에 겪은 한반도의 지식인으로서 20세기 독재에 대한 나름대로의 패러다임을 세계학계에 제시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학문적 자존심도 한 켠에서는 작용하고 있다.


‘대중독재’론은 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유신체제 등 각각의 독재체제가 갖는 ‘개별성’(singularity)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특정한 역사적 경험을 보편으로 설정하는 대신 이들 ‘개별성’들이 맺고 있는 역사적/논리적 관계 속에서 보편을 설정한다는 시도이다. 이 점에서 ‘외세’를 고려하자는 박태균의 제안은 더 확장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 보수주의와 리버럴리즘의 갈등, 냉전적 국제질서 등의 매트릭스 속에 각국의 독재체제를 배치함으로써, 그 연관관계 속에서 ‘대중독재’의 보편성을 드러내자는 것이다. 전통적인 비교사의 차원을 넘어 ‘교차된 역사’(histoire crois?e)로서의 ‘대중독재’를 살펴볼 때, 보편과 특수의 이분법은 해소된다.

5. 근대와 탈근대: ‘대중독재’의 시선은 근대의 담 밖을 향해 있다. 공동연구서인 <<대중독재: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2004)에 대한 서평에서 장문석이 날카롭게 반문했듯이, 자명한 것으로 전제해 온 ‘대중독재’와 ‘대중민주주의’의 간격에 대해서 의심하는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근대 국가체제의 형성이라는 긴 호흡으로 20세기 독재를 파악하려는 그것은 파시즘 혹은 ‘대중독재’를 볼모삼아 반사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해온 자유민주주의 혹은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주권독재’론에 대한 이병천의 독해방식이나 9/11 이후의 미국사회야말로 ‘대중독재’라는 이거스(Georg Iggers)의 반응이 반가운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근대를 넘어서는 시선에서 볼 때, ‘국가와 민족을 매개로 추동되는 집단적 주체와 근대적 시민성간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속에서 헤게모니의 균열을 찾으려는 조희연의 시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조희연은 전자를 ‘온전치 못한 근대적 주체’로 간주하고 이념형으로서의 근대적 시민주체를 이상화함으로써 유럽의 시민 혁명적 길을 보편적 진보로 설정하는 시각을 드러낸다. 이 관점에서는 근대의 자율적인 시민주체라는 이념형에 맞지 않는 대중은 단순히 ‘지배의 피해자’로 간주할 뿐 ‘지배의 주체’라는 성격이 사상된다. 이에 비해 ‘대중독재’는 근대 국가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만들어진 혹은 호명된 주체로서의 근대 주체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가다듬고자 노력한다.


근대를 넘어서는 관점에 서면, 주권독재가 함축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식민지 근대화론과 접목되는 데 대한 이병천의 비판도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근대화론이냐 수탈론이냐’가 아니라, 그러한 역사적 평가의 밑바닥에 근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전제되었는가의 여부이다. 제국주의가 근대를 이식했다는 근대화론의 주장에 대한 수탈론자들의 반발은 그들이 ‘근대=보편진보’라는 등식을 은연중에 전제하기 때문이다. 식민주의가 ‘좋은 근대’를 가져왔을리 만무하며,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식민주의를 정당화한다는 논리의 연쇄가 작동하는 것이다. 


물론 근대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지 않을 때,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빠진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이병천의 비판은 오히려 그가 자본주의적 근대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같은 맥락에서 이병천은 마루야마 마사오를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근대 국민국가의 틀에 갇혀 파시즘을 볼모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긍정하는 마사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근대를 넘어서는 관점에서 ‘대중독재’의 근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곧 독재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읽혀져서는 곤란하다.

6. 아렌트와 과거청산: 과거청산에 대한 한국 사회의 논의에서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역사적 담론이 자꾸 사법적 담론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내 주장의 핵심은 식민지 혹은 독재의 과거를 처절하게 응시하고 넘어서는 노력이 인적/법적 청산으로 축소되거나 환원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과거 청산에 대한 논의는 권력 핵심이나 그 주변에서 범죄적 행위를 저지른 소수에 대한 사법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러한 차원의 사법적 정의 실현이 의미가 없다거나 또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적 차원의 유죄(legal culpability) 밖에 놓여 있는 ‘죄의식’(sense of guilt)에 대한 논의가 배제되는 한, 과거를 성찰하는 힘은 약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배의 피해자가 아닌 지배의 주체로서의 대중을 상정한다면, ‘죄의식’에 대한 논의는 법적 청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악의 평범성’ 테제에서 아렌트가 강조한 것은 관료제의 톱니바퀴로서 ‘책상 앞의 살인자’인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의 범죄자들은 물론 수동적 동조자들조차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나 개인적 책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정치적 사려 없음’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아렌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집단적 대의를 위해 주체의 다양성을 던져버리는 대중의 집단심리이다. 아렌트가 프로이트와 만나는 지점도 이곳인데, 자기 안의 다양한 하위주체들 간의 갈등과 긴장을 무시하고 국가나 민족 같은 집단적 주체로 호명된 근대적 개인주체의 ‘사려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훗날 바우만(Zygmunt Bauman)의 ‘악의 합리성’ 테제로 이어지는 그것은 홀로코스트를 독일의 특수성이나 전통에서 구하는 대신 서구의 정치적 근대성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다.


