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컬처 -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데이비드 플랫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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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컬처 >

-데이비드 플랫 / 두란노

"복음을 품은 채 침묵하지 말라"

오늘날의 기독교는 사실 그 색깔이 많이 퇴색되었다.
존재 가치를 자신 스스로에게서 끌어 올리는 것보다는 세상의 잣대로 웃고 우는 시대이다.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어떻게 만족시킬까를 더 고민한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이 식상하게 들릴까봐 이모저모 나의 모습을 합리화시키며 살 때가 많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시 복음을 재조명하며, 복음을 품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준다.
역시 복음은 원초적이며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복음이 문화와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에는 복음과 문화의 개념이 더 명확할 필요가 있다.
복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며 그가 계획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에 반해 문화는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의 자유와 의지를 앉혀 놓는 일이다.
그러니 복음과 문화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결혼에 관한 개념도 다르다.
복음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결혼은 인간인 두 남녀의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인간 구원 계획을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인간을 창조하신 그 때부터 이미 설계하시고 보여주시기 위한 모델이다.
남자와 여자의 밀당을 통해 어느 쪽이 우위를 차지하며 자신을 만족시킬 것인가에 있지 않다.
남자는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듯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여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남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신다.
결혼을 통한 만족과 성취가 목적이 아니라, 사방에서 지켜보는 세상의 눈앞에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하나님이 결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복음과 문화와의 충돌을 여러 부분에서 살펴본다.
우리의 곁에 있는 가난, 낙태, 고아와 과부, 성 착취 등의 고통에 눈을 뜨기를 원한다.
그 고통 속에 있는 이웃들의 눈물을 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과 충돌하는 여러 가치들, 예를 들어 결혼이나 성윤리, 인종 문제나 신앙의 자유 등의 충돌 속에서 복음을 사수하기를 요구한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압제 밑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된 이는 없다.
그러기에 복음이라는 빛을 통과하여 바라보는 세상은 우리가 침묵하여야 할 마당이 아니다.
복음에 비추어 내가 쏟아내야 할 자리가 분명하다면 기도하고 참여하며 선포하기를 원하신다.

이 책은 상당히 강렬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복음 자체가 강렬하다.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 창세기 1장 1절부터 강렬한 것이 성경이다.
우스갯소리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성경 첫 머리와, 세상 끝 날에 다시 오겠다는 성경의 마지막 구절을 믿는다면 이미 그는 신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복음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서까지 사랑하신다는 이 강렬함을 제거하면 복음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의 교회와 믿는다고 따르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원초적인 강렬함을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고 찔리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모든 자리에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한 자리에 우리는 분명한 부름을 받았으며, 그 자리를 위해 기도하고 참여하며 선포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통해 꼭 이루어야 할 일일 것이다.
'지금도 이 책을 읽으며 거룩한 고민을 하는 이 시간에도 세상의 어딘가에서는 고통으로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람이 많다'는 저자의 말이 나를 다시 흔든다.
잠들어 있던 내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 분을 향한 내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여야 하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
올해 읽은 기독교 서적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찔리며 읽었던 책.
"강추".

"창조주는 인간을 설계하시면서 주님을 으뜸자리에, 이웃을 버금자리에, 그리고 자신을 그 마지막 자리에 두게 하셨다.
하지만 죄는 그 순서를 뒤바꿔 버린다."(p28)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의 실체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며 그래서 반드시 예수가 필요하다. 복음이 한층 공격적으로 문화와 맞서는 지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p30)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러내는 자주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스스로에게 눈을 돌려 하나님의 방법을 첫손에 꼽아야 비로소 구원을 얻을 수 있다."(p36)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가감하거나 믿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p40)

★"교회가 대단히 강력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크리스천들은 스스로 믿는 바를 위해 고난 당하는 걸 귀하게 여기고 기뻐했습니다.
그 무렵의 교회는 그저 여론의 각광을 받는 사상이나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온도계가 아니라 사회의 관습을 바꾸는 온도조절장치였습니다."(p254) -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중에서

