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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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고 있는 내내 불편한 책이다. ‘친절한 금자씨’가 생각이 나는 전혀 친절하지 않은 ‘신데레라’ 책이다. 정말 이렇게 불편하게 책을 세상에 보내도 되는 건가? 뭐 나름대로 4명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면 친절하게 각 주인공의 이름을 명기한 부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 책은 그러한 것도 없다. 읽으면서 퍼즐을 구성해야 그럼 느낌을 받게 하는 정말로 불편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4명의 주인공이 나타난다. 저자의 말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사는 네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 중산층의 희망과 고통, 욕망과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는데 실제는 많이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저자와 이름이 같은 라인하르트는 여기서 그나만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 책의 인물들이 서로 간에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비정상적인 측면에는 그들의 아버지에 의한 어떤 영향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런 아버지의 예로는 파트리크 네프넬의 아버지와 로랑의 아버지가 나온다. 그렇지만 여기서 묘사된 아버지의 이미지는 과연 그렇게 잘못된 이미지 인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의 대부분의 아버지처럼 세상에서 가족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보통의 아버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아버지는 아니고, 세상과 타협하고 굴복하는 모습의 아버지인 것이다. 이것은 이 책의 제목인 신데렐라와 연관성을 갖는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의미는 약자 또는 낮은 계급에서 신분 상승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에 타협하고 굴복한 아버지는 어떻하던지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묘사된 4명의 주인공 또한 이러한 신데렐라를 꿈꾼다고 생각한다.
이 책 표지에 나온 이미지를 보면 이러한 신데렐라가 되기 위해서 아마 속에 숨겨진 삐뚤어진 욕망의 이미지를 스타킹의 신발의 이미지로 나오지 않는가 생각한다. 그리고 스타킹은 패티쉬의 상징 중에 하나이지 않는가?  그렇지만 저자는 신데렐라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세상을 보고 믿는 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관계가 없는 요소들을 그물처럼 연결하고 이것을 모으는 개념적인 구조의 유일한 힘으로 함께 유지되는 요소인 것이다. 이렇나 철학적이거나 기계적인 시스템에는 하나의 시선이 포함된다. 관찰자의 시점 또는 시선으로 되어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달리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델렐라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결과로 많은 수의 불안정한 정신적인 자화상을 형성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 또는 시스템으로 보면 우리는 주인공 4명을 바라보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주인공 4명에 대한 시선에 대한 결론을 우리에게 판단하도록 남겨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렵게 소설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계속 진행형의 소설이다. 주인공 4명의 결말을 내지 않고 소설을 마무리 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를 제외하고 나머지 3명을 자기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즉, 로랑 달의 경우 큰 성공 후에 대 실패 이후 감옥에 갈 처지에서 딱 한 번 이름조차 모르는 여인을 찾아 떠난다. 티에리 크로겔의 경우 자기 자신의 욕망의 정점이 될 수 있는 스와핑을 하기 위해 아내가 함께 상대방을 만나러 떠난다. 파트리크 네프텔을 경우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생방송의 토크쇼 출연자들을 모두 죽여버리기 위해 떠난다. 이들이 그들이 원하는 이상향을 가졌을 경우 그들은 행복할 지 어떻지 궁금하다.
다음에는 좀 더 친절한 책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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