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성경적 남녀 관계와 여성 리더십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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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

- 김세윤 / 두란노 -




나의 엄마는 아버지에게 지극히 순종적이시다.
자식과 배우자 모두를 사랑하지만 늘 배우자가 먼저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꺼워하시면서도 아버지를  엄마의 가슴으로 품을 줄도 아셨다.
어느 때엔 엄마가 아버지보다 훨씬 강해보이고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도 결국 아버지의 의중을 떠나는 적이 별로 없다.
아버지는 유한 것 같아도 어느 부분에서는 엄마를 휘어잡는 권위가 있고, 엄마는 아버지보다 강한 것 같아도 아버지를 넘어서서 독단적인 결정을 하는 적이 별로 없어 보였다.
나의 엄마는 또한 남녀의 차별이 별로 없으셨다.
원한다면 원하는 이의 몫이지 아들이어서 먼저 허락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릴 때의 기억, 중요한 순간에 여자이기 때문에 희생을 감내해야 했던 세월이 뚜렷하게 새겨졌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양보해야 하는 일을 내게 강요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살면서 그런 적도 있었겠지만, 내게 각인된 엄마의 인생과 잣대는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내겐 지극히 순종적이면서도 또 지극히 독립적인 면이 다 존재한다.
자발적인 순종은 나를 한없이 부드럽게 하지만 강요된 순종에는 삐딱한 저항이 꿈틀댄다.
남자와 여자라는 특수성은 인정하지만 남자이기 때문에라든지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표현은 불편하다.
이것은 결혼생활에서나 교회생활에서도 곧잘 부딪치는 부분이어서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특히 책의 뒷부분에서 표현하는 "역할의 차이"론에 그나마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게 지음 받았으나 각기 역할이 다르다는 입장인데, 사실 나도 이러한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위치가 얼마나 낮은가 하는 씁쓸함이 있다.



이 책은 2001년의 한 세미나에서 녹취한 것을 글로 옮겨 보완한 것인데,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이전보다 더 후퇴시키는 교단 혹은 교회들을 향해 다시 울리는 소리이다.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지며, "구약이 말하는 여성"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과 더불어 타락한 이후의 위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약이 말하는 여성"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새 창조를 선포하며 이는 옛 창조의 약점을 극복함과 동시에 타락한 질서의 모든 죄악과 단점과 고난들을 극복하였음을 선포한다.
이러한 뜻을 받들어 그 시대의 파격을 몸소 실천한 "바울이 말하는 여성"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 내에서의 여성이 어떻게 현재의 관점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네 번째 파트인 "진정 복음적인 남녀 관계를 위하여"에서는 성서의 해석학적인 문제와 더불어 진정한 보수운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여성의 성경적인 위치를 설명하느라 리더십에 대해 더 깊이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얇은 책을 통해 예수님 당시 혹은 초대 교회 당시 이 사상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혁명적인가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현대는 얼마나 많이 그 파격이 퇴색되고 힘의 기울기가 기울어졌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창조에서는 옛 창조 질서 속에서 불의와 불평등과 갈등과 압제와 착취와 굴종 등을 가져오는 인종적 구분, 성적 구분, 사회 신분적 구분이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p30)

"우스꽝스러운 현상은 그런 이른바 '역할의 차이'론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여자들은 그 이론은 남녀 동등이라는 신약 성경의 기본 가르침을 헛되게 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며 속임수라고 거부하는데, 그 이론으로 이익을 보는 남자들은 그것이 남녀 동등의 원칙에 합치하며 성경적이라고 우겨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역할의 차이'론으로 한 편이 실제로 이익을 보고 다른 한 편이 손해를 보는데, 어떻게 그 이론이 남녀 동등의 원칙에 합치한 것입니까?"(p96)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주심'이라고 정의합니다. 자기를 내어 줌(self-giving)입니다. 자기희생으로서의 '사랑'은 '복종'의 다소 제한된 개념을 내포할 뿐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자아 전체의 희생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복종'을 포함하는 더 큰 총체적 자기희생인 것입니다."(p99)

