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섭다. 이 소설. 우화식으로. 풍자한 이 소설. 정말 무서운 비유다. 얼마나 훌륭하게 역사를 재현해 놓았는가. 조지 오웰은 어떻게 훗날 있을 소련의 이야기를 이렇게 훌륭하게 표현해 놓았는가. 난 대작은 우연찮게..접하다가도. 그때는 몰랐다가 나중에야 그 작품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1984년도 그랬고, 우동한그릇도 그랬다. 게다가 이 소설. 동물농장은 필독서적이였기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읽게 되었지만. 그 훌륭한 비유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노동자와 자본가. 공산당과 노동자. 그 모습을 훌륭하게 비유했다. 나는 이 소설을 생각하면 할수록. 무섭다. 어쩜 이런 소설이 있을까 하고. 어점 이런 비유가 있을까 하고.만약 이소설을 읽지 않았는가. 당신이 조금이라도 역사에 관심있다면. 그리고 지금 굶주린 아이들을 구해주지 못한 북한의 상황을 조금이나 파악하고 싶다면 꼭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바로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물론 이젠 과거형으로 남아야 할 이야기다.)
멋모르고 읽은 학교 필독도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배경이 일본인줄도 모르고 읽었으나... 어디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게 중요하랴? 이 소설은 그리 긴 내용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짪은 글 속에 여느 장편소설보다 더욱더 큰 것을 담아낼 수 있음에 찬사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선지 단점이라면 글이 길지 못해 인물들의 변천사를 너무 다루지 못한 거랄까... 물론 이 소설을 본다면 단점이라고 하기보다 아쉬운 점이겠지만.그 가족들을 기다리는 주인 내외의 모습. 가족들이 커가는 모습을 같이 바라보는 그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리라. 허름한 탁자. 곧 문 닫을 시간. 그리고 추운겨울.새해를 앞둔 시각. 이 이미지 떄문일까? 이 책이 내게 영향을 준 탓인지 추운 겨울밤이 되면 난 내가 잘아는 서울 을지로의 작은 우동집에 간다. 물론 우동 한그릇에 나오는 그런 가족이야 보기 힘들겠지만.별 생각없이 내가 자주 가는 집이 되었지만. 아마도 내가 가는 이유는 그 우동한그릇이 전해주는 감동때문 아닐까? 그 감동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고 싶어? 바라보고 싶어? 저번 12월 31일. 밤. 난 서울 시내 을지로안에 있는 우동집에 갔다. 그 가족들처럼.
박지원의 소설이 담겨있기에 과제에 쫓겼던 나는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사실 위 세소설 말고도 그의 다른 소설도 있곤 했지만. 게으른 탓인지 제목에 나온 소설만 읽었다.교과서에도 나올뿐더러 수능과 모의고사에서도 자주 나올만큼 수험생들에게 있어서 필독 도서이다. 아니. 그게 어디 수험생만의 도서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박지원의 현실비판성 실학소설은 필독도서이다. 아직도 우리곁엔 실학정신이 필요하고, 허생과 같은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질에 나오는 곽선생이 이 사회를 주무르고 다니기 때문이다.유교문화의 왜곡된 전파는 조선 중기를 지나 사대주의와 권위주의를 낳아서 조선을 썩어빠지게 했다. 발전없는 나라, 내세울게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그 것들은 대상이 바뀌었을뿐 그 모습은 그대로가 아닌가? 그 것을 비판하기 위해 박지원은 소설을 남겼다. 이제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필요한 모습을 아주 오래전부터 남겨준 셈이다.
이 소설은 전편인 결백보다 더욱 시대적인 모습을 내고 있었다. 아니 이 소설의 주도니 주제가 바로 시대상이 아닐까 싶다. 산업화에 젖기 시작한 20세기 초기의 모습을. 아직은 귀족이 살아있고, 타국 문화에 너무나 신비한 듯 바라보는 시선들. 그러나 산업화에 물드려는 모습들. 세상은 넓어지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 비해 따라가지 못한, 오로지 욕심없는 신부가 그 것을 바라보며 사건을 풀이하는 모습이 담길뿐. 신부이기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점점 신부의 모습은 흐려지는 것 같다. 셜록 홈즈와 같은 혼자 다 푸는 탐정의 모습에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결백에선 신부로써의 고뇌. 성직자로써의 영향과 행동이 가끔씩 보이곤 했다. 그러나 그런게 사라진 것 같다. 이 소설의 매력중 하나였는데.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같은 저자의 최신 도서인 이 책을 별 고민없이 사게 되었다이 책은 이 사회에서 악역이라 설정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에서 부터 먼 나라 프랑스에서의 같은 모습의 사람들(물론 이자들은 악역이 아니지만)의 이야기 이다. 그 악역은 흔히 말하는 좌익사범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법에 구속되어 그렇게 구속된 사람들과 데모하는 노동자들 이라고 하면 될까? 그리고 전라도민까지.하지만 그 악역은 왜 악역인가? 그렇게 나쁜 일을 했나? 그 악역들은 바로 사회가 만든 악역이기 때문인데. 그 예로 이 책은 김우중 체포대가 프랑스에서 관심을 끌었던 이야기나 드레퓌스 사건을 보여준다.그리고 악역이라고 설정하는 악역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담는다. 이책에선 이른바 사회귀족. 기득권층.어쩌면 홍세화씨는 아무런 투쟁없이 얻어낸 평등으로 인해 생긴 우리사회의 모습들. 사실 그 평등은 사회귀족층이라는 존재가 그 평등을 무의미 하게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아쉬워하며 사회적 약자인 악역을 맡은 자들이 느끼는 슬픔을 느끼며 제목을 붙인 것 같다.본문 중 프랑스 좌파는 물론 보수 우파도 한국에선 빨갱이가 된다는 글과 함께.어쩌면 우리에겐 그 슬픔을 잠재울 악역들이 투쟁없이 얻은 무의미한 평등에 불을 지피는게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이런 글을 쓰는거 보니 나도 슬픔에 찬 악역을 맡은 자들중 한명인가보다.1분중 0분께서 이 리뷰를 추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