#카운터컬처 #래디컬 #두란노 #데이비드플랫 #동성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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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촉촉하고 짭쪼롬한 하느님
에드위나 게이틀리 지음 / 분도출판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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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하고 촉촉하고 짭쪼롬한 하느님 >

- 에드위나 게이틀리 / 분도출판사 -

제목은 달달한 것 같은데 내용은 강렬하다.
그러나 되씹어보면 그것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가톨릭의 평신도 여선교사로서 제도와 기존의 신앙틀을 뛰어넘는 행보를 하고 있다.
그녀가 원했던 삶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현재는 매매춘 여성을 돕는 일을 한다.
그녀가 말하는 하나님은 가부장적인 개념으로 굳어 버려 경직된 하나님이 아니다.
창조적인 다산성을 의미하고 약한 자를 돌보며 어두움마저 빛을 발견하는 길로 사용할 수 있는 여성적인 하나님을 말한다.
잊혀지고 애써 지워버렸던 여성으로서의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고 그것을 찾으러 떠나는 여정을 권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여성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마음껏 일하시고 만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사실 난 이런 책을 만나면 반갑다.
나도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한다.
그래서 내 이미지는 중성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여성에도 남성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은, 이물질 같은 나를 발견하는 날은 어두워졌다.
따뜻함을 소유한 것 같으면서도 동굴에서 빠져 나올 것 같지 않은 나.
누군가 옆에 없으면 불안한 소녀 같으면서도 잔다르크처럼 분연히 일어나는 나.
이 책을 읽으며 난 어쩌면 인디언 세계에서 태어났으면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읽을수록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안에 제한 받던 하나님이 자유롭게 춤추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인생도 그리 부르시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내 안에는 몇 개의 꿈이 꿈틀거린다.
현실적으로는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꿈을 생각하면 그것이 나다운 내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요즘 그 꿈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는데, 오늘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멈칫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은 나만의 인생을 위해 나를 지으시진 않으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길 원하시지만 행복이 종착역은 아니다.
나의 자유와 마음껏 춤을 추는 이유는 또 다른 그 분의 자녀, 그 누군가와 함께 춤추길 원하실 것이다.
그녀가 생각도 못 했던 곳에서 또 다른 그녀들을 이해하고 안아주고 같이 울어주는 이가 되었듯, 우리도 우리의 부르심엔 그 의미가 숨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꿈이 나의 자아실현에서 멈추지 않고 그 분과 같이 걸어가는 걸음이 될 때 그제야 난 진정으로 행복하고 즐겁고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잘 하는 것을 골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못 해도 그 분과 같이 가니 기쁘게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면, 교회 내에서도 이런 책들이 더 많이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시선이 많이 다르지만 이런 시선이 우리에게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인디언 소녀처럼 춤추고 싶어지는 책을 만났다.
원초적인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고 앞으로의 걸음이 더 가벼워지게 돕는 책을 만났다.

"우리가 여정에 열려 있다면, 하느님은 언제나 진행 중에 계시다."

"여성의 에너지는 단련되지 않은 남성성에 균형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여성이 자신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면, 남성도 그 비현실적이고 파괴적인 힘과 통제의 고지에서 내려와 중간지대에서 여성을 만나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새로운 존재방식을 만들어내고,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탄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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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습니다 - 김양재 목사의 자녀교육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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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습니다 >

