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라는 것이 검은 죽음과 흰 영원에 직면한 일종의 병리적 해부 작업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극단적인 대조는 갖가지 방식 - P207

인생은, 운명이 사람을 말 대신 잡고 두는 / 밤과 낮이 격자무늬를 이루는 체스판이다. /
이쪽으로 저쪽으로 움직여 잡고, 죽이고, /
하나씩 하나씩 상자로 돌려보낸다. - P208

놓쳐버린 시간과 기억의 고통, 죽음의 형상이 자기 자신의 삶에서 가지고 온 인용으로서 여기 추모함 속에 모아져있다. 추모란 인용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전혀 없지 않던가. 텍스트에 (또는 이미지에) 집어넣은 인용은 움베르토 에코가 썼듯이 다른 텍스트와 이미지 들에 대한 우리의 앎과더불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앎을 점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금 시간을 요청한다. 우리는 그러한 시간을들임으로써 이야기된 시간과 문화적 시간 속으로 진입한다.
- P210

학술적인 글쓰기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다소 주관적이고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발트는 자신이 다루는 작가들을 향한 흠모와연민의 마음을 숨기지 않으며, 그들과 관련된 자신의 개인사를 끄집어내고 그들과의 사적인 인연을 어떻게든 에세이의 중요한 주제로 격상시키려 한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이책의 에세이들이 실은 제발트 자신에 대한 글이 아닌가, 그래서 우베 쉬테uwe Schütte가 명명했듯이 "작가 (자신의) 전기 Auto(r)biographie", 즉 작가 전기로 가장한 자전적 에세이가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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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의 몹시도 경솔한 앎을 놓아버린다. 사물들은 우리를 향해 말끄러미 시선을 보낸다. 능동action과 피동passion은 거의 구분되지 않아서 누가 보고 있고 누가 바라봄을 당하는지, 누가 그리고누가 그려지는지 더이상 알 수 없을 정도다" 라고 메를로-퐁티는 쓴다. - P198

우리는 꿈들을 이루는 재료와 같다. 우리의 시시한 삶은 잠으로 완성된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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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그늘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펼치는 페이지마다 더없이 다정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순수한절망에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항상 같은 이야기를 쓰지만 절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며, 미세한 부분에서 예리함을 발휘하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지상에 확고하게 발을 디디고 있지만 공중에서 주저 없이자신을 놓아버리는 그런 작가, 읽는 도중에 벌써 해체되기 - P153

시작해 몇 시간 뒤에는 글 속의 하루살이 같은 인물과 사건,
사물 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는 산문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P154

나는 일상의 작업을 중단할 필요조차 없었다. 어딘가 구석에서 그는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방금까지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있던, 도저히 몰라보고 지나칠 수 없는 고독한 방랑자의 형상으로 말이다. 그래서 때때로 나는 그의두 눈으로 찬란한 제란트를 보았고, 또 이 제란트에서 은은히 빛나는 하나의 섬 같은 호수를 보았으며, 이 호수의 섬에 - P186

서 다시금 다른 섬, "가벼운 아침 햇살의 안개에 싸여, 가물거리는 희끄무레한 빛 속에서 이리저리 부유하는 생피에르섬을 본 것처럼 생각된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빗속에 처량하게 잠겨 있는 호수변 산책로에 서면 저 멀리 수면 위에 ‘보트나 나룻배를 탄 항해 애호가들이 머리 위에 우산을 펼쳐놓은 광경이 보인다. 그 풍경은 우리가 "중국이나일본 또는 그 밖의 몽환적이고 시적인 나라에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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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러의 산문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에게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특히나 영원의 테두리를 더듬어 나아갈 때야말로 자신의 가장 기막힌 정점에도달한다는 사실이 바로 이 부분에서 드러난다. 한 문장, 한문장 우리 앞에 펼쳐지는 그의 산문의 아름다운 궤도를 따라 움직여본 사람은 그 산문이 어느 방향으로나 얼마나 그윽한 심연으로 떨어지는지, 또 어떻게 한낮의 햇살이 저 멀리 바깥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가려 흐릿해지다가 죽음의 암시와 더불어 사라지게 되는지 번번이 전율 속에서 느끼게 된다. - P128

그는 제아무리 철자나 문장을 아름답게배치한다고 해도, 제아무리 자신의 인물들에게 관대함을 베푼다고 해도 상심의 무게를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예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궤적을 돌아보면서 이 모든 것이 삶이라 불릴 수없고 이런 식으로 계속될 수는 없다"고 느낀다. 그는 자신이 - P145

또다시 붙잡혀 들어간 정신의 새로운 감금에 대해 말하고,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그의 상황은아무런 출구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가 말하듯이, 때로는이제 그만 존재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의 마음속에서 점점더 또렷하게 출렁이는 것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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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음악 감상자로서 언제나 저지르곤 하는 실수는 이런 경이로운 선율 속의 언어와 음악이 그것의 가장 자연스러운 전통의 유산을 차용한 결과일 것이라 가정하는 데서비롯된다. 하지만 그것은 실은 그 작품에서 가장 독창적인부분이다. 그런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분명 미세한 조정과 수정을 가할 수 있는 희귀한 수공예적 솜씨가 필요할 것이다. 그 밖에도 내 생각에는 아주 집요한 기억력이 필요할 - P102

것이고, 또 어느 정도는 연애의 불운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피리케와 슈베르트, 슈티프터와 켈러와 발저처럼 우리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몇 마디 글을 써준 사람들의 숙명처럼 보인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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