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근래에 계속 무겁고 우중충한 분위기의 작품들만 냅다 읽었더니 좀 질려가지고 오랜만에 장르소설이나 읽어주었다. 이럴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코넬리 옹의 작품을 고르면 된다. 보아하니 아직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시던데, 내 부모님 나이보다도 몇 년은 더 높으신 56년생의 할아버지가 어쩜 그렇게도 활력이 넘칠 수가 있는 걸까. 더 놀라운 것은 젊었을 때에 보여준 하이 퀄리티가 지금도 여전하다는 데에 있다. 그렇게 코넬리의 작품들은 늘 젊은 감각을 지니고 있어, 독자들이 저자의 건강 염려를 잊어버리게 된다. 어느덧 뱀파이어 같았던 톰 크루즈도 늙었고, 키아누 리브스마저 간달프를 닮아가는 걸 보니 세월이 참 야속하단 생각이 든다. 그처럼 언젠가는 코넬리도 은퇴할 텐데 지금으로썬 상상이 안된다.


<혼돈의 도시>는 ‘해리 보슈 시리즈‘ 중에 가장 분량이 짧은 데다 미친 속도감으로 하루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다만 주인공 혼자 치고 나가는 스트레이트 플롯이라 가벼웠던 점과, 인물 간에 갈등보다는 사건 중심으로만 흘러가서 좀 싱거웠던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별 셋을 주려다가 후반부에 급 하이 텐션으로 재미가 휘몰아쳐서 후하게 별 넷을 주었다. 이번 사건은 방사능 물질인 세슘을 다루는 병원 관계자가 총살 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생의 앙숙관계인 LA 경찰국과 FBI가 동시에 사건을 맡았는데, 어쩐 일로 FBI는 경찰 수사에 순순히 협조하는 분위기였다. 아무튼 사건 담당인 해리 보슈는 살인 쪽을, FBI는 병원에서 도둑맞은 세슘을 중점으로 수사를 맡는다. 알몸으로 결박된 피해자의 아내와 살해 현장 목격자의 진술을 통해, 범인들은 이슬람권 아랍인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FBI의 블랙리스트인 반미주의자의 집에서 범인들의 차량이 발견되었고, 이로써 방사능 물질로 사제 폭탄을 만드려는 테러범들의 소행으로 간주되어 초 비상사태가 된다. 의사들의 말로는, 세슘에서 나오는 감마선이 퍼지면 농도에 따라 몇 시간 내로 사망하며, 노출 지역은 수백 년간 폐쇄를 해야 한단다. 따라서 이번 수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촌각을 다투게 생겼는데, 왜 갑자기 FBI는 해리 보슈에게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일까.


99%의 본능과 1%의 직감으로 살아가는 LA의 코요태, 해리 보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구린내를 맡는다. 노련한 베테랑답게 시간 잡아먹는 수사 과정은 건너뛰고 지름길로만 쏙쏙 다니는데, 체계와 질서를 무시하는듯한 그의 독단적인 행동은 언제나 동료들의 미움을 샀더랬다. 그 때문에 이번 수사도 남들과 부딪히며 설득하기에 바빴고 별다른 수확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는 중이었다. 오히려 살인범보다 방사능 노출과 국제 테러 문제로 번질 위기는 파악하지 못한다는 꾸중만 듣는데 솔직히 할 말 없었다. 보슈는 뭔가에 꽂히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반면에 큰 그림은 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단점이 <혼돈의 도시>에서는 유독 크게 부각되었는데, 이번 편의 서브 테마가 ‘관료주의와 대립‘이기 때문이다. 일분일초가 급하다 보니 보고쳬계를 가볍게 무시하는 보슈와, 그로 인해 골치 아픈 뒤처리를 떠안아야 하는 기관들의 고충 장면이 자주 나온다. 어쨌건 사건이 잘 마무리돼서 망정이지, 보슈의 태도는 국가를 어지럽히는 문제아가 틀림없다. 물론 그에게는 파리 하나 잡겠다고 도끼를 꺼내드는 저 얼간이들이 답답하겠지만, 왜 파리채가 적격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보슈에게도 잘못이 있단 말씀이야.


이 짧은 분량 속에서도 코넬리 옹은 여러 번의 미스디렉션을 선보인다. 세슘 운반책의 차량에서 세슘을 발견한 보슈는 방사능에 노출된다. 그는 현장에서 빠져나와 병원으로 가는 척하면서 FBI 요원에게 사건의 개요와 용의자의 동선 등등 자신의 추리들을 들려주고 다음 현장으로 달려간다. 마침내 마주한 범인의 정체를 통해, 이번 사건은 국제 테러 사건 쪽으로 눈 돌리기 위한 속임수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경찰국 아니, 해리 보슈와 FBI의 공동 수사에서 그의 활약이 여러 차례 증명되었음에도 여전히 보슈가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저자는 해리 보슈의 시선으로 LA 경찰국의 무능함과 FBI의 융통성 없음을 신랄하게 비난해대는데, 아마도 과거 범죄 사건기자였을 때에 받았던 영향이 아닐까 싶다. 한 마디로 뒤끝이 쩐다는. 그래도 주인공의 소속이 경찰인 만큼 FBI 쪽을 악마의 집단으로 몰아가긴 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 작품마다 그러고 있으니 FBI의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지 않는 게 참 용하다. 아무튼 킬링 타임용으로 그만이었던 코넬리 옹의 작품이었다. 굿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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