- 김양재 / 두란노 -

'문제아는 문제 부모를 위해 수고한다'는 표어를 가지고 시작하는 이 책은 큐티 전도자이기도 한 김양재 목사의 자녀교육 이야기이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좋은 자녀 나쁜 자녀가 없다는 첫 번째와 문제 자녀가 영적 후사로 변한다는 두 번째 부분이 그것이다.
이야기들마다 우리들교회의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저자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으로 시원하게 자녀교육을 말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는 역시 어릴 때부터 말씀을 읽게 하는 것과 큐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양재 목사의 책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호하고 잘 부딪치던 부부 관계를 시원하게 긁어주던 책들은 많은 위로와 도전이 되기도 했다.
큐티 전도사가 된 저자의 책들을 접하며 열심히 큐티를 하던 때도 있었다.
자녀교육에 관한 책은 처음 만난 것 같다.
요즘은 자녀교육에 관한 관심도 많고 대안도 많다.
그리고 '자녀가 부모 인생의 대리만족을 위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엔 모두가 동의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먼저 살아온 부모의 가치관과 기준을 고스란히 적용하며 자녀를 키운다.
나 역시 조금은 개방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굴어도 자녀교육 앞에서만큼은 작아지는 사람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큰애가 다섯 살 때 교육은 부모가 잘 못 시키면 애를 망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과, 사춘기 시절을 매일 싸우다시피 하며 방목이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무심한 엄마처럼 아이보다는 내 인생에 집중해서 걸어온 삶이지만, 뒤집어놓고 다시 본다면 아이에게 집중해서 그들을 닦달할수록 아이는 자신의 색깔을 펼치지 못하더라는 것을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더 후회가 되는 일이라면, 말씀을 더 깊게 새겨주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될 이 부분을 나는 의도적으로 강조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너는 올바로 걸어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삶으로 믿음을 보여주라는 말씀과 연결이 될 것이다.
나의 삶이 믿음을 보여줄 것인가.
내 삶에서 그리스도를 보여주었던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 자녀들에겐 어떻게 다가갔을까.
'나의 사연을 약자인 자녀에게 쏟아부으면' 자녀는 또 다른 사연을 가지고 부정적인 대를 이어간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해결되지 못한 나의 아픔이 아이에게 투영되고 아이는 또 다른 눈물을 토해낸 적이 있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아차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때가 있다.
결국 내 삶은 내가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라는 자리를 통해 인생과 신앙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을 강조하는 부분은 몇 번을 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 우려스러운 점은, 혹시나 이 책을 읽으며 우리들교회에서만이 그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고 그 공동체에 속해야만 자녀교육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라면 이 또한 또 하나의 우상이 될 것이다.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들교회에서의 사례들을 많이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칫 이곳에 속해야 자녀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대하고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자녀를 신앙적으로 키우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숙한 이들이라면 오밀조밀하고 다양한 나뭇가지를 보더라도 커다란 나무의 전체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리라.



책의 곳곳에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들이 많다.
나는 어떤 자녀인지, 어떤 부모인지, 내 자녀의 문제만 보느라 정작 더 큰 문제아인 부모 자신의 민낯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은 나에게 특히 더 다가온 문장들이다.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인생을 같이 걸어가는 친구이기도 하다.
연약한 부모를 다른 모습으로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하다.
나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녀, 그가 바로 영적 후사이며 그런 영적 후사를 길러내야 할 의무가 먼저 믿은 우리에게 있다.



#문제아는없고문제부모만있습니다 #김양재 #자녀교육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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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자녀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p26)

하나님께 절대주권이 있음을 믿어야 하지만, 내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상처가 아무리 대물림되어도 내 대에서 그 아픔을 끊는 것은 내 몫이다.(p38)

그래서 부모도, 자녀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걸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살아 있는 신앙 교육이다.(p49)

유대 사회는 자녀가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아내가 중요하고 엄마가 중요하다.
유대인은 엄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고, 아버지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지 않는다고 한다.(p70)

문제아는 누구 때문에 되는가? 내가 문제 부모인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라.(p80)

부모가 자녀를 행위로 판단하고 취향에 따라 좋아하므로 편애가 시작된다.(p82)

좋은 자녀 나쁜 자녀 없다. 각자 역할이 다를 뿐이다. 그렇지만 성경은 에서처럼 좋은 자녀는 믿음의 자녀가 안 될 확률이 높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다.(p86)

