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수집가 1
자비네 티슬러 지음, 권혁준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가 떠올리고 상상하며 즐겁고 행복해할 것들은 무엇일까?
근사한 집과 원하는 꿈을 이룬 나 자신의 모습등이 아닐까?


p.133
작은 마을들을 통과해 달리는 버스 유리창으로 희미하게 불 켜진 집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집 안에서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거나 친구들과 놀이를 하거나 또는 부모와 같이 저녁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이런 상상을 매우 좋아했다.

정말 흔한,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저 "일상"인 평범함을 그는 "상상"으로 밖에 접할 수 없었다.
그런 작은 일상조차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그를 범죄자로 만든걸까?

알프레드라는 평탄하지 못한 어린시절과 가족들을 겪은 사람의 연쇄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그려진
아동수집가.

범인의 시선, 그리고 그를 쫓는 자의 시선,
그리고 범인에 의해 잔인하게 유린당하고 결국 살해되고마는 피해자의 시선과
남겨진 피해자 가족들의 시선
이 모든 다양한 시각들이 너무도 충실하게 그려져 있었던 탓에
피해자의 시선일때는 나조차도 숨죽이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고통과 슬픔이,
가해자의 시선일때는 내가 이런 사람의 행동을 저지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제목에서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내용처럼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이니 만큼
읽는 내내 안타까운 심정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정말 화가 나도록 잘 쓰여진 소설이라고 작가를 칭찬해야 하는것일까?
그러기에는 알프레드가 아동만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와
후반부로 갈수록 아동연쇄살인범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생활할때의 모습이 설득력이 좀 부족했다.
원래 범죄자들의 심리에 대한 묘사를 읽다보면 정상인이 우리들이 보기에는
억지에 가까운 그들만의 논리가 짜증스럽고 결코 동조하기 힘들지만
알프레드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그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다고 믿.는. 존재인 "아이들"을 어째서 아껴주는 대신
자신의 쌩뚱맞은 논리로 역시나 황당한 알프레드 식의 '은총'을 멋대로 내리는지!

p.63
"아저씨, 눈이 와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예요. 으흐흑..."

작고 여린 벤야민의 흐느낌따위는 알프레드에게 들리지 않은 것일까?

p.134
애원하는 아이들의 뜻을 받아들여 마침내 은총을 베풀때까지 그는 유희를 즐겼다. 그는 자비심을 베푼 것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죽음을 통해 영원히 자유로운 나라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자유를 선사하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다니엘, 벤야민. 나는 너희들을 미친 듯이 사랑한 거야. 그래서 자유롭게 해준 거야.'


p.135
그는 스스로를 욕심 없고 소탈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의 팔에 안겨 부드럽게 전율하며 자신들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간절히 열망했다. 그 아이들은 오로지 자신과 함께 있어야만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여자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또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사는 부류가 아니었다. 오로지 아이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존재했다. 아이들을 신의 장난감으로 방치해두어선 안 된다. 자신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환멸과 분노가 가득한 더러운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게 마치 자신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p.136
'다니엘. 너는 구원받은 거야. 내가 널 구원해준 거라구.'

이런 발언들로 알프레드는 범행후에도 나를 경악케 하고 그에 대한 역겨움을 배가시켰다.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에서는 보호'라는 개념이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는것일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자신만의 논리로
어린 아이들을 잔혹하게 다뤘을 뿐인 자신의 행동을 멋지게 포장해내려고 하는 그에게,
그저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추악한 행동을 일삼았을 뿐인 그에게, 알프레드에게!
나는 들리지도 않을 원성을 퍼붓고 또 퍼부었다.
아무리 내가 악을 쓰고 소리쳐도 절대 닿지 않을테고 이건 단순히 소설일뿐인데도
나는 내 화를 억누리기가 힘들었다.
니 멋대로 구원이란 핑계를 대지말라고! 그것이 어째서 구원일 수 있냐고!
너는 그저 작고 힘없는 아름답던 소년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너는 그저 니 욕구나 채운 쓰레기 같은 인간일 뿐인거라고!
어두운 어린시절이 지금의 니 모습을 정당화 시켜줄 수도 없는거라고!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역겨워지는 그의 캐릭터는 우습기까지 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거지논리를 펴던 그는 이제 살인이외의
'거짓말'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사람들을 꾀어내고 속여가며
뱀같이 사악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최후의 순간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느낀 것은 통쾌함이 아닌 아픔과 슬픔이었다.
이 책에서 제일 잘 살렸다고 생각한것은 피해자의 잔혹함이 아닌
결코 잊혀지지 않을 피해자들의 모습과 남아있는 피해자의 가족들의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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