"남편과 아내가 똑 같이 주의 뜻을 순종하겠다는 자세로 어떤 사안을 살피는 과정에서도 의견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성경적으로 보자면 그럴 경우 양보하는 사람이 남편이든 아내든 더 성숙한, 사랑이 풍부한 그리스도인인 것이지요."(p104)

#그리스도가구속한여성 #김세윤 #여성리더십 #여자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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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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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하는 사람 >


- 정호승 / 열림원 -


사람들이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것이 무슨 뜻일까 해석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것, 그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여기서는 슬펐을까, 외로웠을까, 자꾸만 내가 그가 되어 그를 이해해보려고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시에게서 더 멀어지는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전 시집 하나를 고르면 조금 방치한답니다.
내 마음에 여백이 없으면 자꾸 그의 말에 물음표를 달기 때문인데요, 그 물음표는 그의 말을 위축되게 하고 그의 감정을 어딘가에 자꾸 담으려고 하거든요.
저도 시집 하나를 펼쳐서 하나 하나 꼼꼼하게 들여다보던 때가 있었답니다.
그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일까 상상도 하고 같이 느끼기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제가 시인이 된 것처럼 늘어놓게 되었는데 의외로 내가 말하는 것들을 알아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답니다.
물론 시인이 아니니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이유가 컸겠지요?^^
그 때 내가 느낀 것은, 시라는 영역의 무한한 자유였습니다.
풀어내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읊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다가서는 사람의 시선이 어떤지에 따라 또 무한하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고 나니 내가 읊어대는 노래들도 가벼워지고 누군가 노래하는 것을 듣는 것도 바람을 흘려보내듯 들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런 방법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시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시인의 시를 설명하고 있는 뒷부분은 거의 읽지 않거나 아주 아주 나중에 읽어 봅니다.
혹여 시인의 방에서 느꼈던 나만의 감정들이 또 다른 자로 재단되는 것이 싫어서이지요.
어쩌면 이것은 시의 단편적인 얼굴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라고 하면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마음들을 어느 정도는 옅게 해주지 않을까요..^^

이 시집은 세상에 나온지 10년도 훨씬 넘은 시집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시들이 가득한 걸로 봐서 그 당시엔 더 많은 사랑을 받았겠구나 짐작을 합니다.
펼쳐 보니 힘들고 외로웠던 어느 해 겨울에 만난 '봄길'도 있어서 더 반가웠답니다.
잠깐 들려드릴까요?^^

<봄길 >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전 이 시집을 보면서 그의 말중에 '별'과 '칼'을 조금 더 생각했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으면서도 외로움과 고독이 물씬 느껴지는 시들도 많구요, 그럼에도 다시 그 애정으로 걸어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의 시는 산문적이어서 더 편합니다.
이것은 내 성향이기도 한데, 의도적인 운율을 꺼리는 내게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운율이 내재되어 있는 그의 시들이 좋습니다.
수시로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선도 낯설지 않구요, 눈물에 젖어 있으면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도 정이 갑니다.
좋아하는 시인의 좋은 시집을 조금 방치하다가 만났습니다.
읽지 않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들여다 보며 물끄러미 그의 눈빛을 쳐다보았습니다.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도 듣고 조근조근 따뜻한 그의 독백도 들렸습니다.
그는 일어나 그의 길을 떠나고, 난 남아서 조금 더 하늘을 쳐다봅니다.
시가 그런 것 아닐까요..
그렇게 걸어가는 시인과 남아 있는 나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을 만나는 것..
딱히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잘 살겠지 하고 고개 끄덕이는 날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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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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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환화 >

