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 떠난 소년
마티외 리카르 지음, 권명희 옮김 / 샘터사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차분함과 할머님께 듣는 옛날 이야기같은 느낌의 따뜻함이 공존하는 우화.
오랜만에 '마음'을 채워주는 책을 읽은 기분이다.

소년 데첸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불행을 벗어나고 싶은 소년의 여행이야기인가 했지만
'어디에 이런 마을이 있을까' 싶은 따스한 마을에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가족들과 살아가던 데첸의 여행기였다.
내가 보기에는 부럽기까지 한 정다운 그 곳에서도 데첸은 무언가 아쉬움을 느꼈고 그래서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 아쉬움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의 모습과는 좀 다른 아쉬움이였다. 물질적인 욕구가 아닌 정신적인 혹은 영적인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소년 데첸.

표지탓에 멋대로 한 상상 하나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중의 이야기가 펼쳐지겠거니 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여행은 금새 끝이 나고 데첸은 자신의 소중한 스승과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스승과 만나는 순간부터 진실한 마음의 행복을 찾는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눈의 왕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구도의 길이 진짜 여행이었다.
그 여행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어딘가 목표하는 곳을 혹은 정처없이
계속 해서 향해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다른 책들이 나를 그저 독자로만 만들던 것과 달리 이 책은 나를 여행의 동반자처럼 받아들여 주었다.
나는 데첸이 스승에게 듣는 말을 함께 생각하고 그래서 깨달음을 안겨주는 가르침들이 고스란히 나에게 스며들 수 있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적절한 비유와 은유로 맑은 시와 노래 같았던 투명한 우화.

때로 어떤 책들은 아무 이유없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쫓기듯이 허겁지겁 급하게 읽은 책은 마음으로 내려가지 않고 머릿속에서도 뒤죽박죽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지나칠 정도로 느긋하게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게 된다. 책의 분위기가 나를 평안하게 해준걸까?

데첸의 스승. 위압감이 없이 이끌어 주는 안내자라는 느낌을 주는 스승.
스승이 데첸에게 전하는 말들로 나는 스스로 한발 한발 걸을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선으로 안내받는 기분이었다.

p.115
저 무지개를 잘 보거라. 무지개는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로 우리 앞에 있지만, 저 무지개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 무지개는 공간 속에서 빛나고 있으나, 실은 공간과 다르지 않지.
마음도 이와 같단다. 생각들이 아무리 확고해 보일지라도, 잘 들여다보면 저 무지개보다도 견고하지 않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닌 감각에 집착하는 것은, 방패막이를 삼으려고 저 무지개 뒤편으로 가서 숨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다.
너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 것이 저 무지개나 물 위에 비친 달이나, 혹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와도 같다고 여기거라.
반면 마음의 궁극적인 본성을 안다는 것, 즉 깨달음이란 마음이 거짓되게 만들어 낸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맑은 의식을 말한다.

p.116-7
명심하거라, 화살이 심장에 와 닿듯이 허비할 시간이란 없다는 걸 말이다.
그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우린 세상이라는 미망의 늪에서 기쁨과 괴로움, 이득과 손실, 찬사와 비난, 또한 명성과 무명이라는 세속적인 집착에 빠져 허우적걸리고 말 것이다.
너희가 수행을 하고 행위를 할 때마다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 것이며,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늘 깨어 있도록 하여라.


그렇다. 삶은 너무도 빠르고 무슨 일인가를 미뤄두는 것도 어리석다.
항상 깨어있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그저 눈만 뜨고 있을 뿐 진짜 깨어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진짜 깨어있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스승의 말처럼 순간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소중히 하면서 계속 깨어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데첸은 스승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서 깨달음을 얻어 간다.
하지만 데첸은 그저 혼자 깨달음을 얻고 산속에 파묻혀 자신의 평안에만 몰두하는 삶 대신
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을 선택해서 살아간다.
바로 타인과 함께 하는 삶.
새로운 여행 길을 나서며 다른사람들의 일을 돕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영적인 시까지 읊어주는 데첸의 삶은 아름다운 예술가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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