이병천의 아렌트 독해와는 맥락이 다른 것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의 속죄양적 처형이 ‘희생의 제의’에 참가한 많은 독일인들의 죄의식을 탕감하는 계기로 작동할까 두려워 한 마틴 부버(Martin Buber)에 대한 아렌트의 지적이나 법정에서 처리할 수 없는 개개인의 양심과 죄의식은 어떻게 물을 것인가라고 책 말미에서 던진 아렌트의 고민은 역사 담론이 사법적 담론으로 환원되어서는 곤란하다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아이히만 재판 보고서가 출판되자 아렌트는 미국의 시오니스트 유대인의 공적(公敵) 1호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렌트의 책은 아직까지 한 권도 히브리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왜일까? 일차적으로는 희생자와 가해자를 동일시한다는 오해 때문이다. 아마도 더 큰 이유는 아렌트가 순수 악과 순수 선의 이분법을 무너뜨리고 현실의 복합성과 양면성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렌트의 시선은 시오니즘의 또 다른 의미에서의 ‘정치적 사려 없음’에 대한 비판을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 ‘지상의 거처’에 대한 이병천의 근원적인 물음은 참으로 소중하다. 소중하고 중요한 만큼 확신에 찬 답을 내놓기가 두렵기만 하다. 또 아직까지는 확신도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근대 국가체제의 틀 속에 포박되어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킬 때, 21세기의 정치적 삶이나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국가를 비판한다고 해서, 당장 현존하는 국가체제가 무너지리라고 생각할 만큼 순진하지는 않다. 다만 현재의 국민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계발할 때, 미래지향적 대안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는 있다. 대안은 비판적 상상력을 공유하는 동시대인들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 논쟁이 그것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면 좋겠다.


이병천이 들은 바대로, ‘대중독재’ 연구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갈 길이 멀다. 패러다임을 가다듬는 이론적 작업과 실사구시의 실증적 작업이 산처럼 쌓여 있다. 작년에 출간된 1권에 이어 ‘대중독재’와 정치종교로서의 인종주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를 다룬 책과 헤게모니적 기제로서의 영웅 만들기에 대한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다. 또 6월에는 ‘mass dictatorship between desire and delusion'이라는 제목아래 ‘일상사’에 초점을 맞춘 3차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3차 대회는 헤게모니의 균열과 그 틈새를 뚫고 나타나는 다양한 저항의 지점들에 대한 학문적 모색을 겨냥한다.


이렇게 1단계 연구가 마무리되면, ‘대중독재와 젠더정치’, ‘대중독재와 모더니티’, ‘대중독재와 기억의 사회문화사’라는 주제 아래 3년에 걸친 2 단계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대중독재’ 패러다임의 진화와 발전을 위해 귀중한 논평을 해준 세 분의 연구자들께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날카로운 비판을 부탁드리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필자는 민족주의에 대한 국내의 가장 강력한 비판가로 활동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저서의 출간 이후로 ‘우리 안의 파시즘’, ‘대중독재-강제와 동의 사이에서’ 등으로 탈민족시대를 주장하고 그 구체적 방안으로 국사에서 국경을 없애자는 것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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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임지현 교수의 '대중독재론'을 비판한다
기억의 정치 결여...대중은 무엇을 박탈당했는가

