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K의 삶과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6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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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 번씩 그럴 때가 있죠. 내가 인생 설계를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 말이에요. 대개 일이 계속 잘 안 풀린다 싶을 때에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아마도 빠르면 사춘기일 것이고, 늦어도 취업 준비를 할 때쯤에는 크고 작은 좌절과 후회를 만나리라 싶은데요. 사실 그걸 알아차렸을 때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늦어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들 하죠. 차마 변화할 용기가 없는 우리들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길을 찾아낼 뿐입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삶의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삶을 앞서나가는 선두 주자가 아니었기에 항상 몇 걸음 뒤에서 삶의 무대를 지켜보았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된 것이, 의외로 사람들은 물질만능주의의 신봉자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각자 추구하는 관심사가 전부 다르고, 그 욕구가 얼마큼 충족되면 ‘그럭저럭‘ 지낼만한 삶으로 변모한다고나 할까요? 하여 겉 보기엔 그리 볼품없는 인생일지라도 그 자신은 제법 떳떳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었죠.


문학은 곧 영웅 서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웅 중에는 성공한 영웅도 있지만 실패한 영웅, 즉 안티 히어로도 존재해요. 1등만 기억하는 이 세상은 성공 못하면 실패라는 결론이 지배적입니다만 문학 세계에서는 얘기가 다릅니다. 실패자들도 제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에 저항하는 반反 영웅이기 때문에요. 따라서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모델과 일치하지 않을수록 일종의 독립투사라고 봐도 되겠네요. 그와 같은 시선으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쿳시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영 글맛은 없더군요. 개인적으로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인상이었습니다. 딱히 특별할 게 없는 서사와 건조한 문체의 조합이었죠.


이번 주인공은 입술이 달팽이처럼 말려 올라간 구순열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신체적 결함을 가진 자들이 다 그렇듯 K의 삶 또한 녹록지 않았죠. 훗날 정원사가 되었지만 전쟁의 여파로 해고되고 살 곳을 잃어 연로한 모친과 함께 떠나기로 합니다. 허나 모친은 사망하고 홀로 남겨진 K는 곧 자연인으로 살아가는데요, 세상은 결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어요.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수용소에 갇히고, 탈출했지만 후에 또다시 붙잡힙니다. 분명 그는 자유로웠지만 자유 신분까지는 아니었던 거죠. 강제로 끌려온 그는 수용소 내의 규범을 강요받으며 최하급 신분으로 강등됩니다. 아니, 잘난 구석이 하나 없다지만 그래도 멀쩡히 살아가던 개인이 한순간에 짐승 취급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K는 그저 자기 삶을 살아가려 했을 뿐인데, 세상은 그것조차 눈엣가시였던지 자꾸만 그의 삶에 개입했습니다. 이렇듯 살려고 아무리 손발짓을 해도 고통의 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게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닐까 합니다.


수용소를 탈출하고 은거 중이던 그는 또다시 연행되지만 아사하기 직전의 영양실조 상태라서 병실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를 맡게 된 담당 군의관은 이 사회성 없고 소통불가한 환자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되고요. 무엇보다 K는 수용소의 음식을 절대 거부했어요. K의 그같은 고집은 침묵 시위나 묵언 수행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자신과 맞지 않는 음식물일 뿐이었어요. 그처럼 원치 않는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실험용 쥐처럼 대하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K에게서 양가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왜 저렇게 자신의 도덕과 신념과 원칙을 고수하지 못했을까. 무력하단 이유로 온갖 병폐들을 묵인해왔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저는 다소 한심하고 자기주장 한 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 친구에게 많은 공감이 갔습니다. 저 역시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별문제 일으키지 않고 잘만 지내는 타입이거든요? 하지만 세상은 어떻게든 저 같은 사람도 문제 삼고 헐뜯고 싶어 한다는 걸 날마다 실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에게 퍽 복종하지 않으려는, 세상과 짝하지 않으려는 사람일수록 더욱더 눈밖에 나는 겁니다. 뭣도 아닌 것들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다니는 게 아니꼬워 보일 테죠. 잘난 사람을 시기하는 것도 모자라 못난 사람한테도 시기하다니, 정말 촌스럽지 않나요?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는 게 세상의 이치라면,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정답이지 싶네요.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는 건 안정성과 정체성을 맞바꾸는 일입니다. 반대로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겠다면 고생한 만큼의 확신을 얻을 테고요.


​요즘 인기 절정인 <오디세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통적인 영웅이죠.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영웅 서사를 각자의 삶으로 들여올 수가 없습니다. 영웅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마이클 K처럼 안티 히어로가 되는 게 나아요. 이 말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되시나요? 글쎄요. 세상에게 열심히 아부하고 굽신거려봤자 세상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던 말도 이제는 너무 낡아버렸죠.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게 아닌, 사회가 조종하는 꼭두각시로 살고 있음에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것들이 각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아닌지도 의심해 봐야 합니다. 진리는 언제나 좁은 문 너머에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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