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5 - 4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거친 삶을 산다고 하여 어찌 천륜을 거슬릴 수 있겠는가? 관수는 영광이 마음을 잡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 하며 길상에게 영광을 부탁하고 이에 길상은 일본에서 영광을 찾아서 도와주라고 환국에게 당부한다. 환국은 수소문 끝에 영광을 찾았으나 영광은 일본놈들과 시비 끝에 죽도록 얻어 맞고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된다. 중학교 시절 좋아 했던 혜숙 또한 일본까지 영광을 찾아와 동거를 하다 이런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영광은 신분에 대한 절망, 아버지에 대한 불만으로 제 멋대로 살 것을 희망하며 악사의 길을 택한다. 영광은 공연 차 간도에 와서 홍이를 만나 극장표를 주면서 아버지와 와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부자는 만나지 못하고 서로의 마음만 확인한 채 각자의 서운함을 가지고 다른 길로 떠난다.

아웃사이더일수록 고독함을 즐기고 고독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듯이 길상, 석이, 홍이, 정호, 두매, 관수, 인실 등은 독립운동에서 찾고자 하였고 영광은 음악에서 찾고자 하였다.

관수의 제안으로 길상 일행은 김두만네 집에서 삼천원과 이도형의 집에서 오천원의 군자금을 강탈해 갔다. 삼천원이면 면서기 십년 월급이라 하니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3억 정도는 될 것 같다. 김두만의 아버지 이평이 죽고 장례식에서 두만이 관수를 의심하며 억지소리를 하자 영팔노인, 어머니, 종학, 연학, 동생 영만까지 나서서 ' 성은 자기 한대만 살고 말 생각이오?' 라며 압박한다. 돈을 빼앗기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자기 대에서야 어떤 짓을 하던 떵떵거리며 살수 있다. 하지만 자식 대에 가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나라를 팔아 먹은 이완용이나 송병준이 매국을 하며 호위호식하며 잘 살았지만 그 자식이나 손자 대에 와서는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행여 큰 인물이 되고 싶어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인실은 오가타 지로와 사이에서 생긴 아들을 혼자서 출산하고 찬하에게 위탁한다. 이에 찬하는 아내 노리코에게 오가타와 인실의 아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입양한다 

한복의 아들 영호와 영산댁 시영 딸 숙이와 맺어주기 위해 천일어매와 아무네가 중매자로 나서 성사시킨다. 하지만 영호는 숙이와 윤국과 소문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며 숙이를 괴롭힌다.

주막을 정리하고 절에 들어간 영산댁이 숙이 동생 몽치를 데리고 한복이 집에 나타난다 

해도사는 소지감에게 몽치와 함께 산채를 넘겨주고, 휘는 통영의 조병수에게 소목일을 배운다.

조용하는 폐암선고를 받고 비관한 나머지 손목을 그어 자살하고, 명희는 조찬하의 도움으로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아 유치원을 운영한다.

기화와 이상현 사이에서 낳은 딸 양현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는데 길상은 양현을 데리고 시우 어머니를 만나 양현을 소개시킨다. 이상현의 딸이라 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보고 시우 어머니는 이상현의 딸임을 짐작한다.

홍이는 간도로 건너가 천일과 함께 자동차 서비스 공장을 운영하는데 김두수가 나타나 동업을 요청한다. 하지만 동업은 거부하고 수량에 따라 와리 주는 것에 동의 한다.

홍이의 이복 누나 임이는 홍이에게 상당한 돈을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떨어지자 홍이 집에 무작정 밀고 들어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두매는 옥이와 결혼하여 연우와 난우 두 딸을 두었는데 쫓기는 몸으로 독립운동에 전념한다.

15부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대목은 간도협약과 난징 대 학살이다. 먼저 간도협약이다.

조선 말에도 조선은 간도를 포기 하지 않았는데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해에 청일간 간도협약을 맺음으로 간도가 중국에 넘어갔다. 간도를 중국에게 넘겨 주고 일본은 일본 영사관과 분관을 설치하는 일과 길장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하여 회령의 조선철도와 연결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영사관설치는 조선 독립군 색출과  탄압하는데 쓰일 본거지였고, 철도는 병력과 군수품을 이동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전의 간도는 병자호란 때 청 태종과 인조 사이에 간도를 간광(비워놓는)하는 불평등 조약을 맺어 간광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청의 힘이 약해질 때 조선 백성들이 거주 하며 우리의 땅임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소수의 청국민들은 청의 세를 믿고 조석 백성들이 핍박을 받자 러일정쟁 때 이범윤이 러시아에 가담하여 간도를 되 찾고자 노력하였는데 러시아가 패전하는 바람에 허사로 끝나고, 간도협약 이후 중국과 일본의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협약내용은 첫째 한. 청 양국의 국경은 토문강으로 경계를 이루되 일본 정부는 간도를 청나라 영토로 인정하는 동시에 청나라 도문강 이북의 간지를 한국민의 잡거 구역으로 인정한다. 둘째 잡거구역 내에 거주하는 한국민은 청나라의 법률에 복종하고 생명, 재산의 보호와 납세, 기타 일체의 행정상의 처우는 청국민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셋째 청나라는 간도 내에 외국인의 거주 또는 무역지 4개처를 개방하며, 넷째 장래 지린, 장춘 철도를 연길 남쪽까지 연장하여 한국의 회령 철도와 연결한다는 내용이었다.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이 중국과 맺은 협약이 왜 지금까지 유효하며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힘이 약해서 그러는 것인가? 언제쯤 힘을 얻어 그건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

다음은 남경대학살이다. 남경대학살은 노구교 사건(중국군과 일본군이 대치하던 중 일본군은 중국군이 사격하여 다는 구실로 주력부대를 출동시켜 노구교를 점령하였으나 협정을 맺어 사건이 일 단락 되었으나 이후 관동군 및 본토 3개 사단이 증파된다.) 으로 전면전으로 확대되어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국민정부가 남경을 떠나고 일본이 점령하면서 2개월 동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잔혹행위가 자행된다. 이 때 살해된 사람이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동물들도 동족은 잡아 먹지 않는다는데 인간이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 속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실리를 취해야 할지 리더들이 심사숙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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