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 날의 요리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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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독서광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서를 꽤 좋아합니다. 근데 사실은 독서보다도 글쓰기를 더 좋아해요. 종종 하는 말이지만 전 쓰기 위해서 읽는 것이지, 독서 자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완독 권수에 집착하지 않아요. 오히려 쉬지 않고 집어삼키기 바쁜 책벌레들을 썩 좋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읽었다 한들 남는 게 뭐 얼마나 될까요? 전 그게 바보상자 소리 듣는 TV 시청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야 할 책은 많고 독서할 짬은 한정돼있죠. 세월이 갈수록 꺾이는 우리의 체력과 집중력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하고요. 아무튼 내 아까운 시간들을 써가면서 읽었는데 얼마 못 가 내용을 잊어버린다면 허무하지 않나요? 저는 좀 그렇거든요. 그게 아쉬워서 기록에 진심을 다하고 또 주기적으로 저의 지난 글들을 읽어줍니다. 그럼에도 기억이 흐릿한 작품이 있고, 반대로 절대 못 잊을 인상적인 작품도 있고 그래요. 그 이유가 ‘당시의 나‘와 합이 맞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믿었는데요, 지금은 언제 읽어도 푹 빠져들만한 서사의 힘에 있구나 싶어요.


더 이상 긴 말이 필요 없는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도 그러합니다. 그의 소설은 읽었다 하면 금방 재미에 빠져들거든요. 게다가 그 내용이 쉽게 지워지지도 않아요. <지구 끝날의 요리사>는 현재 기준으로 저자의 최신작인데요, 초기작들에 비하면 다소 순한 맛이 되었지만 특유의 병맛감성은 여전합니다. 라이트 팬으로써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제법 작품성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원래 이분은 ˝개연성 따위, 개나 줘버려!˝, ˝웃기면 장땡이야!˝가 모토였는데, 전작인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부터 그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어요. 가수 싸이가 살이 빠져서 연예인 병 걸렸다던 소문이 한때 돌았었는데, 그거랑 흡사하달까요.


주인공 요한은 말 그대로 ‘천치‘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외교관이 되려는 형은, 부동산을 처분하고 홀로 남겨진 동생에게 캠핑카를 선물한 뒤 떠납니다. 자유를 만끽하던 그는 자살을 시도 중인 한 여성과 합세하게 됩니다. 천체 물리학자인 그녀는 64단계의 방정식을 풀어내, 조만간 종말이 닥쳐올 것을 알게 됐다죠.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질 않았고, 먼저 가려던 차에 웬 바보한테 방해를 받아버렸고요. 그래 뭐, 세상이 망하기 전에 밥 한 끼 먹자는 요한의 제안을 접수한 예언가의 마음은 잠시 흔들립니다. 이 구제불능 천치씨에게는 웬만한 마스터 셰프 뺨치는 요리 실력이 있었거든요. 요한의 수준급 요리와 바보균 앞에 무색해진 그녀는 최후의 날을 직관해 보기로 합니다.


본투비 극소심 좌였던 예언가는 어차피 얼마 못 살 거, 과거의 후회들을 청산하자는 생각에 요한과 동행합니다. 어찌어찌해서 제 목적을 이루고 이제 요한의 숙제도 해결해 주려는데, 알고 보니 이 친구는 평생 형에게 착취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답니다. 아무튼 진실을 마주한 요한 일행은 복수를 위해 형이 근무하는 스웨덴 대사관을 찾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은퇴한 갑부 할머니 하나가 추가되는데, 시간상 소개는 생략하고요. 마침내 형을 만나 입을 떼려던 순간, 형의 상사분께서 저녁 만찬 행사에 초대했지 뭡니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동생 때문에 죽을 맛인 형을 골려주기로 한 주인공은, 행사장에서 각국의 외교관 및 대사관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눕니다. 심지어 오바마와 반기문도 요한의 요리 철학과 쿨한 태도에 완전히 매료돼버려요. 그걸 멀리서 지켜만 보는 형은 아주 가시방석이고요. 뭐 이런 운발뿐인 전개가 다 있냐고 할 텐데, 요나손의 스타일이 이런 걸 어떡합니까. 그냥 뇌 빼놓고 즐기세요.


서브 스토리로, 아프리카 섬나라 중 하나인 콘도르스의 대통령이 등장합니다. 러시아 출생인 그는 마피아에게 금전 사기를 친 뒤 해외로 도주하여 운 좋게 대통령까지 올라갔죠. 허나 정치인이 아니다 보니 국가운영도 엉망이고, 아프리카 연합과 국제기구 쪽에서도 ‘빌런‘소리나 듣고 있다죠. 오바마에게 이 얘길 들은 요한은, 빌런의 코를 눌러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섬나라에 가기로 합니다. 어째 사태가 점점 커지지만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뭐 어떠랴 하고 예언가와 할머니도 따라갑니다. 말년에 도파민 폭발하신 할머니가 모든 비용을 다 대줘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말하자면 이스터에그랄까요. 어찌 보면 메인 사건이랄 게 없는 작품인데, 워낙 전개가 시원시원해서 지루할 틈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습니다.


한참을 적었는데 아직 분량의 절반도 못 왔네요. 최대한 중략해야겠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빌런을 만난 요한 일행은 그 나라의 장관들이 됩니다. 이 무슨 개떡같은 전개냐 싶으시면 직접 읽어보길 바라겠고, 일단 대통령이 요한의 친부였습니다. 네네, K-드라마에서 숱하게 써먹은 출생의 비밀이란 거죠. 아 참, 예언가가 말했던 종말의 날은 뻔하게도 멀쩡히 지나가버려요. 이어서 빌런과 아들은 UN의 반부패 운동 본부를 자기네 땅에 세우겠다는 허황된 국제선언을 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돈, 인재, 기술, 그 무엇도 없는 후진국에서 뭘 어떡해야 할까요? 이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예언가가 다시 내놓은 종말의 날을 SNS에 발표하고, 여기에 전 세계인이 베팅하게 만듭니다. 이들의 계획은 이런저런 이유로 섬 출입을 일시적으로 차단한 후, 모아들인 자금으로 국제기구 건물을 후딱 짓는 겁니다. 하지만 헬리콥터를 타고 정찰 나온 요한의 형에게 들켜버리죠. 여기에 프랑스 인터폴과 러시아 마피아의 추적까지 겹친다는, 수습불가한 초대형 사이즈의 이야기입니다.


좀 더 재밌고 디테일한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한도 끝도 없겠네요. 뭐 어차피 가벼운 타임킬링용 소설이니까요. 이 작품의 주제는 명확합니다. 어떤 심각한 일이라도 한숨 돌리고 보자는 거예요. 모든 선택지에는 후회와 미련, 근심과 걱정이 달라붙기 때문에 결국 거기서 거기란 얘깁니다.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최선이었다지만 현재의 모습은 어떤가요? 아무런 불만 없고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고 계신가요? 예, 그런 겁니다. 낙관주의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점점 더 나빠져가는 세상살이와 사회적 분위기에 너무 휩쓸리지 마시길 바라요. 그럼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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