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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 죽음이 물었다 ♤
연말이 가까워지니 뭔가를 잘 마무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한 해의 마무리가 이럴진대 인생의 마무리인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까?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인 아나 클라우디아 아란치스가 쓴 책 <죽음이 물었다>는 저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의사로서 돌보며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느낀 성찰과 깨달음을 전하는 내용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는 과정에서 죽음이 공포와 불안을 넘어 자연스러운 여행의 마침이라는 본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며,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공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12월 중순,
끝을 향해 가지만 또한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즈음 읽으면 좋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난 이 책 <죽음에게 물었다>를 1순위로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이 책을 '연말에 읽기 좋은 1순위 추천도서'로 자기매김하도록 했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완화의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개념부터 탑재할 필요가 있다. 의사로서 일해온 지 20년이 넘은 저자 아나 아란치스가 종사해온 '완화의료'란 삶의 끝자락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 의학이다. 많은 이들이 완화의료가 안락사나 죽음의 촉진을 지지한다고 여겨서 완화의료자를 '안락사시켜주는 의사'로 오해하는 일도 많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완화의료는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
완화의료자는 안락사를 제공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완화의료 수련을 받은 의사라면 안락사를 권고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완화의료에서 발휘되는 현대의학의 진수는 우리를 영원히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영원한 이별을 할 때 통증을 없애주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환자에게 신체적, 정서적, 가족적, 사회적, 영적 안락에서 오는 '웰빙'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건강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조치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모든 면에서 존엄과 의미와 가치를 지닌 삶을 살아왔다면 환자는 죽음을 생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이 적당한 때에 찾아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저자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을 유도하고 보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완화의료를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좋은 죽음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얻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차곡차곡 더께가 되어 얻는 삶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노년에 이르기 전에 지금부터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건강하고 찬란한 마무리는 영원한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런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아나 아란치스는 의대에 다니던 시절,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에게 더 해줄 만한 조치가 없는지 주변에 물었지만, 그때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라는 대답을 들으며 좌절했다고 한다. 그때 한 간호사에게 선물받은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 <죽음과 죽어감>을 읽은 뒤에야 ㅡ 그 책에는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환자들의 체험담과 마지막 순간에 그들 가까이에서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소망이 담겨있다 ㅡ 가슴을 짓누르던 고통이 진정되고,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걸 배우겠다고 다짐한다.
또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호주의 간호사 '브로니 웨어'가 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도 언급한다. 호스피스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해온 브로니 웨어는 가정 방문을 다니면서 죽음의 문 앞에 이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후회'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비슷한 후회를 한다는 사실도.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후회하는 다섯 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2.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3.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4.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5.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라고 한다. 돈을 더 벌지 못한 것, 누구나 살고픈 대저택에서 살아보지 못한 것,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한 걸 후회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채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것을 가장 크게 후회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만 신경쓰느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놓친 채,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면 이 어찌 후회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좋은 죽음을 맞기 위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좋은 삶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이다. 우리는 그 진실을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제 그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살아 있는 동안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저자는 다양한 예를 들어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게 바로 이 책이 죽음을 통해 삶을 보게 만드는 설득력 강한 힘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아나 아란치스는 자신이 날마다 완화의료에 임하면서 목격하는 또 하나의 후회가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감정표현을 통제하도록 교육받으며, 그런 목적을 위해 가면과 위장을 이용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숨기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아픔을 느끼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자신을 보호할 전략을 세운다. 이 전략의 문제점은 어리석게도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이의 복제인간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믿는 것이다. 심지어 온 세상이 작정하고 자신을 해치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심지어 우리의 적들도 우리를 해치는 데 삶을 바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행복하기를 원한다. 이는 저자가 불교철학에서 배운 내용들 중에서 가장 큰 해방감을 준 가르침이라고 한다. 최악의 인간들도, 최선의 인간들도 모두 행복을 갈망한다. 그런데 그저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선함의 가면을 쓰고 살았다면, 삶이 끝나는 시점에서 고독해진다. 평생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는 홀로 남은 사람들. 그들은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 남을 도왔을 뿐 그들과 진실한 관계를 쌓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통해 궁극의 인식을 할 기회를 갖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감정을 보여주는 건 타당하고 유쾌하고 좋은 일이지만 나쁜 감정을 드러내는 건 타당하지도, 유쾌하지도, 좋지도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쁜 감정의 표현이 진정한 변화를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나쁜 감정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은 솔직한 표현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살아야 그게 좋은 삶임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인생길 끝에 이르러 최후의 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쩌면 먼저 떠난 가족에게 애정을 보이지 못한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놓친 기회들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당신의 애정을 보여줄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래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체험이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도록.
삶의 종말을 앞두고 하는 후회 중에는 후회해봐야 고통스럽기만 할 뿐 아무 의미가 없는 후회도 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거 행동을 탓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럴 땐 "그런 식으로 자책하지 마. 그때 그 상황에 맞는 결정을 내렸던 거야."하고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한다. 참된 마음으로 결정을 내리고,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목소리를 내고, 태도를 보인다면 많은 후회들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과거에 내린 결정은 그 당시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이게 바로 순전히 시간 낭비가 되버리는 후회를 막는 방법이다.
문득 문득 과거를 돌이켜보며, 그때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이불킥을 날리거나 회한의 눈물을 흘리곤 했던 나에게 참으로 위로가 되는 내용이었다.
죽음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그러므로 좋은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당신은 지금의 삶에 충실한가?
이 책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모든 것은 죽지만 오직 사랑만은 육신과 함께 죽지 않고 당신 안에 살아 남아 불멸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니 당신이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거나 죽어가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배운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고 그와 함께 웃었던 날들을 추억해보라. 그 과정에서 흘리는 눈물이 당신의 아픔을 씻어줄 것이다.
올해 유독 부모님상을 당한 지인들이 많았다. 얼핏 떠오르는 지인만 해도 다섯 명이 넘는다. 지인 가운데 특히 친구의 부모님상은 정말 남일 같지 않아서, 시골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과 작년에 죽을 고비를 넘기신 시어머님에게도 머지 않아 닥칠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닥쳐올 현실일 텐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일이 나에게 현실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더 자주 사랑의 기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깨달음과 다짐이었다.
책 <죽음이 물었다>를 읽고 나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온전한 삶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마음 속에 새겨두고 오래 기억하고픈 책 속 문장으로 리뷰를 마무리한다.
※ 완벽한 마침표가 되려면 ※
누군가를 만질 때 그저 몸만 만져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몸을 만질 때 하나의 '숨'을 만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숨은 모든 고뇌와 어려움을 지닌 한 사람의 숨인 동시에, 우주의 위대한 숨이기도 하다. 사람의 몸을 만질 때는 하나의 사원을 만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장 이브 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