- 히가시노 게이고 -

이 책은 추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2013년 작품입니다.
몇 해에 걸쳐 연재된 소설이었지만 작가가 더 오랜 시간을 다듬어 10년 만에 내놓았다고 하네요.
사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임에도, 나름 어릴 때엔 추리소설의 광팬이었음에도, 전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책이었답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향기가 있잖아요.
다른 작품을 더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책을 덮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치밀함과 진중함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작위로 선택된 어느 퍼즐을 보여주는 것처럼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내용이 전개되면서 하나씩 그 퍼즐이 맞춰질 때의 짜릿함은 추리소설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겠지요.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숨소리가 꽤 따뜻했습니다.
"세상엔 빚이라는 유산도 있다"고 고백하는 주인공들의 얼굴에서, 작가의 고민도 엿보여서 뭉클했구요.

내용은 어느 이름 모를 노란 꽃에서 시작하는데, 배경은 원자력으로 상실감에 휩싸인 현재에서부터 에도 막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통적인 역사물이나 과학소설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소재들을 이용한 중심 인물들의 고뇌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만져준다고나 할까요.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들었는데 정작 그 사건보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 같은 것.
살다 보면 그럴 때가 많잖아요, 우리도..
의도치 않은 곳에서 어려움을 만나기도 하지만, 또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마치 그런 인생들을 둘러보는 듯한 감정이 일었답니다.
누군가는 빚이라는 유산을 떠안고 걸어가는 이가 있겠지요.
그 빚을 내팽개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몫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겠지요.
나 또한 어느 부분으로는 그런 빚을 감당하며 걸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생각을 했던가 반문하게 됩니다.
빛날 것만 생각했지 빚으로 걸어야 할 그림자로서의 몫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하구요.

표지는 화려한 그림을 몽환화스럽게 한 꺼풀 더 얹어서 쌌는데, 전 그 종이만 따로 찍어 보았습니다.
한 꺼풀 벗기면 몽환스러운 게 사라지는 것, 그것은 과연 진짜 몽환스러운 존재는 아니었겠지요.
오히려 이렇게 전혀 화려함 없이 덮어주던 종이로 인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더라는 것.
그것도 무언가 머릿속에서 꿈틀거리게 합니다.

음...우왕좌왕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대고 있는 제 독후감이 무척이나 몽환스럽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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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이에게 건네는 열두 모금 생수 - 조정민의 새벽 묵상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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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모금 생수 >

  - 조정민 / 두란노 -



이 책은 매일 새벽 "생명의 삶"이라는 묵상집을 만나며 다시 자신의 묵상을 12줄로 펼쳐놓는 작업을 했던 것을 책으로 묶어서 낸 것입니다.
저자는 25년간 언론인으로 살다가 예수를 만난 이후 목사가 되었고, 많은 책들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는 교리적인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2부는 신앙적인 부분을 다시 검토하게 해줍니다.
12줄 묵상이기 때문에 문체가 간결하여 이해하기가 쉽고, 각 문장마다 가슴을 울리거나 경고의 종소리가 울리기도 합니다.
줄을 긋다 보면 한 페이지를 다 그을 때도 있을 정도로 문장들이 살아 있습니다.
책 전반에 걸쳐 여유로운 공간들과 단순하고도 우아하게 그려넣은 작은 그림들은 빽빽한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또 다른 쉼을 전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전도자가 일생을 돌고 돌아 되돌아온 자리가 하나님입니다. 그 자리는 시종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떠났던 바로 그 자리에 계십니다(p216)'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아직도 더 대단한 것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또 때론 그 분밖에 나에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시로 두리번거리는 허한 가슴의 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방황할 때에도, 슬픔 가운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막막한 삶 앞에서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때에도, 알면서 모른 척하며 거부했을 때에도, 그 분은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기다리셨습니다.
그 기다림이 나를 일어서게 하고 나를 다시 걷게 합니다.
무언가 거창한 선물을 내게 주시고 약속하셔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나를 기다리신다는 그 묵묵함이 나를 다시 뜨겁게 만듭니다.