택하심은 그래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편애하시지 않는다. 악하고 약할수록 더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믿어야 한다.(p90)

★ 우리는 엘리로부터 '부모는 자녀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만, 사무엘에게서는 '인간의 힘으로는 자녀를 키울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부모는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자녀는 부모의 힘만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두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다.(p113)

인생에 흉년이 와 봐야 내 수준이 드러난다. 부족함이 없을 때는 뭐든지 믿음으로 감당할 것 같아도, 흉년이 오면 믿음의 현주소가 드러난다.(p115)

★부모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내 아들 딸에게 목숨 걸지 말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섬기는 것이 자녀를 으뜸으로 키우는 고품질 고등 교육이다.(p118)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나의 위로자이시다.(p120)

★우리는 모세에게서 내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인생의 소망이 아니고, 내 자녀 때문에 남의 자녀가 잘되는 것이 인생의 소망이고 목적이 되어야 함을 배우게 된다.(p123)

자녀는 부모 삶의 결론이다.(p126)

자녀에게 내밀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의 손길은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구원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p132)

★하나님의 관점이 내 관점이 되고, 주님의 보폭이 나의 보폭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시간 속에서 부모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자녀교육이다.(p135)

뜻대로 되지 않는 자녀를 통해 내 욕심과 기대를 버리는 것이 부모가 거쳐야 할 빈 들의 훈련이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뒷바라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내 장래를 보장하신다는 걸 깨닫는 것이 빈 들의 훈련이다.(p154)

유교적 가치관으로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 때문에, 주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하는 것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그래서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p197)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순종의 훈련을 받은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존경의 기준을 부모의 착한 행실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온전히 주님을 기쁘게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순종을 한다.(p202)

그렇다면 자녀들은 언제 격노(노여움을 느낌)하는가. 부모가 부모의 권리를 남용할 때, 부모의 사연을 약자인 자녀에게 쏟아부으면, 일관성이 없을 경우이다.(p205~210)

자녀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과 생각을 채워 주는 것이다.(p212)

이삭의 뜻이 '웃음'이다. 원어로는 조롱, 비웃음이라는 뜻도 있다. 이삭, 곧 자녀는 우리에게 웃음이자, 비웃음인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섭리를 품은 이름인가?(p228)

영적 후사를 낳는 일은 십자가의 길이요, 순교자의 삶이다. 그러나 영적 후사는 더없는 영광이요, 기쁨이요, 웃음이다.(p231)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떠나고, 버리고, 포기하는' 모습들을 믿음의 부모가 보여주어야 한다.(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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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 크기가 아이 인생 크기를 만든다 - 장애영 사모의 마음 양육법
장애영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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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마음 크기가 아이 인생 크기를 만든다 >

- 장애영 / 두란노 -



제목은 길지만 내용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특히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이야기들이고 또 나름 자신들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촬영감독이었던 장석준씨의 장녀이고 예수를 몰랐던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겐 새로운 삶이 전개되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아들, 남편의 심장병, 교회개척, 아들의 중학교 자퇴 등등의 사건들을 통해 그녀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하나씩 그 틀을 건축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녀를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가정이 든든하게 세워지는 역할도 하게 된다.
문제가 있는 자녀 뒤엔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이 있듯, 자녀의 문제는 그들만의 몫이 아니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며, 두려움과 과잉보호로 점철된 육아병에 거려 휘청거리던 경험으로 시작한다.
중간중간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제적인 조언이 수록되어 있어서 나는 어떻게 교육할 수 있는지 비교해가며 고민할 기회도 준다.
무엇보다도 성경적 자존감이란 무엇이며, 그 자존감이 회복될 때 개인과 가정이 건강하게 자랄 것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또 주장한다.



