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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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부터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인해 극 소심한 성격으로 자라났습니다.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이미 친해져있는 무리들은 저를 상대해 주지 않았죠. 그 같은 환경이 수차례 반복되다 보니 외로움은 극복의 대상이기보다도 그냥 때 되면 배고파지는 인간의 생리현상 같은 거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점점 세상에 흥미를 잃었고, 장난감이나 군것질 같은 즐거움에도 시큰둥한 태도로 살았어요. 내일이 기대되긴커녕 무의미한 나날들이 참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 <매트릭스>를 접하고서, 어쩌면 이 세상도 가상 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영화 <트루먼 쇼>를 보고 나서, 이 현실도 그런 거라고 누가 말해줬으면 싶었었고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살면서 느껴온 괴리감들이 도무지 설명되지 않을 것만 같았거든요. 매번 세상은 한 편의 연극처럼 진행된다는 인상을 주곤 했습니다.


남들과 섞이지 못하고 늘 소외돼있던 저는 한국에 와서 적응 못하는 외국인들의 고충을 쉽게 알 수 있었어요. 아마 그래서, 나중에 한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느낄 외로움은 국내나 국외나 피차일반일 것만 같았거든요. 아무튼 성인이 되어서도 불안, 소외, 외로움, 허무의 근원을 찾아보았지만 전부 허사였습니다. 누군가는 삶에 목적이나 이유 같은 건 없다고도 하고 이제는 저조차 그렇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삶을 볼 때면 억지로라도 그 답이 듣고 싶어지거든요. 근데 살면서 만났던 그 어떤 사람도 저와 같은 부류는 없었어요. 비슷한 정도는 있었어도 깊은 대화까지는 불가했죠. 그런 자리를 만들 때마다 내가 남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 저조차도 점점 그런 대화를 삼가게 될 뿐이었습니다. 왜 그런 말도 있었죠. 외눈박이 별에서는 양눈박이가 비정상이라고요. 나 자신이 지극히 정상임을 알고 있지만, 남들이 내게 보이는 반응에 그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그런 상황. 예. 지난 제 인생을 요약한다면 이 정도가 될 듯하네요.


다행히 문학 속에서는 저의 갈증을 작게나마 해소해 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특히 고전을 읽다 보면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곤 해요. 이번에 읽은 <외로운 남자>도 너무 제 얘기 같아서 별 다섯을 주었습니다. 소신 발언하자면, 부족함 없이 나고 자란 분들은 퍽 재미를 못 느끼실 겁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문학은커녕 이런 글조차도 찾아볼 일이 잘 없죠. 아무튼 책 소개에 앞서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그만큼 제 영혼과 공명했던 터라 생각이 많아져서 그랬습니다. 이제 작품 얘기를 해보죠. 이름 없는 이번 주인공은 서른다섯 나이에 먼 친척의 유산을 물려받아 다소 이른 은퇴생활에 들어갑니다. 그는 파리 외곽의 한 아파트를 구하고 가정부를 고용한 뒤 느긋하게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죠. 술을 좋아한다는 것만 빼면 세상살이에 별 욕심이 없는 게 저랑 너무 닮았어서 좀 머쓱했습니다. 돈 걱정 없는 자유인이 된 기분도 잠시, 주인공은 따분한 일상에 온갖 잡생각이 밀려들어 온갖 철학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떨어져 더 이상 참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48p). 어쩜, 제가 느꼈던 괴리감을 이토록 적확한 표현으로 정리하다니, 완전 반해버렸지 뭡니까.


남들은 모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가정생활을 이어나갑니다. 반면에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주인공은 자신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며, 세상 모두는 존재하지 않는 쓸모없는 것들로 여깁니다. 이 말이 활자 그대로라면 앞뒤가 안 맞을 테지만, 이 작품에서의 존재란 매뉴얼대로 따르는 기계 같은 모습의 반대편에 있는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만화 <진격의 거인>이 떠올랐어요. 주인공 에렌은 벽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이 우리 안에 갇힌 가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벽 때문에 바깥 거인들로부터 보호받고 평화로이 살아간다 생각했죠. <외로운 남자>의 주인공이 느낀 것도 그와 동일합니다. 현실은 교묘히 짜여진 무대에서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 그 누구도 무대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없었죠. 물론 사연 없는 사람이 없고 각자의 고민을 끌어안고 산다지만, 한낱 쾌락에 죽고 못 사는 인생들을 보노라면 정말 저것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싶은 제 생각과 일치해서 놀랐습니다. 저는 종종 세상 사람들이 게임 속 NPC 같고 저 혼자만 플레이어로 느껴지곤 했는데요, 이오네스코 작가도 혹 저와 비슷한 감상이 아니었나 합니다.


