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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게리 슈테인가르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압수르디스탄(Absurdistan), 어쩌다보니 대학(Accidental College)
만화책에 나오는 단어들이 아니다!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에는 이런 식의 작가가 만들어낸 풍자적 단어들과 문장들이 즐비한다.
압수르디스탄(Absurdistan)은 ‘불합리한, 터무니없는’을 뜻하는 단어 ‘absurd’와 중앙아시아 국가의 국명에서 흔히 보이는 땅을 뜻하는 ‘-stan’의 합성어이다
책 소개를 읽고는 '오랜만에 멋진 풍자소설 한 편 만나겠구나!' 싶어 기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단 두께가 살짝 압박을 가하더니 시작부터 곤혹스러웠다.
'지나친'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며 서문을 여는 작가는 갑자기 날아오르기 시작하고
나는 그의 날아오름에 허덕이며 뒤쫓아 가지만
얄팍한 배경지식으로 그가 유쾌하게 끌어가는 그의 비상에 나는 한 참을 뒤쳐져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의 의도는 파악할 수 있었고 덕분에 재치만발한 그의 글을 읽으며 즐겁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의 묘미를 완전히 맛볼 수 없었던 아쉬움이 남는다.
책소개를 읽으며 얼마전 깔깔 대며 읽었던 <제5도살장>이나 <타임퀘이크>의 '커트 보네거트'풍의 소설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 느낌과는 살짝 다름에 조금 실망했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문체를 떠나서 나 자신의 무지가 책을 마냥 즐겁게 유쾌하게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있었고
그의 신랄한 유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던거 같다.
p.86
아버지 세대의 남자들 앞에 서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담배와 보드카가 뒤섞인 묵은 냄새와 그들의 거친 손 앞에서 나는 그저 몸을 떨며 두려움, 혐오감, 차분함, 공범 의식을 한꺼번에 느낄 뿐이었다. 이 악당들이 이 나라의 지배자들이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여러 개의 가면을 써야 했다. 범죄자의 가면, 피해자의 가면, 침묵하는 구경꾼의 가면. 나는 각각의 흉내를 조금씩 낼 수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놈들이 버젓히 아버지 장례식에 나타나서 그에게 훈계따위를 해대도 그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그것이 그가 용기가 없거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현명한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이 치열한 세계에서 나도 많은 가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착잡하다.
여유있는 마음으로 찬찬히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재미있지만 재미있지만은 않았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