2005년 03월 30일   이병천 강원대 이메일 보내기

쟁점

임지현

이병천

과거청산 파시즘의 역사적 청산과 극복문제는 인적, 법적, 정치적 청산 이상의 것이다. 임지현식 과거청산은 역사속의 특정한 행위에 수반되는 특정한 책임을 가볍게 취급함으로써 공적·정치적 반성과 ‘기억의 정치’가 결여됐다.
대중독재 박정희 개발독재는 권력이 대중을 획득한 ‘대중독재’ 개념에서 접근가능. 박정희 개발독재의 불안정성과 균열적 동학을 포착하기엔 너무 옅고 추상적.
탈민족담론 민족주의의 공범 관계를 해체시키자, 국사를 해체하자, 국사의 신화를 넘자. 오늘날 시민적 진보는 세계시민주의 입장에서 서지만, 그 경계를 무정부주의적으로 해체해선 안된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 같진 않다. 한때 민주주의 이행이후 ‘공고화’ 논의가 무성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린 무늬만의 민주주의, 사회경제적 내용이 텅빈, 허울뿐인 민주주의를 실감하고 있다. 1987~97년 ‘잃어버린 10년’의 헛돌아간 민주주의 시절을 보낸 이후 우리는 1원 1표의 ‘돈의 등가’ 원칙을 세우려는 로크적 시장 민주주의에 붙들렸다. 자유방임 근본주의자들은 현 정부에 대해 ‘평등주의 함정’에 빠졌다느니 요란하게 떠들며 한국 경제의 곤경을 그 때문이라고 몰아 부친다. 자신들이 앉은 자리를 세상의 중심으로 놓고 보면 그렇게 비칠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자리는 저 낡은 오른쪽 구석이다.


그렇지만 현정부를 단지 약체다, 실패했다고만 보는 견해에도 빠진 것이 있다.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인식에서 요구되는 것은 양극화-저복지 속의 시장 민주주의 길을 탈개발독재의 신동원체제, 모순에 찬 ‘신자유주의 수동혁명’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 그 ‘성공’ 가능성과 균열적 위기 요인을 파헤치는 것, 그리하여 이 ‘균열적 수동혁명’의 지배적 동의를 반전시킬 수 있는 사회통합적 시민한국의 대항 헤게모니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다.

균열적 수동혁명의 대항 헤게모니는 어디에


수동혁명은 역사가 길다. 독재의 얼굴은 민주주의보다 더 복잡할지 모른다. 파시즘, 스탈린주의를 비롯해 20세기를 장식한 세계의 다양한 독재 형태들을 단지 강제와 억압으로만 보는 건 일면적이다. 대중독재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한국의 박정희 독재 역시 그렇다. 권력과 지배의 현상을 강제와 동의의 복합으로 봐야 한다는 임지현의 생각은 오랜 계보를 갖고 있으며, 그 자체는 결코 새로운 인식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그람시와 프랑크푸르트 학파, 그리고 푸코 등의 연장선상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 내용을 봐도 많은 부분 그렇게 읽힌다. 그렇지만 그의 작업을 단지 이들의 역사적 적용과 확대로만 보는 것은 부당한 평가 절하가 될수 있고 다른 한편 쟁점 유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임지현의 글을 읽으면서 우선 걸린 대목은 과거청산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다. 파시즘의 역사적 청산과 극복 문제가 인적, 법적, 정치적 청산 이상의 문제라는 그의 견해에 나는 완전히 동의한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문화적·정치적 공동성의 형성과 삶의 양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박정희 개발 독재와 관련해 이 지점을 잘 짚은 사람은 진중권일 것이다. 그는 박정희 체제를 한국인의 몸과 정신세계에 깊이 새겨져 있고 그 인성 구조를 바꾼, 파시스트적- 광의의-생체권력으로 파악했고, 그 때문에 독재자는 죽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죽은 독재자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진중권은 누구보다 법적, 정치적 청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임지현에게서 인적, 법적, 정치적 청산의 중요성은 뒷켠으로 밀린다. 심지어 모두에 책임이 있으니 아무도 법정에 세울 수 없고, 인적 청산 방식은 다수 구성원에 면죄부를 부여하고 진정한 역사적 청산을 가로 막는다는 식의 논변까지 편다. 동의하기 어려운 이분법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과 대중의 ‘정치적 無思慮’’에 대해 갈파한 바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인적, 법적, 정치적 청산을 경시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누구보다 공적 정의의 구현을 요구하면서 상처의 치유를 호소했다. 어디보다 공적 과거청산의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왜 이를 주변화하려고 하는가.


