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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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귀찮아서 일부러 벽돌책 위주로 독서하는 요즘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치열하게 읽고 분석한 리뷰를 쓰고 싶지가 않다. 인사이트를 얻든 못 얻든 그냥 순간의 감정에나 집중하자는 생각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쫓기는 듯한 독서를 해왔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강박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


<황금 방울새>로 유명한 도나 타트의 데뷔작인 <비밀의 계절>을 푹 빠져 읽었다. 이분의 작품 특징이 뭐냐면, 굉장한 흡인력을 뽐내는 반면에 스토리는 정작 별거 없다는 데에 있다. 실망할 게 아니라, 바꿔 말하면 대단한 이야기 꾼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스토리도 쏘쏘하고 필력도 그냥저냥인데 이상하게 재미있다? 소설가로써 특급 칭찬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자질과 능력에 비해 작품 활동이 너무 저조해서 참 안타깝다.


햄든 대학의 그리스어 학과생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편입한 주인공 리처드는 기똥차게 수업하는 교수 줄리언과, 하나하나 매력적인 5명의 학생들에게 매료된다. 다 그렇듯 주인공의 집안도 복잡했기에 차라리 대학 생활이 퍽 즐겁고 좋았더랬다. 다른 언어보다도 장벽이 높은 그리스어를 배우는 친구들의 지적 수준은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다. 다행히 리처드는 그 5명과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 헌데 알면 알수록 얘네들, 묘하게 구린내가 진동한단 말이지?


누가 보면 다들 죽마고우처럼 보이지만 각자 다른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성 강한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주인공의 숙제 아닌 숙제였다. 그러나 갓 굴러들어 온 돌은 친구들의 속내를 묻기는커녕 따돌려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여하튼 모두에게 쎄함을 느꼈지만 전부 덮어두고 지내던 중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어떤 그리스 종교 의식을 치른 4명이 완전히 정신 나갔다가 겨우 돌아왔는데, 눈앞에 한 남성이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4명의 몸과 옷은 피투성이가 돼있더란다. 이들 중 누구도 그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였고, 시신을 놔둔 채 현장을 탈출해버렸다.


그 현장에 없었던 주인공은 내용을 건네듣고 멘붕이 온다. 그리고 또 한 명, 버니는 워낙 시한폭탄이라서 아무도 그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 않는다. 허나 눈치 백단의 버니는 그 4명을 아슬아슬하게 공격하고 돈을 타내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온갖 시달림과 노이로제로 인해 뚜껑이 열린 4명은 사고로 위장하여 버니를 죽인다. 버니의 실종으로 학교와 도시는 아사리판이 되었고, 가해자들은 살얼음판을 걷게 된다. 첫 번째 사건 때와 달리 버니 사건 현장에 있었던 리처드도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머리들이 좋은 덕분에 용의자가 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 후로 다들 소원해지거나 편집증과 술 중독에 빠지는 등 이전의 정겨움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다 전부 사이가 틀어지고 마는데, 이들을 중재하던 리처드는 각자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추악함에 무너져버린다. 하지만 친구들을 너무도 사랑했고, 이미 자신도 내뺄 수 없는 입장인지라 좋든 싫든 끝까지 함께 가야만 했다. 뒤 내용은 생략키로 하고, 보다시피 이렇다 할 스토리는 없는 작품인데 ‘비밀‘이라는 테마를 훌륭히 녹여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주고 싶다. 비밀을 간직한 주변인들의 미스터리한 기운과, 거기에 노출된 주인공의 멘탈 싸움이 꽤나 볼만했던 작품이었다.


분명 잘 읽었는데 이렇게 적고 보니 너무 야박한 평을 주었나 싶다. 아무튼 재미는 충분하므로 읽어봐도 좋겠다. 도나 타트는 대표작 <황금 방울새>만 읽고 끝내기엔 많이 아쉬운 작가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만나볼 것을 권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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