난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대한 접근이 새로웠다.
남녀로서의 아담과 하와는 늘 거리가 가까웠지만 부모로서의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무했던 것 같다.
그들도 아들들을 낳아 키우는 부모였던 것을, 그들의 삶을 보며 자랐을 가인과 아벨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동생을 보며 분을 품고 결국 살인을 저지르는 가인의 뒤에는 그에게 영향을 끼쳤을 부모가 있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이 세상을 헤쳐 나온 것 같아도 자신과 직, 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완성되어간다.
엄마로서의 나, 더 크게는 부모라는 자리로서의 나는 어떠한가.
어줍잖은 가치관과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키웠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와는 여러 사연들을 통해 나의 힘을 버리는 연습도 많이 했다.
그들에게 어느 부분은 좋은 영향력을 주었을 테고 또 어느 부분은 나쁜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대부분은 방임의 자리에 서서 그들의 걸음을 구경할 때가 많았다.
솔직히 믿음의 가정이라는, 부모와 집안 자체가 기독교적인 분위기에서 살았던지라 의도적으로 신앙훈련은 피했다.
키워놓고 보니 후회되는 부분이 많다, 적어도 훈련이란 면에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이제는 나의 역할이 더더욱 필요없는 때에 만나는 이 책은 오히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양육이라는 것이 꼭 자녀가 어릴 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정의 1순위는 예수님, 2순위는 부부, 3순위가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산다면 자녀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 가정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책의 말투가 똑 부러지는 것이 이 분의 삶의 궤적이 어슴프레 느껴진다.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며 솔직하게 진행하는 이야기들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구체적으로 자녀를 돕고 나를 돌아볼 리스트들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밑에 있는 글귀들은 내용에 상관 없이 내게 다가온 문장들이다.



-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인생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는 일이다.
- 자기성찰은 자기비하가 아니다.
- 나와 반대편에서 내 문제의 터널을 뚫고 들어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 죄를 지은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능력조차 없는 것이다.
- 주님의 생각을 듣는 기도를 하면 지혜를 주신다.
- 여백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근육이 발달하고 마음의 크기가 자라게 된다.
- 생활예배자는 일상생활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 마음의 회복은 거룩성의 회복이다.
- "세상에 귀한 일들은 지독하게 지루하고 너무 단조로워. 사람들은 그게 행복이었던 걸 다 잃은 후에야 알게 되는 것 같아."
-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애증이 되고, 그리움이 깊어지면 오히려 기억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다.
-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숭배하는 죄를 끊고 주님을 예배하는 사람이다. 자기존중에서 하나님존중으로 마음을 바꾸고 사는 사람이다.
- 이 눈물의 정체는 회개가 아니라 자기사랑 때문이다.
- 위기는 이렇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통과할 수 있는 암흑과 같은 터널이다.
- 부모가 달려가야 자녀가 걷기 시작한다.
- 가정예배는 두 사람 이상이 하나님께 나아감으로 성경적 마음을 회복하는 최고의 시간이다.
- 마귀는 혼자 고립된 영혼을 공격하고 싶어 한다.
- 삶의 속도계를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추고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한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멀리 가야 할 새들은 혼자 날지 않는다.
- 자녀들은 간절히 자기 부모를 존경하고 싶어 한다. 부모만 자녀에게 기대치가 있는 게 아니다.
- 성경적 성공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 자기 사랑과 자기 경배에 시간과 물질을 쏟아붓느라 예수님과 상관 없는 삶을 살기가 얼마나 쉬운가.
- "자녀와 다른 사람을 가르친 대로 너 스스로 다시 배우라"


** "성경적 자녀양육은 하나님과의 러브 스토리다."


#엄마마음크기가아이인생크기를만든다 #장애영 #자녀교육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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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성경적 남녀 관계와 여성 리더십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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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 김세윤 / 두란노 -