각종 형이상학 질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자 주인공은 철학적 사고를 멈추기로 합니다. 이렇게 막다른 길에 놓이면 체념하는 심정으로 쾌락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것도 얼마 못 가서 자신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처럼 주인공도 단골 식당에 가서 술을 자주 마시고, 여종업원을 꼬셔서 동거까지 해보지만 그런 쾌락들이 복잡한 내면과 불완전한 세상을 연결해 주진 못했어요.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행동들에 무슨 가치를 지니는지, 무의미한 일들에 왜들 그리 아등바등 사는지를 설명도 못할 거면서 잘만 떵떵거리고 사는 무리들도 그렇지만, 배가 부를 대로 불러서 이토록 권태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스스로가 저들과 다르면 뭐 얼마나 다를까 싶거든요. 맞습니다, 바로 제 얘기입니다. 그래봤자 나 역시 똑같은 사피엔스 중 하나이고, 좋든 싫든 이 사회에 적당히 물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며, 잘 참고 살다 보면 스스로가 외눈박이처럼 생각되기도 하거든요. 본인의 남다름을 감출 줄 알거나, 자기만의 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는 차라리 나아요.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지대, 즉 어느 쪽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이야말로 외로운 법이니까요.


일종의 정신승리처럼 들리겠지만, 돌연변이 혹은 괴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세상이 그들의 역량을 감당치 못해서라고 생각해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패션이 환호성보다도 야유를 받는 것처럼요. 솔직히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에게 철학을 논한다는 자체가 잘못이기는 해요. 종교는 구원을 약속하고 삶을 위로해 준다지만, 철학은 엄밀히 말해서 별 쓸모가 없거든요. 철학은 깊이 파고들수록 나를 세상에서 격리시키고, 나의 소외를 정당화해줄 뿐입니다. 공부 좀 했다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배움으로 인해 더욱 자유롭거나 홀가분해졌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잘 없어요. 그렇듯 실존에 대한 문제들은 누군가의 명료한 논문 따위로 해결될 게 아니죠. 이 결괏값에 도달한 사람들은 그렇게 생겨먹은 시스템을 받아들이며 비로소 내려놓는 법을 터득해요. 물론 거기에는 어떤 납득도 만족도 없겠지만요.


세상 돌아가는 시스템까지 따지려 들다니, 참 할 짓 없다는 핀잔과 조롱이 들려오네요. 맞는 말일지도 모르죠. 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저는 어떤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태어나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저와 주인공의 자아는 무한히 증대되어 무대 뒤편으로 향하지 뭡니까. 무대 밖에서 수십억 인류의 고통을 마주한 사람은, 이내 그 고통이 전 인류에게 공평히 분배되지 않고 특정인에게 몰려있음을 깨닫습니다(86p). 그것을 안 이상 어떤 감동도 희열도 발견할 수 없으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곧 부재를 증명하는 것만 같았죠. 내가 지닌 추억들이 과연 존재했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단지 ‘있었던 일‘이라는 말로써, 그것이 존재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뭐, 좋습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얘기하는 건 어떨까요? 멀쩡한 사람이 자꾸 죽음을 논한다면 이 또한 병자 취급을 받게 됩니다. 건실하게 사는 이들은 그런 대화가 마치 허무주의를 설파하는 것처럼 들릴 테고요. 순간에 충실하는 것과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나 우리 사회는 아무도 이 두 가지를 나누지 않아요. 따라서 무대 위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그런 사람들이 만든 추억들도 존재했다고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느낀 작품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죠.


후반부는 내란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혁명을 외치는 두 분파가 거리와 도시를 점령하면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전쟁에 흥미 없는 주인공은 집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몇 년이나 흘렀습니다. 다시 세상에 나온 그는 모든 게 바뀌었고 또 변해감을 눈으로 목도하면서, 나 홀로 옛 세상에 멈춰있다는 사실을 깨닫죠. 또한 사는 방법을 몰라서 자신들을 지나쳐간 행위, 모험, 사랑에 대한 아쉬움으로 속상해합니다. 그러면서 과거 나에게 다가와 준 기회의 여신을 매번 뿌리쳤던 일들에도 후회막심이었고요. 누구라도 이런 후회를 할 테고,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들도 기회일 텐데 어째서 우리는 오늘 하루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내고 있을까요? 듣자 하니 주인공을 떠나간 동거녀는 어느새 아이가 넷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런 뼈아픈 소식을 듣고도 자신의 추억들이 살아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각본대로 살지 않는 것은 훌륭하지만 돌연변이라 해서 계속 숨어 다닌다면 정말 죽도 밥도 안되거든요. 아무튼 외로움의 최종 진화 형태는 자발적인 고독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왕따시킬 것까진 없고요. 아무쪼록 무대 밖에 서계신 분들께서는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안히 공연을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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