임지현식 과거청산은 역사 속의 특정한 행위에 수반되는 특정한 책임의 문제를 가볍게 취급함으로써 공적, 정치적 반성과 ‘기억의 정치’가 결여된, 나르시시즘적 자기안의 반성에 갇힐 소지가 있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논리는 무책임의 논리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임지현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개발독재’ 현상과 씨름하면서 그 역사적, 이론적 함축을 끌어 내려고 노력해온 편이다. 그런데 그는 개발독재가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과 이른바 ‘대중독재’로서 공유하는 공통점, 권력이 대중을 획득하는 공통된 헤게모니적 능력에 주목한다. 반면 ‘대중독재’는 그람시의 ‘수동혁명’의 다른 표현으로 볼 수도 있겠는데, 내 경우는 수동혁명의 특수한 형태들, 그 한 형태로서 한국의 개발독재와 개발 자본주의, 그리고 그 모순적, 다중적 복합성과 균열상에 주목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대중독재의 일반성을 추출하는 방식은 물론 강점도 갖지만, 박정희 개발독재의 불안정성과 균열적 동학, 그리하여 그 역사적 실체를 포착하는 데는 너무 옅고 추상적이다. 이 약점은 이전에 5월 광주와 신군부독재 현상에 대한 문부식의 해석에서 크게  부각된 바 있는데, 임지현의 견해는 문부식과는 얼마나 달라질까.


연구사의 계보학으로 말해 보자면 파시즘과 관련해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파시즘은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파시즘 ‘혁명’을 갖지는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파시즘의 아래로부터의 요소는 해당 나라의 민주주의의 강도에 의해 규정되며, 민주주의 혁명을 거치지 않은 곳에서는 전형적인 파시즘 운동의 아래로부터의 성장이 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또 제솝같은 사람은 그람시와 풀란차스를 이어받아 한 국민 헤게모니 프로젝트와 두 국민 프로젝트, 나아가 두 국민 프로젝트의 이행적 사례로부터 수동혁명의 정상적 형태, 그리고 강제, 기만, 매수를 사용하는 수동혁명과 기동전 사이의 이행적 형태들을 구분할 것을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의 견해도 논란이 많지만, 한국의 개발 독재를 해명하는 데 유익한 함축을 제공함은 분명하다.

‘주권독재론’으로 ‘수동혁명론’ 넘어섰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라는 임지현의 탈민족담론이야말로 가장 논쟁적인 장소일 것이다. 그의 작업이 갖는 양가성, 해방성과 해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도 바로 여기다. 대중독재론은 국민국가 및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합류해 주권독재론으로 발전된다. 나아가 주권독재론은 국민 주권만이 아니라 인민주권과 대중 민주주의조차 그 억압적 반대물로 전락하게 되는 함정에 대해서 비판한다.


나는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은 주권독재론을 제기함으로써 비로소 그람시 등 기존의 수동혁명론의 시야를 넘어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족주의가 억압의 감옥이 되는 그만큼 그의 주장 또한 크다란 해방 담론의 성격을 갖는다. 적어도 우리 학계에서 임지현만큼 심도있게 민족주의의 억압성 문제를 밀고 나간 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냉전극우독재와 대결해 온 한국의 민주주의, 민중적 민족주의 사상과 계몽의 틀이 우리시대 진보와 민족주의와의 모순적 긴장 관계를 깊이 숙고해 오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큰 기여라 할 것이다. 나의 가까운 분야로 말하자면 박현채의 민족경제론도 국민국가의 틀안에 갇혔다. 1987년이후 약진한 한국 시민운동의 이념조차 얼마나 동원의 논리를 잘 넘어서고 있는 지 의문이 간다.

발붙일 공동체 터전 제시 못해


그런데 임지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갖게 된 의문은 그러면 우리가 더불어 딛고 지키면서 가꾸어야 할 터전, 공동의 세계는 어딜까 하는 것이다. 임지현은 말한다: 민족주의의 공범 관계를 해체시키자, 국사를 해체하자, 국사의 신화를 넘자고. 좋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이 인권을 근본적으로 상실하는 것은 개개의 권리를 상실한 때가 아니라, 바로 세계 속에서 거처를 상실한 때이다. 이 지상의 거처에 의해서만 인간은 개개의 권리들을 가질 수 있으며, 이 거처만이 인간의 의견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하고 행동이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제권리의 권리’라 할 ‘지상의 거처’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정치공동체, 다시 말해 공동의 시민세계, 자유-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차이와 다양성이 겹쳐진 ‘다중-시민’의 성찰적 소통과 표현의 세계다. 그리고 오늘날 시민적 진보는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경계를 관통하는 세계시민주의와 동아시아 시민연대의 입장에 서면서도 그 경계를 무정부주의적으로 해체시키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 ‘노마드’가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트랜스내셔널, 트랜스모던(trans-national, trans-mordern)을 지향하는 경계관통적인, 탈식민적 시민 민주주의의 기획은 경계의 개방적 존속에 따른 역사적 딜레마와 고통을 안고 가면서, 시민세계로 열린 국가형태의 탈구축을 포함하는 다중 시민화의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가 필자가 임지현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나는 그가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동아시아 연대를 이루자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자와 손잡고 가는 데 대해 납득하지 못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자와의 탈민족 동아시아 연대는 과연 어떤 내용을 가질까. 그의 이같은 발걸음은 대중독재론과 주권 독재론 자체에 내재된 허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그의 대중독재론에는 대중이 권력에 의해 박탈당한 자유와 주체성의 진수가 과연 무엇인지가 ‘X파일’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연구가 아직 진행 중에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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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역사비평’의 임지현-조희연 논쟁에 부쳐
'대중독재와 ‘外勢’의 관계 중요...실증 없어 주장만 대립