책은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전해주지만 결코 가벼운 말들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인들 가볍고 덜 중요할까요.
그래도 여전히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시고 그 한 사람의 삶을 같이 걸어가시는 하나님의 시선이 참 좋습니다.
간결한 문장들로 그런 것들을 잘 표현해주는 이 책도 봄처럼 내 마음에 녹아듭니다.

#열두모금생수 #조정민 #신앙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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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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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는 여자의 공간 >

    - 타니아 슐리 / 남기철 옮김 / 이봄 -


이 책은 나올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입니다.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책의 제목부터 궁금증을 슬쩍 슬쩍 건드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책은 35명의 여류작가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는지 공통되는 주제로 묶어 한 사람씩 짤막하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유명한 이들도 있고 생소한 이들도 있습니다.
200여 년전에 살았던 이도 있고 생존하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글은 간결하고 글 중간중간 그녀들의 사진들이 있어 지루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여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누구나 꿈꿨을지도 모를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시선을 더 끌어당기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내게는 작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엔 교회 언니들과 작은 다락방에 배를 깔고 누워 미스 유니버스 아가씨들을 수도 없이 배출해내었지요.
책 크기의 누런 종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녀들은 새로운 의상과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미래이기도 하고 도달할 수 없는 현실 너머의 머나먼 신기루이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집들이 철거된 후 이사온 곳에선 몇 년 후에 가지게 된 내 방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자 형제가 없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함께 사용했지만 할머니는 대부분 나에게 맞춰 주셨고, 그 방은 곧 내 방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창문이 없어 불을 끄면 다락방의 그 때와 같은 분위기를 내던 방에서 그 때보다는 조금 더 용감한 여자들이 튀어 나왔습니다.
남장을 한 여탐정도 있고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용감한 딸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내게 영향을 주던 남자들은 대부분 탐정이나 대도 혹은 말을 타고 달리며 의에 분연히 일어서던 개척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커서 내게 주어진 공간은 독서실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공부를 하라고 보내주셨지만 난 그 작은 책상의 구석에서 속삭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그 빛보다도 더 희미한 현실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남매이지만 여자는 혼자라는 이유로 내 방은 늘 배려해주셨고, 어쩌면 난 나만의 공간이라는 선물을 오래도록 받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엔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을 다시 쌓게 되었고, 지금도 역시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만 구성된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구석 어딘가에 내 공간 하나를 심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어려웠습니다.
나만의 공간에 익숙해서 살았던 20년과 나만의 공간을 잃은 20년은 묘한 대비를 주며 내게 새삼스레 다가옵니다.



그러다가 만난 이 책은 또 다른 꿈을 꾸게 만듭니다.
공간이라는 것이 어떤 곳에 거하는 것으로서의 공간도 있지만, 나를 불러들이고 불사르게 하는 어떤 존재 역시 공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이에겐 당연한 일이었고 또 어떤 이에겐 목숨을 내놓고 걸어야 하는 길이기도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쓴 이도 있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어 쓴 이도 있습니다.
잠깐 쓰다가 사라진 이도 있고 오래도록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머물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도 있습니다.
결국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이고 그렇게 쓰는 공간은 그의 체취나 피였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름만으로는 모르는 이가 더 많았지만, 책을 이야기하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들어있던 사진을 통해 그녀들의 글을 만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눈빛에서, 펜을 잡고 있는 손가락에서, 단정하거나 혹은 삐딱하게 앉아 있는 자세에서, 그녀들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녀들처럼 거창한 길은 아니어도, 나 또한 나만의 공간을 꿈꿉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노라면,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녹여내고 저항하기도 한 인생들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 또한, 보이는 공간 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 맘 속 공간에서 나도 만나고 너도 바라보며 담담하고 연한 글들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아마도 내가 머무는 공간 그곳에선 풀냄새가 언뜻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마음 따뜻해지는 연한 잎차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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