나의 엄마는 아버지에게 지극히 순종적이시다.
자식과 배우자 모두를 사랑하지만 늘 배우자가 먼저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꺼워하시면서도 아버지를  엄마의 가슴으로 품을 줄도 아셨다.
어느 때엔 엄마가 아버지보다 훨씬 강해보이고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도 결국 아버지의 의중을 떠나는 적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유한 것 같아도 어느 부분에서는 엄마를 휘어잡는 권위가 있고, 엄마는 아버지보다 강한 것 같아도 아버지를 넘어서서 독단적인 결정을 하는 적이 별로 없어 보였다.
나의 엄마는 또한 남녀의 차별이 별로 없으셨다.
원한다면 원하는 이의 몫이지 아들이어서 먼저 허락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릴 때의 기억, 중요한 순간에 여자이기 때문에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세월이 뚜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양보해야 하는 일을 내게 강요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살면서 그런 적도 있었겠지만, 내게 각인된 엄마의 인생과 잣대는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내겐 지극히 순종적이면서도 또 지극히 독립적인 면이 다 존재한다.
자발적인 순종은 나를 한없이 부드럽게 하지만 강요된 순종에는 삐딱한 저항이 꿈틀댄다.
남자와 여자라는 특수성은 인정하지만 남자이기 때문에라든지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표현은 불편하다.
이것은 결혼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도 곧잘 부딪치는 부분이어서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서 표현하는 "역할의 차이"론에 그나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지음 받았으나 각기 역할이 다르다는 입장인데, 사실 나도 이러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얼마나 낮은가 하는 씁쓸함이 있다.



이 책은 2001년의 한 세미나에서 녹취한 것을 글로 옮겨 보완한 것인데,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이전보다 더 후퇴시키는 교단 혹은 교회들을 향해 다시 울리는 소리이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지며, "구약이 말하는 여성"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과 더불어 타락한 이후의 위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약이 말하는 여성"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새 창조를 선포하며 이는 옛 창조의 약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타락한 질서의 모든 죄악과 단점과 고난들을 극복하였음을 선포한다.
이러한 뜻을 받들어 그 시대의 파격을 몸소 실천한 "바울이 말하는 여성"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 내에서의 여성이 어떻게 현재의 관점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네 번째 파트인 "진정 복음적인 남녀 관계를 위하여"에서는 성서의 해석학적인 문제와 더불어 진정한 보수운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여성의 성경적인 위치를 설명하느라 리더십에 대해 더 깊이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얇은 책을 통해 예수님 당시 혹은 초대 교회 당시 이 사상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가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현대는 얼마나 많이 그 파격이 퇴색되고 힘의 기울기가 기울어졌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에서는 옛 창조 질서 속에서 불의와 불평등과 갈등과 압제와 착취와 굴종 등을 가져오는 인종적 구분, 성적 구분, 사회 신분적 구분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p30)

"우스꽝스러운 현상은 그런 이른바 '역할의 차이'론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여자들은 그 이론은 남녀 동등이라는 신약 성경의 기본 가르침을 헛되게 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며 속임수라고 거부하는데, 그 이론으로 이익을 보는 남자들은 그것이 남녀 동등의 원칙에 합치하며 성경적이라고 우겨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할의 차이'론으로 한 편이 실제로 이익을 보고 다른 한 편이 손해를 보는데, 어떻게 그 이론이 남녀 동등의 원칙에 합치한 것입니까?"(p96)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주심'이라고 정의합니다. 자기를 내어 줌(self-giving)입니다. 자기희생으로서의 '사랑'은 '복종'의 다소 제한된 개념을 내포할 뿐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자아 전체의 희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복종'을 포함하는 더 큰 총체적 자기희생인 것입니다."(p99)

"남편과 아내가 똑 같이 주의 뜻을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어떤 사안을 살피는 과정에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성경적으로 보자면 그럴 경우 양보하는 사람이 남편이든 아내든 더 성숙한, 사랑이 풍부한 그리스도인인 것이지요."(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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