2005년 03월 22일   박태균 서울대 이메일 보내기

▲박태균 / 서울대·한국사 ©
최근 ‘역사비평’에서 제기되고 있는 논쟁은 임지현이 중심이 된 ‘대중독재론’에 의해서 파생되었다. ‘대중독재론’에서는 박정희 체제를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의해서 평가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 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던 다양한 양태의 역사적 현실들에 접근해 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대중독재론’은 박정희 체제를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박정희 체제에 대한 연구에 ‘선’과 ‘악’이라고 하는 주관적 평가가 개입됨으로써 박정희 체제가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현실이 간과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민주화 운동의 관점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성장의 관점이 그 기준이 되었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학술 연구의 장에서 ‘그렇다면 당신은 박정희를 지지하느냐, 아니면 싫어하느냐’라는 정치적인 질문이 횡행했던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중독재론’은 그 동안 이론적인 틀과 함께 한국역사의 보편화에 소홀했던 역사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 기존의 현대사 연구가 실증적인 방법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한국사의 특수성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한국 현대사를 보다 광의의 시각에서 비교론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파시즘에 대한 세계적인 학문조류를 한국현대사에 대입했다는 점은 한국사를 세계적 학문의 장에서 논의할 수 있는 기초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희연의 비판 역시 주목할 만한 많은 대목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조희연의 통렬한 비판, ‘대중독재론’이 “파시즘 비판의 확장이 아니라 파시즘 정당화 논리의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는 점은 현하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국사교과서 모임이나 ‘뉴 라이트’ 운동 등을 통해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독해방식에 대해 저자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 단순하게 합리화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점이 임지현의 ‘대중독재론’이 갖고 있는 객관성과 진보성을 훼손하고 있다.


또한 박정희 체제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에 의해서 스스로 ‘저항’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조희연의 분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경제적 근대화가 정치적, 사회적 근대화를 동반하고 있지 못함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저항, 경제적 근대화로 인해서 나타나는 계급적 양극화 현상 등이 결국 ‘모순적 복합성’이라는 체제 자체의 성격으로부터 잉태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조희연은 복합성이라는 규정 속에서 대중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이 녹아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이 이전보다 한 단계 진전된 내용을 갖고 있지만,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짚지 못하고 있다. 첫째로 박정희 체제의 역사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박정희 체제는 단지 몇 년 동안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걸쳐 있었다. 세계사적으로 개발의 시대에서 데땅트의 시대로, 그리고 다시 신냉전의 시대로 전환되는 지점에 있었다. 다양한 변화를 겪었던 시기를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를 하나의 이론이나 틀로서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나 몰역사적인 분석이 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체제라는 것이 하나의 정형화된 틀이 아닌 이상 20여년의 시기 동안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적 차원에서 최소한의 근대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유신체제 사이에서는 커다란 ‘틈’이 존재하고 있으며, 군사쿠데타 초기에 내세웠던 민족주의와 1970년대 이순신을 통해서 부활한 민족주의 사이에서도 질적인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둘째로 박정희 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축으로서 ‘외세’의 문제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점이 서구나 일본의 파시즘 체제와 박정희 체제 사이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외세’의 문제는 단지 박정희 체제에 대한 물적인 뒷받침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연성 권력(soft power)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근대화’ 논리는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박정희 체제가 스스로 들고 나왔던 ‘민족주의’의 슬로건을 한일협정을 통해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1970년대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다시 부활시켰던 사실은 ‘외세’의 문제가 단지 변수의 하나로서만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박정희 체제에 대한 논쟁의 전제는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논쟁이 모두 이론적인 측면, 그리고 표피적인 분석에 치중되어 있는 만큼 실제 당시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현재 전개되고 있는 끊임없이 논쟁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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